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게 문 하나 있는 거랑 없는 거랑 완전히 달라요. 이불에 음식 냄새도 안 배지, 문만 닫으면 아주 내 세상이 펼쳐진다니까.” 6개월전 새로 이사 온 방은 소위 1.5룸이었다. 중개사의 조수석에 앉아 ‘원룸이면 원룸이고, 투룸이면 투룸이지 무슨 일쩜오룸이야’라고 생각했지만, 그곳은 분명 내가 살던 그곳과는 달랐다.
이전에 내가 살던 집은 5평 조금 넘는 원룸이 었다. 그 방을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저렴’ 했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라 편의점, 카페 등 기반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구옥(舊屋)을 리모 델링해 월세에 비해 집이 넓다는 것도 이유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집의 본 모습은 겨울이 되면서 펼쳐졌다. 구옥+단층 원룸의 단점이 한데 드러난 거다. 벽돌 한 장짜리 벽은 바깥 공기를 그대로 전달했고, 벽지는 얼고 녹기를 반복해 가며 습기와 곰팡이를 잔뜩 머금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닦아도 닦아도 사라지지 않던 곰팡이의 늪. 그뿐이랴. 방에 비해 쓸데없이 넓은 화장실은 옆방의 소음을 더 크게 전달하는 울림통 역할을 했고, 미리 갖춰져 있던 침대며 냉장고도 하나씩 고장 신호를 내기 시작했다.
집을 옮길 결심을 하며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하나, 환기와 채광이 좋을 것. 더 이상 내 인생에 곰팡이는 없어야 했다. 둘, 2년간 아끼고 아껴가며 모아둔 적금이 있으니 보증금은 조금 더 세도 괜찮음. 다만 월세가 더 비싼 건 피하자. 셋, 방도 있으면 좋겠다. 그저 취향일지 모르지만, 일어나자마자 눈앞에 싱크대가 보이는 게 나는 이사 첫날부터 왠지 서글프고 또서글펐다.
새집으로 들어선 순간 커다랗게 설치되어 햇살을 한껏 전해주던 창문과 가스레인지 옆 방문이 눈에 들어왔다. 따지고 보면 방 크기만 줄이는 셈이지만 ‘여기부터 네 공간이 펼쳐질 거란다’라며 속삭이는 것 같던 연갈색의 방문이 ‘존재’했다. “어머….” “거봐, 학생이 마음에 들 줄 알았다니까?”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계약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했습니다, 일리는 당연히 없다. 이사 첫날부터 아쉬운 점들이 눈에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은 또 O방을 열어 매물을 살피기 시작했 다. ‘조금만 수도권 밖으로 빠지면 투룸도 가능 하겠는데?’ ‘지난번에 영끌한 K 과장은 나 같은 걱정 안 해도 되겠지?’하며 말이다.
“인간은 황소 같은 힘도 없고, 말처럼 잘 달릴 수도 없다. 그런데도 소와 말은 인간에게 평생을 부림 당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인간이 무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화목하면 단결하고, 단결하면 보다 큰 힘을 가지며, 큰 힘을 가지면 강력해지고, 강력해지면 다른 생물을 이길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자 순자는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규범’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반해, 재화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범을 우리는 예(禮)라고 부른다.
순자는 예를 갖춘 사람을 군자(君子)라고 불렀다. 그 반대편엔 소인이 있다. 군자와 소인은 이런 특징을 가진 존재다. 첫째, 군자는 도를 얻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소인은 욕망을 얻는 것을 즐거워한다. 둘째, 군자는 능숙함에 관계없이 좋은 일만 하지만, 소인은 나쁜 짓만 일삼는다.
셋째, 군자는 주변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는다. 넷째, 군자는 때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열어 부동산 뉴스를 읽다가, 얼마전 책에서 본 군자와 소인의 비교를 떠올렸다. 서울에 집 한 채 없는 가족을 때때로 원망하고, 나날이 오르는 부동산과 주식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리는 그저 ‘소인’인 걸까? 과연 이 세상에서 ‘군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군자가 될 필요는 있을까? 방문을 닫은 나는, 쿵쿵, 층간 소음을 ASMR 삼아 몸을 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