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스 카이사르, 너무나도 유명한 고대 로마의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가 집정관 으로 부임하여 가장 먼저 시행한 제도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가? 당시 그는 원로원 회의에서 이루어진 모든 토론을 그 이튿날 포로 로마노의 한쪽 벽에 써 붙였다. ‘악타 디우르나(Acta diurna)’라고 불렸던 이 제도를 통해 카이사르는 본래 일반 백성들과 차단돼 있었던 원로원 회의를 공개함으로써 그들만의 배타적인 특권을 무너뜨릴 수있었다. 이쯤에서 눈치채신 독자도 있으실것 같다. 그렇다. 이는 오늘날 신문의 조상격 되는 제도로, 사실 그 이름부터 ‘daily act’, 즉 일보(日報)다. 이처럼 신문은 그 등장부터 누군가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을 하고 있었고, 이 목적은 언론 보도가 시발점이 되었던 6월 민주항쟁이라는 대표적인 사례를 되돌아볼 때 아직까지 유효하다. 그렇다면 이 관점에서 명대신문은 과연 어떠할까.
우선 명대신문 1084호 6~7면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7일 치러진 서울특별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대신문에서는 각 후보자의 취재를 통해 얻은 여러 주제, 특히 청년과 관련한 답변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각 후보자의 당선 이후 행보를 예측해볼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공약을 어기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는지에 관한 판단까지 이루어지니, 앞서 말한 본분을 성실히 수행하는 기사가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다음인 8면에서는 강경대 열사 30주기를 맞아 그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있었다. 명대신문은 강경대 사건의 배경부터 결과까지 차근차근 톺아봄으로써 그를 추모하고 있었는데, 특히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 재학생 중 강경대 열사를 아는 비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으며, 자세한 사항에 관해서는 그 비율이 더욱 줄어들었다. 그렇기에 명대신문은 10면에서 근래 화두인 총장직선제와 이를 연결 지으며 강경대 사건을 그저 과거의 일로서 잊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대학신문의 역할 중 하나가 ‘학교, 학생, 직원 3주체에 대한 감시’라고 하지 않던가. 이 기사 역시 학교와 학생 모두를 감시하고 있었다.
마치면서, 신문의 첫 등장 당시와 비교하면 오늘날에는 더욱 다양하고 전문화된 주제들이 넘쳐난다. 그렇기에 이들을 모두 검증하고 감시하는 과정에서 더욱 큰 어려움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이러한 상황에서 크게는 국가를, 작게는 학교와 학생을 감시하며 신문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고 있는 명대신문이 앞으로도 그런 모습을 잃지 않길 응원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