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덜’의 미학, 레스 웨이스트로 시작 〈10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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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덜’의 미학, 레스 웨이스트로 시작 〈1090호〉
  •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8.30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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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sbizconomy@daum.net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라는 말이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일회용 비닐, 플라스틱 등의 사용을 줄여서 쓰레기(waste)를 0(zero)으로 만들자는 구호이다. 물론 제로는 중장기적인 목표치일 수 있다. 다만 몇 글자 안 되는 캐치프레이즈에서 ‘제로’가 갖는 뉘앙스는 남다르다. 누군가에겐 ‘제로’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제로 상태로 못 만들었을 때 되레 제로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이때 우리의 부담을 줄여주는 표현이 ‘레스 웨이스트(less waste)’다. 실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쓰레기를 줄이자는 것이다. 쓰레기를 완전히 없애는 것(zero)만이 선(善)이고, 쓰레기를 ‘덜(less)’ 만들어내는 것은 악(惡)이 아닐 터이다. 후자도 충분히 가치 있는 행위이다. 비교급 표현 하나가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을 이 캠페인에 동참하게끔 할 수도 있다. 환경 운동에 대한 심리적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다. 목표치에 대한 정서적 부담을 완화하고, 제로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찾아서 실천하는 것. 그 출발점에 레스 웨이스트가 있다. 100 아니면 0이 아닌, 그 사이에서 계속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여 나가는 행보. ‘덜’의 미학이다.

지난해 영국의 3위권 기업형 슈퍼마켓인 아스다(ASDA)는 환경단체에서나 만들 법한 이름의 신규 점포를 오픈했다. 이름은 ‘Sustainability Trial Store!’ 말 그대로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매장이다. 초록색으로 물든 매장 외관과 퍽 어울리는 명칭이긴 하지만,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직면한 오프라인 유통 업체에서 ‘가격’이 아닌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구를 점포의 입구에 큼지막하게 내세웠다는 것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이곳에는 많은 제품들이 리필 가능한 형태로 판매되고 있다. 세제나 샤워 젤은 물론 시리얼이나 파스타까지. 식품류의 포장도 최소화했다. 가령 바나나에 비닐 포장이 안 돼 있는 상태로 말이다. 우리가 보통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불필요한 포장지를 하나하나 벗겨내는 일이다. 성가시기 짝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분별없이 쓰레기를 찍어내고 있다. 참고로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세계 3위이다.

이 매장에서 필자의 눈길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은 어구는 ‘Same great value, just less plastic’이다. 뛰어난 가치는 그대로이되, 플라스틱은 덜 사용하는 것! 이 매장의 철학적 지향점을 함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줄여보자는 것, 바로 레스 웨이스트다.

“왜 당신은 용기를 가져오지 않나요?”라는 문구를 부착한 곳도 있다. 바로 영국 최대 소매 업체인 테스코다. 테스코 매장에는 이와 같은 문구들이 곳곳에 게시되어 있다. 용기를 가져오면, 식료품을 그 용기에 담아주겠다는 취지다. 최근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용기내 챌린지’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 물론 용기를 가져오라고 ‘권유’하는 것이지 ‘강권’하지 않는다. 다회용기에 음식을 포장하면 자연히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일 수 있다. 용기(container)를 내밀 수 있는 용기(courage)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불어 테스코는 ‘4Rs’라는 전사 차원의 친환경 정책도 수립했다. Remove(제거), Reduce(줄이기), Reuse(재사용), Recycle(재활용)의 앞 글자를 딴 형태이다. 우리 기업들도 이런 류의 친환경 강령을 만드는 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홈페이지나 각종 인쇄물에 친환경 메시지를 당당히 밝히는 것이다. 선언을 하면 책임을 져야 하니, 의식적으로라도 친환경 공법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도 롯데마트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제거한 김을 출시했고, 매일유업은 플라스틱 빨대를 제거한 멸균 우유 ‘빨대뺐소’를 선보였다. 류준열, 박진희 등 이른바 에코브리티(Eco+Celebrity)들 또한 대중들의 친환경 캠페인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제로’로 가는 험로에도 우리가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은 이처럼 ‘레스’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덜’에 집중해보자. 제로의 시작은 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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