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음악 묵직한 질문 - 영화

가벼운 음악 묵직한 질문 - 영화

2015-03-15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가벼운 음악 묵직한 질문 - 영화 <비긴 어게인>

 

지난해 두 편의 영화 주제가가 막대한 사랑을 받았다. <겨울왕국>의 ‘Let It Go’가 상반기의 주인공이었다면 하반기는 <비긴 어게인>의 ‘Lost Stars’가 인기를 독차지했다. 특히 <비긴 어게인>은 2007년 ‘Falling Slowly’ 신드롬을 일으켰던 <원스> 존 카니 감독의 신작이며 주인공이 직접 노래를 부른 음악영화라는 사항으로 음악 애호가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 냈다. 이에 힘입어 국내 개봉 다양성 영화로는 최초로 관객수 300만 명을 돌파했다.

영화는 회사에서 쫓겨난 음반 제작자 댄(마크 러팔로 분)과 실연당한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우연히 들어간 어느 바에서 그레타의 공연을 인상 깊게 본 댄은 그녀에게 음반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그레타는 잠시 망설이지만 이내 댄의 제의를 수락하고 새로 만난 연주자들과 앨범 제작에 착수한다.

바에서 그레타가 노래를 부르고 이를 댄의 시각으로 다시 한 번 나타내는 초반의 시퀀스를 통해 영화는 음악이 중심이 될 것임을 밝힌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단순히 주요 인물 소개, 사건의 발단, 내용에 대한 언질에만 그치지 않는다. 배우들의 대사를 빌려 음악계의 작금 현상이나 관계자의 태도를 이야기해 더욱 흥미롭다.

댄은 동료이자 레이블 대표인 사울(모스 데프 분)을 만난 자리에서 음악성을 좇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사울은 수익성이 좋은 콘텐츠를 찾아야 한다며 댄을 내친다. 예술이 상품이 되고 사업이 될 때 아티스트나 프로듀서가 흔히 겪게 되는 딜레마일 것이다. 뮤지션과 작품 자체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던 댄이 그레타에게 계약을 제안하면서 요즘 트렌드에 맞게 외모와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아무리 음악이 우선이라고 해도 비주얼을 배제할 수 없는 대중음악계의 씁쓸한 단면을 돌아보게 된다.

곳곳에 들어서는 노래들은 산뜻함으로 사상적 무거움을 상쇄한다. 술에 취한 댄의 상상을 통해 담아한 옷을 입은 ‘A Step You Can't Take Back’을 비롯해 길거리 녹음의 개시가 된 ‘Coming Up Roses’, 그레타가 전 남자 친구에게 부른 이별 메시지 ‘Like A Fool’, 댄의 딸을 기타리스트로 초대해 빌딩 옥상에서 연주했던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등 가벼운 멜로디와 밝은 리듬의 팝, 포크 록이 즐거움을 선사한다. 국내 음원 사이트들의 차트 상위권을 장악했던 ‘Lost Stars’ 말고도 괜찮은 노래가 많다.

사운드트랙 외의 노래들도 <비긴 어게인>의 청각적 풍미를 보충해 준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Luck Be A Lady’,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For Once In My Life’, 영화 <카사블랑카>를 통해 널리 알려진 팝의 고전 ‘As Time Goes By’ 등 댄과 그레타가 소소한 로맨스를 만들어 가는 장면에서 흐르는 노래들 역시 즐거움을 더한다.

노래 덕분에 표면상 명랑한 분위기가 강하지만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도 업계를 조명하고 음반 판매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마지막 장면은 음원 발매 플랫폼이 다양해진 시장, 뮤지션이 직접 자기 작품의 가격을 책정하는 새로운 시대를 논한다. 변화된 환경에서 독립 뮤지션에게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고민해 볼 여지를 남긴다. 이처럼 <비긴 어게인>은 가벼운 음악과 함께 사이사이 깊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Lost Stars’로만 기억되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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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ㆍ블로그 soulounge.eglo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