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민의 하버드씽킹] 창의성에 대한 하버드씽킹 〈10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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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민의 하버드씽킹] 창의성에 대한 하버드씽킹 〈1087호〉
  • 장기민
  • 승인 2021.05.2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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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분야가 타격을 입게 되었지만, 그중 교육 분야가 입은 타격이 가장 컸다. 위기상황의 대처 능력이 어느 정도 배양된 성인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가는 산업 분야는 그야말로 어떻게든 상황대처가 가능했다. 하지만 미성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그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교육 분야에서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전적으로 오프라인에 의존하던 교육방식은 비대면 원격수업으로 대체되었고 원격수업 화면의 모습 뒤에서 학생들은 조금씩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사 역시도 딴 짓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원격수업에 대한 피로감이 쌓였는지 직접 수업을 진행하기보다 EBS 영상을 틀어주는 경우가 더 많았고, 이로써 수업의 질은 현격히 떨어졌다. 수업의 질 저하는 학생들의 학력 저하로 이어졌고, 심지어 ‘근의 공식’ 도 모른 채 중학교 3학년을 마치는 학생들마저 생겨났다. 대한민국 교육산업의 정 중앙에 커다란 싱크홀이 생겨버린 것이다.

대입 수능으로 이어지는 모든 교육과정에서 어느 한순간도 무의미한 부분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학생들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고3이 되기까지의 모든 학교 공부에 총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지금 그 과정에 문제가 생 겨버린 것이다.

미국의 수능인 SAT의 경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2020년, 대입에서의 그 비중을 하향 조정했다. 미국의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과 프린스턴대학 등이 학생들의 SAT 점수 제출을 필수에서 선택으로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힘들게 SAT를 안 봐서 좋았고, 낮은 SAT 점수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내지 못하던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의미인 SAT. 이 시험의 점수를 제출하지 않아도 대학에 입학할수 있도록 대처한 미국 명문대학들의 행보는 과연 우리들의 시각에서 창의적인 모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동아일보 김도연 논설위원은 칼럼에서 전국 모든 학생을 한 줄로 세우는 획일적인 평가가 바로 수능이라며 수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다. 정말로 우리의 수능은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항에서 반드시 정해진 정답 하나만을 골라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획일적이고 극단적인 시험이다. 만약 우리의 수능이 미국의 SAT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주관식 답변이 가능한 상태라면, 만일 오답을 적을지라도 아예 틀린 답이 아닌,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는 평을 받으며 절반의 점수라도 받게 될 수는 있 을 것이다. 하지만 수능은 5개의 보기 중 정답이라 미리 정해진 단 1개의 답만을 선택하도록 구조화되어있고, 우리는 이 시스템에 매우 익숙해져 있다는 게 문제다. 서로 의견이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며 아예 틀린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이 사회의 현상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이같은 흑백논리에 몹시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어려서부터 다양성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자라오고 있으며 그것에 대한 개혁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다. 만약 대입 수능에서 10점짜리 주관식 문제의 답안에 일부 논리가 타당하다는 이유만으로 5점이나 3점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공정성에 문제가 생길 것이기에 우리의 획일적 수능 제도는 굳건히 이어지는 상태다. 문제는 그러한 교육을 받으며 체계적으로 성장해 온 우리들의 모습 속에 사회적으로 인격적인 획일성이 드러 나고 있다는 점이다.

하버드대학교가 SAT 점수를 포기할 수 있었듯 우리나라의 명문대인 서울대학교에서도 수능점수를 포기하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아마 공정성이 저해된다며 반발이 일 것이다. 우리의 기준에서 공정성이 없다는 말의 뜻은 획일적이지 않다는 뜻과 동일하다. “획일적이지 않으므로 이건 무효다” 또는 “문제가 극단적으로 출제되지 않았기에 평가의 기준이 모호하다”등의 표현은 우리가 예쁘게 포장해서 내뱉고 있는 말들의 본래 뜻일지 모른다.

프랑스의 수능인 바칼로레아, 호주의 대입제 도, 미국의 SAT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시험에서는 주관식을 포함한 문제들을 통해 다양한 학생들의 창의적인 목소리를 청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수능을 치르고 그 점수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창의성을 조금 죽일 수밖에 없다.

 

장기민 디자인경제연구소장 shoeface@daum.net
장기민 디자인경제연구소장 shoefac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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