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 인권, 이대로 괜찮은가요? 〈10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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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인권, 이대로 괜찮은가요? 〈1087호〉
  • 김태민 기자
  • 승인 2021.05.24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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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잘못하면 소년원으로, 대학생이 잘못하면 대학원으로 간다” 많은 청년이 대학원을 위와 같은 뼈있는 농담조로 표현한다. ‘관행’이라는 이유로 자행되는 대학원에서의 각종 인권침해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원생들은 △연구실 내 연구 비횡령 문제 △부당한 업무 지시 △학위를 담보로 연구목적 외 노동 강요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 본지는 대학원생의 인권사각지대와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 대학원생 인건비 문제를 파헤쳐보다.
대학원생은 어떻게 인건비를 받을까? 대학원생이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연구보조원 인건비
첫 번째는 지도교수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인건비를 받는 방법이다. 이 때 프로젝트 참여율에 따라 지급되는 인건비가 다른데, 프로젝트 참여율 100%를 기준으로 석사 과정은 최대 월 180만 원, 박사 과정은 최대 월 250만 원까지 받을 수있다. 참여율은 프로젝트 연구책임자인 교수가 연구과제 △참여 내용 △기간 △시간 등을 고려해 나누게 되는데 기준이 다양하고 참여율을 수치로 정확히 나누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또, 몇몇 연구는 참여율 이상으로 노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한 만큼 인건비를 받기는 어려울수 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인건비 지급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 180만 원과 250만 원은 최대치이기 때문에 이를 전부 수령하는 대학원생들은 많지 않다. 실제로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다 중도 포기한 A 씨는 “애초에 연구비를 정해놓고 참여율을 끼워 맞추는 형식이라 실제 업무 강도와는 무관하게 인건비를 받게 된다”라며 “프로젝트 세 개 정도는 참여해야 180만 원을 받는 수준이다. 제일 많이 받았을 때가 120 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답했다.

BK21 인건비

대학원생이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BK21(Brain Korea 21) 사업단에 들어가 관련된 일을 하며 인건비를 받는 방법이다. 하지만 BK21은 경쟁입찰구조로, 연구책임자인 교수를 중심으로 해당 연구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야 연구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들은 논문과 연구실적을 계속해서 만들어야하고, 연구과제비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달성해야 연구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 상주하여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받는 인건비에 비해 강도 높은 업무를 하게 될 우려가 있다.

BK21 사업에 선정된 교육연구단은 지원받은 사업비의 60% 이상(일부 분야는 50% 이상)을 대학원생 연구장학금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 외 사업비는 △신진연구인력 인건비 △대학원생 국제학술대회 참가경비 △교육연구단 운영비 등에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교육부가 지난해 7월 연세대 학교 감사결과를 공개하면서 발표한 자료에는 “연세대학교 교수는 2014년 3월부터 2018년 3월까지 한국연구재단 등이 지원하는 16개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참여한 연구원 15명이 지급받은 인건비 중 석사과정은 월평균 60만 원, 박사과 정은 월평균 80만 원 정도만 실제 연구원들이 사용토록 하고 나머지는 연구실 공동비용으로 관리하도록 지시했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14년 9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총 7개의 연구과 제에 참여한 석사과정 대학원생 B 씨가 자신 앞으로 책정된 인건비 2,468만 5,000원 가운데 실제로 받아간 돈은 1,108만 5,000원이었다. 나머지 1,360만원은 ‘연구실 공동비용’ 명목으로 사용됐다. 받아간 돈보다 연구실 공동비용 명목으로 전용된 돈이 더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연구비를 연구실 공동비용 명목으로 전용하는 경우는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었다. 지난해 2월에는 ‘BK21 지원사업’과 ‘연구중심대학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된 서울대학교 교수 C 씨가 대학원생등 학생연구자들에게 지원되는 인건비 중 일부를 되돌려 받아 연구실 운영비 등으로 사용하다 적발돼 교육부로부터 연구비 환수처분과 지원대상 제외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조교 인건비

세 번째 방법은 ‘조교’로 일하며 인건비를 받는 것이다. 조교는 △교육조교 △연구조교 △행정조교가 있다. ‘2019년 형사정책연구소, 대학 내 인권침해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의 절반 이상은 △교육조교 △연구조교 △행정조교 및 근로장학생 등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들이 근로를 제공함에도 인건비를 장학금의 형태로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국내 대학원의 상당수가 장학금이 등록금과 연동돼 이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를 통해 수익을 얻고 싶어도 할 수없는 것이다. A 씨도 “조교 인건비는 장학금으로 지급되는데 장학금은 등록금 액수를 초과할 수 없는 규정이 있다. 조교 업무 두 개를 뛰어도 생활을 간신히 유지하는 정도였다”라고 밝혔다.

전술한 것처럼 대학원생들이 ‘조교’로 일하며 받는 돈은 ‘근로소득’이 아니라 대부분 ‘장학금’의 형태를 띠고 있다. 대학원생의 노동에 대한 대가가 장학금으로 지급되는 경우 그 노동은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노동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전의 한 대학의 대학원생 K 씨는 조교 업무 중 학과 교수의 지시로 사물함을 제작하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럼에도 대학 측은 장학조교는 근로자로 볼 수 없기에 산업재해 보상 및 치료를 지원할 법적 조항과 사례 근거가 없다고 외면했다. 해당 교무연구팀 담당자는 “장학조교는 급여를 주는 것도 아니고 대학원생 조교, 교수의 연구업무나 학과의 학사업무 보조를 하고 장학금을 지급 받기 때문에 근로자로 보지 않는다”라며 “K 군은 근로계약서가 아닌 교육부에서 내려온 복무협약서를 썼다”라고 말했다. 복무협약서가 근로자라는 내용을 증빙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지난 2018년 3월 30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 기술정책대학원에 따르면 전국 주요 대학교에서 △교육 △연구 △행정 등을 하는 대학원생 조교 1만 1,679명 중 1만 585명(90.6%)이 업무와 관련한 계약 없이 근로를 제공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무려 90%에 달하는 대학원생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원생들은 노동 강도와는 무관한 급여를 받으며 근로자로서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A 씨는 “아무리 대학원생이라도 생활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조교 업무 두 개를 하면서 생활을 간신히 유지해왔다”라며 “조교 업무를 두 개나 하다 보니 업무 때문에 시간이 부족해 공부를 못했다. 대학원 다니는 동안 공부만 하는 게 소원이었다”라고 밝혔다.

대학원생 인권 보장되고 있을까?

이처럼 대학원생들은 온전히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만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인권은 잘 보장되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및 대학원 총학생회가 서울대학교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2016년 11월 11일부터 30일까지 20일간 조사를 벌여 총 1,222명이 응답한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설문조사(이하 서울대 설문조사)’를 살펴봤다.

학업과 연구 관련 권리의 측면에서 대학원생들은 △ ‘타인의 연구 및 논문작성’ 13.4% △‘논문이나 추천 등과 관련 대가 제공 요청’ 4.8% 등 연구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내에서 조교 활동, 프로젝트 수행 등 노동 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에서는 △‘적정 수준의 보수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40.6% △‘연구비 관리 등의 과정에서 비윤리적 행위를 지시받았다’ 20.8% △‘교수의 개인적 업무 수행을 지시받았다’ 14.7%로 다양한 층위의 인권문제가 교육연구환경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5년 189개 대학 1,209개 대학원 1,906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 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조사(이하 인권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교수 등의 학업 · 연구권 보장 수준에 대한 질문에서 △‘공동연구 수행 등으로 학업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34.5% △‘연구 프로젝트 수행 전 연구비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가 33.0% △‘조교 등으로 일하면서 과도한 업무를 한 경우’가 30.1% △ ‘연구나 프로젝트 수행에 따른 정당한 보수를 받지 못한 경우’가 25.8% △‘원치 않는 프로젝트 참여로 본인의 연구를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16.5% 등의 사유로 학업
· 연구권을 보장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연구논문이나 연구 결과에 대한 지식재산권 보장도 미흡했다. △‘교수의 논문 작성, 연구 수행의 전체 또는 일부를 대신했다’는 응답이 11.4% △‘교수에 의해 학술지 게재 논문에 이름을 올려줄 것을 강요받았다’는 응답은 7.4% △‘교수에 의해 아이디어나 논문 내용을 도용당했다’는 응답은 2.2%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28일 국민일보가 대학원생 인권단체 ‘대학원생119’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2월부터 지난해 6월 중순까지 이 단체에 제보된 대학원생 피해 건수는 105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의 사건에서 동시에 발생한 사례까지 합치면 제보 사건은 216건이나 된다. 피해 사례별로는 △폭언 · 폭행 32건(14.8%)에 이어 △연구비 횡령 29건(13.4%) △논문투고 방해 · 졸업지연 28건(13.0%) △연구부정 · 저작권 강탈 25건(11.6%) △임금체불 · 무보수노동 21건 (9.7%) △사적 업무 지시 13건(6.0%) △성희롱 · 성폭행 11건(5.1%)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적지 않은 대학원생들이 높은 업무와 무관한 인건비를 받는 것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 침해, 사적지시,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피해자인 것은 알지만 대응하지 못하는 그들

더 문제인 것은 많은 대학원생이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대학원생 중 43%는 이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당사자에게 직접 문제제기’를 하거나, ‘인권센터 등 제도적 통로를 통해 대응했다'라고 밝힌 응답자는 약 10%였다. 열 명 중 네 명은 아예 대응조차 하지 못했고, 문제제기나 제도적 통로를 통해 대응한 대학원생은 한 명 남짓이었다. 이들은 왜 부당한 처우를 경험하고도 대응하지 못했을까? 인권위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65.3%의 대학원생들은 폐쇄적인 학계 풍토, 엄격한 상하관계 때문에 부당 처우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학점 · 졸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48.9%),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43.8%) 등의 이유 였다.

실제로 문제를 제기한 학생이 불이익을 받은 사례도 존재했다. 지난 2019년 형사정책연구소가 발표한 ‘대학 내 폭력 및 인권침해 실태와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보면, 피해에 대해 공론화한 이후 피해경험자에 대해 나쁜 평판이 돌거나(36.1%), 학업이나 진로에 불이익을 받는 등(24.4%)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보고가 높았는데, 성적 피해 영역 및 연구 · 학습 영역에서 진로상 불이익을 받거나 휴학을 하게 되는 경험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공론화 이후 가해자의 상황에 대해서, 모든 침해유형에서 가해자가 결국 아무런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나, 실제 학생들이 대응을 포기하는 이유인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교수자와 대학원생의 관계에서 오는 것처럼 보였다. A 씨는 “금전적인 부분과 같은 경우에는 문제제기를 해도 보장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한 분야를 가지고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그 분야에서 연구하는 교수님에게 문제 제기를 하게 되면 해당 분야에서 낙인이 찍힐 위험이 있다”라고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어떻게 하면 대학원생이 학생이자 노동자로 인정받으며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전국대학원생 노동조합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 △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가 지난 2018년 10월 발표한 ‘대학원 · 연구제도 개선을 위한 공동선언문’에 이들이 원하는 대학원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들은 △인권 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 조치와, 사후 처리를 담당하는 인권센터 등의 전담기관의 적극적인 도입 △내실 있는 교육 과정과 교수자 확충 △근로계약을 통한 노동권 보장 등을 주장했다. 적극적인 정책적 · 제도적 개입을 통해 대학원을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대학원은 고도의 학술연구 기관으로, 전문 연구 인력을 키워내는 곳이다. 이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가야할 연구자를 길러낼 수 있는 대학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도, 대학도 대학원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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