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놀로그] 우리가 사랑했던 것, 헛됨은 없어라〈10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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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놀로그] 우리가 사랑했던 것, 헛됨은 없어라〈1071호〉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11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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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

  "순간을 사는 것이 인생이며 순간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것이 바로 영혼을 극복하는 것이다. 앞으로 전진하라. …… 우리가 사랑했던 것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것 그 어느 하나 헛됨은 없어라."

  대학 시절 새 다이어리를 장만할 때마다 다이어리 제일 앞 장에 써놓았던 글귀다. 이는 시인 임동확의 ‘부치지 않은 편지-파에돈에게’에 등장하는 시구로, 시인이 5.18 민주화운동의 희생자 이정연 열사의 일기 중 한 대목을 인용한 문장이다. 당시 전남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 이정연은 시민군으로 합류해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중 계엄군이 쏜 탄환에 맞아 5월 27일 유명을 달리했다.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기 전 이정연 열사는 부모에게 “우리가 한 방울의 피라도 더 흘려야 군부독재를 뿌리 뽑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 말은 유언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것. 괴로움 당했던 것. 아무것도 헛됨은 없어라’는 그의 묘비에 새겨졌다. 저 문장 ‘우리가 사랑했던 것, 헛됨은 없어라’를 부제로 하는 공연이 무대에, 아니 역사의 현장에 오른다.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을 기념하는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다. 제목과 달리 공연은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5월 18일 피의 일요일로 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그때 거기 있던 시민들이다. 구두닦이, 두부 장수, 식당 주인, 시장 상인, 양복점 사장, 외판원, 은행원, 건달, 임신부, 노인, 고등학생, 재수생, 대학생 등. 출연자만 무려 35명이다. 주요인물 한두 명의 초상화가 아닌 그날의 풍경화인 셈이다. 저마다 다른 사연으로 시민군에 합류하게 된 보통 시민들의 눈을 통해 공연은 1980년 고립되었던 섬 광주의 열흘을 보여준다.

  이전에도 5월 광주를 다룬 작품은 많았다. 영화(〈택시운전사〉, 〈화려한 휴가〉, 〈26년〉, 〈꽃잎〉), 소설(〈소년이 온다〉, 〈오래된 정원〉, 〈봄날〉) 등 다양한 장르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또한 〈오월의 신부〉, 〈짬뽕〉, 〈푸르른 날에〉 등의 연극으로 무대화되기도 했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도 그날의 광주를 배경으로, 시민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자장 안에 있다. 이 공연이 앞선 작품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관객 참여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는 관객 역시 시민 중 한 명으로 참여시켜, 단순히 보여주는 식이 아니라 경험하게 한다. 실제로 공연이 진행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비극의 현장이었던 전남도청 터에 세워진 건물이다. 공연은 시간을 되돌려 관객들을 그날의 광주로 데려간다. 관객은 들어설 때부터, 계엄군(과 같은 복장을 한 배우)의 통제를 받는다. 관객들은 오월 그날의 광주 시민이 되어 함께 분노하고 갈등하고 연대한다. 시민들은 계엄군의 만행 앞에서 분노한다. 체포한 계엄군을 두고 살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갈등한다. 그리고 도청을, 시민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연대한다. 이후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듯싶다. 그런데, 제목은 왜 ‘나는 광주에 없었다’일까.

  사실 우리 대부분은 광주에 없었고, 없었기에, 희생자들에게 부채를 지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일수록 이러한 부채 의식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러한 부채 없는 세대의 등장은 적잖이 당혹스럽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질타할 수 는 없다. 역사교육이 인식을 깰 수는 있어도, 정서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서 예술의 역할을 찾을 수도 있겠다. 그 순간 그 공기, 그 숨결을 감각하게 만들어 공동체적 감성을 키우는데, 예술만한 것도 없다. 특히 〈나는 광주에 없었다〉와 같은 체험형 공연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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