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자 허남훈(문창 98) 동문을 만나다 〈10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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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자 허남훈(문창 98) 동문을 만나다 〈1087호〉
  • 김한백 기자
  • 승인 2021.05.2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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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훈(문창 98) 동문과의 즐거운 소설 여행

허남훈 동문(이하 허 동문)이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작 『해를 묻은 오후』에 인용한 구절이다. 허 동문은 “통상적으로 안개라고 하면 우울함을 나타내잖아요. 그런 안개를 주식에 빗대어, ‘모든 사람은 우울함을 지니고 살아간다’라는 의미를 주는 것이 참신하다고 느껴졌고, 제 소설의 등장인물의 상황과도 맞아떨어져서 저 구절을 인용하게 됐네요”라고 설명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청년들이다. 그 당시 청년들이 겪었던 상황은 10년이 지난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은 허 동문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본지와 함께 허 동문의 삶에 들어가보자.

 

Q. 안녕하세요, 우선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문예창작학과 98학번 허남훈입니다. 올해 한국경제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지난달에 당선작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이 출간되었습니다.

Q. 소설의 제목이 독특한데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제목인가요. 책 내용도 간략히 소개 부탁드려요.

보험 용어중에 ‘거절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보험 사고의 발생 위험이 높거나 위험의 평가가 불가능해서 보험가입이 부적절한 피보험자를 말하는데요. 한 마디로 사고 위험이 높아서 보험사가 인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1997년 IMF와 2008년 금융 위기 그리고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험회사가 거절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소설은 사회에서 거절 당하는 청년들이 나름의 응전과 분투를 통해서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고 또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Q. 이러한 주제를 소설로 쓰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마도 누구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되면 느끼는 당혹감 같은 게 있잖아요. 학교에서 배운 세상과 실제로 부딪힌 세상은 참 많이 다르니까요. 물론 사람마다 온도차가 있겠습니다만 저 같은 경우는 꽤 큰 충격을 받은 편입니다. 그래서 한때 ‘세상을 돌아가는 원리는 결국 모순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가 받았던 당혹감들을 소설로 풀어보고 싶더라고요. 한편으론 2008년 금융위기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분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었고요.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 그러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이면들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Q. 시인을 꿈꾸셨던 것으로 아는데,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꿈 많은 청년 시절을 보내서 시인만이 아니라 영화감독이나 기자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어릴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거든요. 사실 산문보다 시를 선택했던 건 단지 그 길이가 짧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 쓰는 속도가 느린 편이거든요. (웃음) 고교 시절 백일장에 나가면 주어진 시간 안에 산문을 완성하는 게 힘에 부쳤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를 선택하게 됐고 대학에 와서도 시를 더 열심히 읽고 썼습니다. 사실 시인의 꿈은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다만 시의 경우 신춘문예나 문학상에서 본심까지는 몇 차례 올랐는데 아쉽게도 당선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소설의 경우엔 이번이 첫 작품인데, 당선이 되어서 저도 놀랐습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소설 전문 잡지인 AXT를 읽고 ‘소설가들의 세계’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AXT가 소설가들이 편집위원으로 있고, 소설가들이 소설을 리뷰하고, 소설가들이 직접 소설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의 잡지인데요. AXT를 읽으면서 문득 소설의 독자가 아니라 작가가 되어보고 싶은 욕망이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 참고로 AXT의 백다흠 편집장도 명지대학교 동문이에요.

Q. 소설을 쓰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스토리 △인물 △시대상 반영 등등)

심혈을 기울였다기 보다도 가장 고심했던 부분은 ‘서사의 동력’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첫 소설이다 보니, 자신에 대한 신뢰가 많이 부족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쓰는 나는 재밌지만 과연 독자도 재미가 있을까?’ 끊임없이 자문하며 써내려가야 했습니다. 무엇이 이 소설을 쓰게 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 소설을 읽게 하는가. 그것이 가장 고민이었고 스스로 답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Q. 예술가들은 흔히 ‘창작의 고통’이란 것을 겪잖아 요. 창작의 고통을 겪으신 적이 있으신가요?

글을 쓰는 매 순간이 고통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매운맛 떡볶이 같은 것이라서요. 제가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데도 불구하고 끊을 수 없는 떡볶이의 맛처럼 지금도 매일 엉엉 울면서 한줄 한줄을 쓰고 있습니다. (웃음)

Q. 글을 쓰다 보면, 슬럼프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시는 편인가요?

매 순간이 슬럼프에요. 어쩌면 제가 갓 데뷔한 신인 작가이기 때문에 진짜 슬럼프를 겪지 않아서 이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매 순간이 슬럼프고 그냥 슬럼프 속에 들어 앉아서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슬럼프를 극복하기 보다는 다른 작가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위안을 삼는 편이에요. 이를테면 황정은 작가 님이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문장을 쓰는데 평균 8~9개의 문장을 버린다. 같은 문장을 수없이 다른 각도에서 달리 생각해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작업하다보니 한 시간에 한 문장이 남는다. 쓴다기 보다 남는다’ 사실 저는 한 시간에 한 문장조차도 남지 않을 때가 많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구나, 아니 나혼자 반대로 걸어가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위안을 받으며 버텨내고 있습니다.

Q. 소설가로서 혹은 문학인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읽고 쓰는 삶’이 오랫동안 꿈꿔온 삶이었어요. 그 삶을 독자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요.

Q. 학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책이 있다면?

좋아하는 작가도 책도 너무 많아서요. 이 질문엔 제가 가장 여러 번 읽은 책을 말씀드릴게요. 일단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늘 한 손에 쥐고 있고요. 살만 류슈디의 『한밤의 아이들』,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 황정은의『디디의 우산』이에요. 그리고 소설은 아니지만 김삼웅의 『장준하 평전』과 송우혜의 『윤동주 평전』 을 반복해 읽었습니다.

Q.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고 지내시나요?

장편 소설을 완성하는 순간 소설의 완성도나 등단 여부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글을 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던 일들을 대부분 정리하고 지금은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라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대부분 책을 읽거나 취재를 합니다.

Q. 대학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고교 시절부터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당시에는 4년제 대학에 문창과가 흔치 않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은 주로 명지대 문창과를 지망했습니다. 다들 그렇듯 저도 꽤나 간절했는데 면접날 받아든 수험표의 번호 뒷자리가 ‘1004’인 것을 확인하고 다소 안도했던 기억이 나네요. 대학 시절은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어서 집에도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밤늦게까지 학교나 학교 주변에서 놀다가 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학생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숙식을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해결했습니다. 학생식당에서 일하면 밥을 공짜로 주었었거든요. 제 기억에 그때 시급이 1,500원 정도였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되게 옛날 얘기로군요. (웃음)

▲사진은 1998년 축제 응원전 당시 허 동문(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모습이다. (제공/ 허남훈 동문)
▲사진은 1998년 축제 응원전 당시 허 동문(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모습이다. (제공/ 허남훈 동문)

Q. 동아리나 학회 같은 활동은 하지 않으셨나요?

문창과 내의 시학회 ‘예감’, 동아리는 민중노래패 ‘땅의 사람들’, 그리고 16대 인문대 학생회의 집행부 활동을 했습니다. 그외 여러 작은 소모임 활동을 했고요. 대학시절 다녀온 OT, LT, MT를 다 세어보니 거의 서른 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한번은 일주일에 MT를 세 번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겨울방학 때였는데 월요일과 화요일은 학회, 수요일과 목요일은 동아리, 토요일과 일요일은 인문대 학생회 MT였던 거로 기억해요. (웃음)

Q. TV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여행’ 조연출을 맡으신 것으로 아는데요.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무엇 인가요?

시 쓰러 대학에 갔지만 막상 대학에 가서는 영화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마침 그때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가 열린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까요. 영화 감독이 되려고 한겨레 영화제작학교에 들어가서 단편 영화를 찍기도 하고, 거기서 만난 친구들과 독립영화 제작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영상원이나 영화아카데미에 도전할지, 상업 영화 현장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취업을 할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고 저 스스로 나름 타협을 한 것이 ‘영화와 관련된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었어요. 마침 ‘출발 비디오 여행’을 제작하는 방송프로덕션에서 채용 공고가 났고 운이 좋게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은 2005년, 허 동문(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출발비디오 여행 조연출 당시 MC 서민정, 박경추 아나운서와 찍은 사진이다. (제공/ 허남훈 동문)
▲사진은 2005년, 허 동문(오른쪽에서 첫 번째)이 출발비디오 여행 조연출 당시 MC 서민정, 박경추 아나운서와 찍은 사진이다. (제공/ 허남훈 동문)

Q. 기자 생활을 하셨던 것으로 알아요. 기자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방송 프로덕션에서 일하다 개인 사정으로 고향인 춘천에 내려가야 했는데, 마침 강원일보에 채용 공고가 났고 지원해 기자가 되었습니다. 기자는 어릴적부터 막연히 동경하던 직업이었어요. 글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가장 먼저 그려보는 직업이 작가와 기자일 테니까요. 춘천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보니 기자가 된다면 당연히 강원일보 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되었네요. 그렇게 강원일보를 몇 년 다니다가 서울의 신문사로 이직했고 오래지 않아 기자일을 관두었습니다.

Q. 이렇게 여러번 직업을 바꾸는 동안에도 문학인으 로서 꿈을 놓지 않았던 동기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순전히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덕분입니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 후배들과 함께 지금까지도 독서모임을 해오고 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만나 독서 토론을 하고 친목도 다지는 모임인데요. 대학생들처럼 일년에 한번씩 MT도 갑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오프라인 모임은 못하고 2주에 한 번씩 줌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 덕분에 문학과 직접적인 상관없는 일을 해오면서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이 제겐 곧 책이고 스승이고 벗입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창작의 고통과 슬럼프 속에 더 깊이 파묻혀서 한줄 한줄 다음 작품을 써내려가는 것이 저의 유일한 목표이자 계획입니다.

 

다양한 경험을 다채로운 서사로 풀어내는 문학인 허동문. 한국경제 신춘문예 김인숙 심사위원은 그의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은 소위 당신이 말하는, 혹은 우리가 말하는 삶에 대해 해석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질문도 하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 속을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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