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매장이나 브랜드를 ‘돈’으로 ‘혼쭐’을 내준다는 의미의 ‘돈쭐’은 ‘착한 소비’의 온라인판 확대 버전이다. SNS에는 돈쭐을 내줘야 할 가게 리스트가 돌아다닌다. 보이콧이 아닌 바이콧(Buycott : 구매 장려)이다. 특히 공정성과 정의라는 화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MZ세대는 이런 류의 ‘단체 행동’을 즐긴다. 더 나아가서 돈쭐 세리머니에 동참을 호소한다.
몇 달 전 롯데백화점 전주점 지하 식품관에서는 ‘함씨네토종콩식품 돈쭐행사’라는 이색적인 프로모션이 진행됐다. 함씨네토종콩식품은 토종 콩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콩 박사’ 함정희 대표가 이끌고 있는 식품 업체다. ‘박사’는 레토릭이 아니다. 고졸 학력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녀는 올해 2월 「국인의 건강 관점에서 콩의 영양, 기원 및 유전자원에 관한 연구」로 보건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3년생이니 칠순 가까이 되는 나이에 이뤄낸 놀라운 성과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함 대표는 투철한 신념 아래 20년 동안 국내산 콩만 고집하며 사업을 영위해오고 있다. 수입 콩보다 국산 콩의 가격이 훨씬 비싸기 때문에 회사는 부도 위기에 처하기 일쑤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단가 부담을 감내하고 있다.
‘국산 콩 지킴이’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함 대표의 사연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 유튜브 채널에 소개됐다. 세바시 측에서도 이례적으로 ‘이런 분은 우리가 돈쭐 내줘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 영상을 감명 깊게 본 롯데백화점 식품 바이어의 제안으로 결국 백화점 한복판에서 돈쭐 이벤트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롯데백화점은 이번 프로모션을 넘어 함씨네토종콩식품의 판로 개척과 온라인샵 입점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어떤 기업이든 갑자기 돈쭐의 대상이 되어 폭발적으로 매출이 상승하는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는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자발적인 의지로 추동되는 돈쭐의 특성상 작위적인 마케팅으로 그런 꿈을 꾸는 것은 난망한 일이 될 공산이 크다. 되레 위와 같은 방식으로 착한 브랜드로 평가받는 곳과 협업하는 방향을 고려해보면 어떨까?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유튜브 영상 한 편도 참신한 판촉 기획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돈쭐에는 소비를 통해 개인의 신념을 드러내는 미닝 아웃(Meaning Out)의 심리가 배태되어 있다. ‘눈치 보면 혼난다’라며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 홍대 소재 ‘진짜파스타’는 익명의 네티즌부터 영부인까지 폭넓은 층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한복 광고를 게재한 후 중국과 일본 네티즌과 국제소송을 벌이게 된 ‘라카이코리아’에는 소송비 후원 물결이 일었다.
돈쭐은 비단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국의 토종 스포츠 브랜드 ‘훙싱얼커’는 ‘천 년 만의 폭우’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허난성에 무려 5천만 위안(88억 원 상당)의 물품과 현금을 지원했다. 훙싱얼커보다 규모가 훨씬 큰 기업을 압도하는 후원 규모였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돈쭐로 화답했다. 상품 가격의 2배를 지불하겠다는 소비자가 등장했고, 회사 서버가 다운됐으며, 재고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샤오미의 레이쥔 회장은 훙싱얼커 신발을 신은 사진을 SNS에 올려 이 행렬에 힘을 실어주었다. 징둥닷컴에서 훙싱얼커의 매출은 한때 전년 대비 50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가치소비에 무게중심을 두는 MZ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주도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데 익숙하다. 이런 성향이 소비행위에 발현된 것이 돈쭐이다. 집단의 힘을 모아 선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바이콧의 미학! 이는 일종의 ‘화폐 투표’적 성격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선거의 핵심은 민심의 변화와 그에 따른 유권자의 최종 선택이다. 표심의 향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