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악의 평범성 〈10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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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악의 평범성 〈1087호〉
  • 강순전 교수
  • 승인 2021.05.24 00: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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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전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강순전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악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악을 생각할 때 머리에 뿔이 달리고험상궂게 생긴 악마를 떠올린다. 보다 현실적이고 완곡하게 생각해도 평범한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잔인한 행동이나 흉측한 인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한나 아렌트가 본 아이히만처럼 악은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일급 전범 아이히만은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숨어 살다가 어느 날 체포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송치된다. 나치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으로 망명하여 대학교수로 활동하던 아렌트는 이 소식을 접하고 직접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기 위해 언론사에 취재를 자청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아이 히만은 자신이 독일 제3제국의 법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며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그가 형벌을 피하기 위해 변명을 할 뿐이라고 비난했지만,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말이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히만은 진정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 애국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성실한 공무원이었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 국가를 위한 충직을 행한 것이다. 유대인 대량학살을 위해 핵심적 역할을 한 잔인한 범죄자가 우리 사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이렇게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아이히만이 진정성을 가지고 국가에 충성한 애국자라는 사실과 가장 끔찍한 반인륜적 범죄를 범한 악인이라는 사실이 병존하는 아이러니를 아렌트는 목격한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정성을 가지고 애국했다는 아이히만의 주장은 거짓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이 그의 사악한 범죄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칸트는 인간이 누구나 본래 양심을 갖고 있기에 자신의 양심에 따르고자 하는 진정성에서 행동한다면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선악의 기준이 인간의 마음 안에 있다는 내재주의다. 칸트의 뜻을 이어받아 낭만주의 자들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선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 진정성이 곧 선한 행위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헤겔은 이러한 내재주의가 아이히만의 경우처럼 내면의 진정성을 가지고 악한 행위를 선한 행위로 믿게 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선악의 기준이 개개인의 마음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넘어선 사회의 규범에 있다는 외재주의를 주 장한다. 선의 기준은 개인이 선하다고 진심으로 믿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개인들이 이성적 사고를 통해 선이라고 서로 인정하는 내용에 있다는 것이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자신의 행동을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질책한다. 아이히만의 양심을 지배했던 것은 제3제국의 정치이념인데, 아이히만은 그것이 옳은 것인지를 마땅히 생각해봤어야 한다. 헤겔에 따르면 아이히만은 자신과 자신의 집단인 나치가 옳은지의 여부를 보다 큰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성의 기준으로부터 반성하고 판단했어야 한다. 잔인무도한 악마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근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히만과 같은 끔찍한 범죄자에게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악을 행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조직 속에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한다. 역할을 잘 수행하면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보상을 많이 받을수록 우리는 자신이 훌륭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보상을 받기 위해 자신이 속하는 조직이 옳지 않은 행위를 계획하고 자신에게 수행할 것을 요구해도 그것을 기꺼이 수행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행위는 자신이 속한 조직 밖에서는 옳지 않은 행위 라고 평가할 것이지만, 때로는 보상의 달콤함 때문에 때로는 “나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조직에 반하는 행위를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해야 해” 라고 변명하면서 옳지 않은 일을 행한다. 그렇다면 먹고 살기 위해서 동포를 잡아들이는 일본군 순사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친일 부역자를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아이히만과 나치의 종사자들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것이 옳지 않은 한 하지 말았어야 해, 그런 방식으로 먹고살지 말았어야 해”라고 말할 수 있는 한, 우리도 우리의 일상에서 옳지 않은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가로 보상의 달콤함을 희생당한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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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종 2021-06-19 17:04:2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56기 보도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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