[명진칼럼] 3월의 딸기 〈10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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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3월의 딸기 〈1098호〉
  • 이지은 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22.03.14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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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미술사학과 교수
이지은 미술사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우울하고, 심란한 교정에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봄에 가장 입맛을 당기는 과일은 누가 뭐래도 딸기이다. 요새야 겨울철에도 딸기가 흔하지만 어릴 적 딸기는 따스한 햇볕과 꽃이 만발한 4, 5월에나 맛보는 과일이었다. 빨갛게 여물어 씨가 콕콕 박힌 딸기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그 달큰하고 상큼한 맛이란. 나스타샤 킨스키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 <테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딸기가 유혹의 전초임을 알고 있다. 순진하고 아름다운 시골 처녀 테스가 나쁜 남자 알렉이 건네주는 딸기를 입으로 받아먹는 장면은 마치 선악과를 처음 베어 문 순간의 이브만큼이나 아찔하다. 이런 매혹적인 과일을 화가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중국 접시에 담긴 버찌와 딸기 (오시아스 비어르트 1세, 1608)
▲중국 접시에 담긴 버찌와 딸기 (오시아스 비어르트 1세, 1608)

플랑드르 지방 안트베르펜에서 활동하던 화가 오시아스 페어르트(Osias Beert 1580~1624)의 그림에도 딸기가 등장한다. <중국 접시에 담긴 체리와 딸기> (1608)에는 품종개량 전이라 그런지 체리보다도 작은 크기의 아담한 딸기가 대접에 소담스레 담겨있다. 그 옆에 놓인 윤기 나는 체리들은 군침을 삼키게 한다. 화면의 뒤쪽에는 이런 붉은 색과 대조되어 조화를 이루듯 기름에 절인 올리브가 놓여있다. 앞쪽으로는 미처 채 익지도 못한 딸기를 포함하여 체리, 올리브 한 알이 아무렇게나 흩어져있고, 빵 한덩이와 비스듬히 놓인 나이프가 배치되었다. 대각선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놓인 유리잔들에는 각각 붉은 포도주, 물, 백포도주가 담겨있다. 이때 평범해 보이는 정물화의 화면을 긴장시키는 것은 뜬금없이 등장하는 죽은 잠자리와 나비다. 왜일까?

서구에서 딸기와 체리는 천상의 과일로 여겨졌다. 딸기의 경우, 고대에는 북유럽의 사랑의 여신에게, 그리고 중세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과일이었다. 이른 봄 가장 먼저 수확하는 과일로,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첫 열매인 셈이다. 딸기 잎사귀의 갈라진 세 부분은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를 뜻하며 다섯 개로 갈린 딸기의 꽃잎은 예수의 오상성흔(십자가에 달렸을 때의 못이 박힌 상처와 창에 찔린 상처)을, 붉은 과육은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체리 역시 독일어 발음 ‘Kirschen’이 교회 ‘Kirche’의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에 성스러운 과일로 여겨졌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그림이 기독교적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깨어지기 쉬운 도자기가 우리의 연약한 육신을 의미한다면, 여기에 담긴 성스러운 과일은 우리의 영혼이다. 

그렇다면 나비는 어떤가? 죽은 듯 보이는 고치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게 다시 탄생하여 봄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비야말로 부활의 상징이다. 반면 잠자리는 당시에 악마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인간의 소중한 영혼을 두고 선과 악이 대결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부활에 대한 믿음을 돕는 것은 왼편에 놓인 빵과 붉은 포도주이다.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나누어주며 살과 피로 소개한 음식이다. 이 또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약속하는 부활의 증표인 것이다. 중앙의 물이 담긴 잔과 뒤편의 백포도주는 절제를 의미한다. 기름에 절인 올리브 역시 변함없는 영원성의 표현이다. 결기를 보이는 칼은 부활을 믿고 악을 멀리하는 절제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일 것이다. 

이토록 성스러운 과일이 어쩌면 그리도 육감적이란 말인가! 모더니스트 시인 이장희(1900~1929)의 <하일 소경(夏日 小景)>에도 딸기가 등장한다. 

“운모(雲母)같이 빛나는 서늘한 테-블. 부드러운 얼음, 설탕, 우유피보다 무르녹은 딸기를 담은 유리잔. 얇은 옷을 입은 저윽이 고달픈 새악시는기름한 속눈썹을 깔아매치며 가녈핀 손에 들은 은사슬로 유리잔의 살진 딸기를 부수노라면 담홍색의 청량제가 꽃물같이 흔들린다.” 

자, 입에 침이 고이지 않는가? 과학적으로도 딸기에 함유된 비타민C와 구연산이 우유의 철분과 칼슘의 흡수를 도와서 딸기와 우유는 최고의 궁합이라 한다. 이제 딸기를 먹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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