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락의 인문학 공동체] 요즘 20~30대 〈10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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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의 인문학 공동체] 요즘 20~30대 〈1086호〉
  •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 승인 2021.05.10 0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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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06년,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벌어진 펠로폰네소스 전쟁 막바지. 아테네 해군은 스파르타 해군과 아르기누 사이 제도 인근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는 스파르타군의 전투원이 대부분 베테랑급인 데 비해 고갈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신전을 장식한 금박까지 긁어내야 했던 아테네군은 배를 타본 적도 없는 신참들이 대부분인 급조함대였다. 전력이 훨씬 열세인 상황에서, 아테네군은 함대를 넓게 펼쳐 스파르타군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대승을 거둔다.

그러나 전투 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물에 빠진 군인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승전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그책임을 놓고 재판이 열렸고 해전을 승리로 이끈 아테네 장군 8명은 모두 사형에 처했다. 이때 사형된 장군 중에는 아테네 최고 정치가였던 페리클레스의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아테네 민주정의 최대 스캔들 중 하나로 거론되는 아르기누사이 해전 장군들의 재판이다.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패배하기까지 약 100년간의 아테네는 민주정치와 문화 예술 철학 사상을 꽃 피운 황금기였다. 에피알테스에 이은 페리클레스의 개혁이 성공해 성인 시민 남성들은 자산규모에 상관없이 정치에 참여하며 최고위직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아테네는 그리스의 학교이자 서구 문명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이면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적에 대한 도편 추방과 끊임없는 고발, 기소, 재판으로 얼룩졌다. 사법개혁을 단행한 민주파 지도자 에피알 테스는 암살됐다. 기소되고 재판을 받은 정치가로 페리클레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유럽 근대 문명의 기원으로 흔히 르네상스 시대를 꼽는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고전적인 저작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을 읽다 보면 눈에 띄는 두 도시가 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다. 두 도시 모두 공화국으로, 상업을 통해 부를 쌓고 근대국가의 모습을 선취한 면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두 도시가 대조적인 면도 많다. 그중 하나가 정치다. 베네치아의 정치가 비교적 안정됐던 반면 피렌체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교황당에 속했던 피렌체는 황제당이었던 인근 도시와 피나는 쟁투를 벌였고 나중엔 교황당이 흑당과 백당으로 나누어 싸웠다. 백당의 지도자였던 단테가 정쟁에서 패배한 뒤 다른 도시를 떠돌며 『신곡』을 쓴 것도 이때였다. 부유층과 하층민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 하층민들이 잠시 권력을 잡았으나 머잖아 부유층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됐다. 이후 부유층에 의한 과두정치가 이어지다 메디치가(家)가 집권했으나 프랑스군의 침입으로 도시 밖으로 추방되었다. 시민들은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도미니크회 수도사인 사보나롤라의 지도 아래 단합했으나 변심한 시민들은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보나롤라를 화형대에 세웠다.

전쟁과 정적에 대한 재판, 추방, 사형 등의 연속. 재미난 것은 단테, 보카치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루넬레스키, 마키아벨리 등의 천재가 활약하며 르네상스의 문화예술과 학문, 사상을 꽃피웠던 시기가 바로 이때라는 점이다. 그리스 문명의 황금기를 열었던 아테네 시민들이 그랬듯이 피렌체 시민에게도 고도의 정치의식이 있었다.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모두 글자를 읽을 줄 알았고, 당나귀 몰이꾼까지 단테의 칸초네를 읊었다고 한다.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가 기록되었고 백과사전도 편찬됐 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정치 참여로 가능했던, 시민들의 지성과 자유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작용이 없었을 리 없었다. 피렌체 민주정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오죽하면 단테가 수시로 헌법을 개정하는 피렌체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환자에 비유했을까?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얼마 전 7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세월호 특검이 출범했다. 아르기누 사이 해전 뒤 바다에 버려진 군인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은 어떻게 이뤄질까? 요즘 국내 정치판은 영일(寧日)이 없다. 신문 방송과 수많은 일인 미디어까지 가세해 온갖 정치 뉴스를 만들어낸다. 민심을 현혹하는 가짜 뉴스도 넘친다. 자주 흔들리며 변화하는 2030을 두고 비관과 낙관이 교차한다. 그러나 정치적인 안정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생각 거리가 많다. 단군 이후 가장 정치적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개국한 이후 최고의 황금기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paideia@gmail.com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paidei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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