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위에서 화면 너머로 72년을 이어온 기록 〈1161호〉

2026-11-08     정승원 대학보도부장

 

원고지에 손으로 쓴 기사를 고치고, 자로 제목의 크기를 재던 시절이 있었다. 완성된 신문은 기자들의 손을 거쳐 캠퍼스 곳곳으로 옮겨졌다. 이후 지면의 기사는 홈페이지에도 게재되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SNS 카드뉴스를 통해서도 독자를 만난다. 1954년 ‘근화학보’로 출발한 명대신문이 창간 72주년을 맞기까지, 기록을 만들고 전하는 방식은 달라져 왔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시기에 명대신문을 만들었던 기자들은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키고, 무슨 가치를 지키고자 했을까. 본지는 명대신문 28기 황태훈(국문 88) 기자와 49기 이재희(사학 09) 기자, 65기 김소윤(디미 25) 현 편집장의 이야기를 통해 명대신문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봤다.

손으로 고치고, 발로 전했던 신문 
28기 황태훈 기자

사진은 황태훈 기자가 작성한 1988년 등록금 인상 기사이다.

 

 

 

 

 

 

 

 

 

 

 

1988년 당시 명대신문의 수습기자는 어떤 업무를 담당했나요?

1988년 학보사에 들어왔을 때는 시험으로 기자를 선발했고, 분위기도 엄격했습니다 수습기자는 자료를 찾거나 신문을 배포하며 일을 배웠어요. 기자가 됐다고 글을 작성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수습기자 시절에는 주로 익명으로 시사 현안을 짚어내는 짧은 논평 코너인 '파발마'를 작성했습니다. 편집장의 첨삭을 받아 여러번 고쳤지만 끝내 지면에 실리지 못하기도 했죠. 기사는 원고지에 손으로 썼고, 부장이 빨간 줄을 그어 고치거나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기도 했어요. 지면을 구성할 대는 자로 제목의 크기를 재서 정했습니다. 

신문을 제작한 뒤 독자에게 전달하는 발행 과정은 어땠나요?

당시에는 4면과 8면을 번갈아 매주 발행해 무척 바빴습니다. 취재는 서울과 용인에서 각각 했지만 제작은 서울에 모여 진행했어요. 저녁에 회의하고 기사를 쓰다 보면 신문사에서 먹고 자다시피 하기도 했죠.

신문이 나오면 서울에서 용인으로 버스를 타고 기자가 직접 이동해 단과대학 배포대와 교수실, 교내 부서에 직접 돌렸습니다. 기사 작성부터 독자에게 신문을 전달하는 것까지 기자들의 일이었어요.
 
현재는 인터넷을 이용해 취재원에게 연락드리고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요청드렸나요?

인터넷으로 취재원을 찾을 수 없어 다른 신문이나 잡지를 참고했습니다. 좋은 의견을 낸 분을 발견하면 소속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연락해 취재나 원고 청탁을 진행했어요.

취재원을 찾은 뒤에는 전화로만 이야기하기보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 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기사도 풍부해지니까요. 당시 이어지던 집회를 취재할 때도 현장에 나가 직접 보고 들으며 확인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명대신문에서 익힌 이러한 취재 태도는 이후 동아일보 기자 생활의 기초가 됐습니다.

오랜 시기동안 과정의 발전을 거친 명대신문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시대의 변화에 맞춰 나아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활동할 때도 지난 신문을 모아 합쇄본을 만들려 했지만 비용 문제로 이루지 못했어요. 이제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창간호부터 최근 신문까지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를 갖추면 좋겠습니다. 형태는 달라도 과거의 기록을 보존하고 다시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기록을 보존하는 일만큼 앞으로 어떤 신문을 남길지도 중요하겠죠. 명대신문은 우리 대학의 얼굴 같은 존재이며, 학보사가 사라진다면 대학은 입과 귀를 잃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이 그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신문의 완성도에도 신경 써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신문사와 방송사에도 도전하며, 좌절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큰 꿈을 가졌으면 합니다.
 
지면을 넘어, 독자가 있는 자리로 
49기 이재희 기자

 

사진은 이재희 기자가 작성한 모래내시장 기사이다.

 

 

 

 

 

 

 

 

 

 

 

 

 

 

 

 

 

 

 

종이신문과 홈페이지를 함께 운영하던 당시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온라인 기사 발행의 초창기였습니다. 종이신문에 실린 기사를 홈페이지에도 게재했어요. 초기 홈페이지는 지면 기사를 보관하는 기록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소식을 접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소식을 전하고 기록하는 것이 기사의 본질이라면 독자에게 다가가는 방법도 다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각 매체의 장점을 살리며 독자에 맞춰 변화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온라인 발행은 편집과 독자의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종이신문에는 지면 구성과 기사 비중에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됩니다. 독자는 그 순서대로 읽다가 생각지 못한 소식을 접하기도 하죠. 홈페이지에서는 독자가 기사를 골라 읽습니다. 첫 화면의 기사는 편집자가 정하지만 클릭은 독자의 몫이니까요. 덕분에 지면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독자의 반응과 관심도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온라인 검색을 통해 우리 대학과 대학사회의 소식을 학내 구성원뿐 아니라 외부 독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사가 더 널리 읽히고 시간이 지나도 검색할 수 있는 기록으로 남는 만큼, 보도에 따르는 책임도 더욱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취재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모래내시장 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진으로 기록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동기와 함께한 첫 취재 이후에도 상인분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수년에 걸쳐 사진기를 들고 시장을 다시 찾아갔어요.

처음에는 기성 언론의 인터뷰에 지쳐 취재를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꾸준히 찾아가 진심으로 이야기를 듣자 마음을 열어주셨습니다. 상인분들의 사진을 인화해 다시 찾아갔을 때, 나이테가 깊게 새겨진 손으로 따뜻한 차를 따라주시며 고맙다고 하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매체가 달라져도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학생의 알 권리를 지키고, 대학과 주변 사회의 좋은 점은 알리되 비판할 부분은 편파 없이 곧고 날카롭게 전하는 정론직필입니다. 기사가 독자의 생각을 한쪽으로 이끌기보다 시각을 넓혀주기를 바랐어요.

완벽해질 때까지 준비만 하면 시작조차 못 할 수 있어요. 시작해야 고칠 것이 생기고 성장도 가능합니다. 신문사에서의 시도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로 남았습니다. 종이든 PC든 모바일이든 신문이 닿아야 할 곳은 결국 독자가 있는 자리입니다.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되 정론직필은 간직해주길 바랍니다.
 
독자의 일상에서, 다음 질문을 찾다 
65기 김소윤 편집장

 

사진은 현재 명대신문 인스타그램 계정이다.

 

 

 

 

 

 

 

 

 

 

 

 

 

 

 

 

 

 

 

 

 

 

 

 

 

 

 

 

 

 

현재 종이신문과 홈페이지, SNS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종이신문은 학내 사안의 배경과 원인, 관계자의 입장을 충분히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성적향상장학금 신청 과정의 혼선처럼 학우들이 체감하는 사안을 중심으로 원인과 대학 측 입장을 함께 살피고자 합니다.

홈페이지는 지면 기사를 온라인으로 제공해 종이신문을 접하지 못한 독자도 읽고, 과거 현안을 검색할 수 있도록 합니다. SNS에서는 뉴미디어부가 프리뷰와 카드뉴스를 통해 발행 예정 기사나 지면의 핵심 내용을 시각적으로 전해요. 짧은 콘텐츠에서 생략되는 사건의 배경과 관계자의 입장 등은 원문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처럼 매체의 특성에 따라 전달 형식은 달리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충분하게 전한다는 원칙은 같아요.
 
독자들의 관심과 보도의 필요성 사이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나요?

관심이 높은 사안일수록 여론이 취재의 방향이나 결론을 정하지 않도록 경계합니다. 제1153호 해외문화탐방 선발 과정 보도 당시, 교내 활동 경험자들이 인맥으로 선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어요. 그러나 기사를 작성할 때 이를 사실로 전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의혹의 진위에 관해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고, 확인된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 전달했습니다. 이와 별개로 평가 기준이 사전에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해, 선발 과정의 투명성을 높일 필요성도 함께 짚었습니다.

제1152호 자연캠 배리어프리 기획에서는 직접 휠체어를 타고 시설을 점검하고 장애 학우들의 경험을 들었어요. 다수가 체감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학습권과 연결된다면 조명할 가치가 있습니다. 독자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과 그 관심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다릅니다.
 
여러 매체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한정된 인력과 시간 안에서 시의성과 완성도를 동시에 확보하는 일입니다. 약 2주마다 신문을 발행하지만, 기자들도 학업을 병행하기에 취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예요. 또한 취재원의 답변이 늦어지거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정해진 마감 안에 기사를 완성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특히 시의성이 중요한 사안은 보도가 늦어질수록 정보의 가치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충분한 검증 없이 기사를 낼 수도 없습니다.

이에 더해 구성원이 자주 바뀌다 보니, 취재 경험을 다음 기수에 전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구성원 교체가 잦은 학보사의 특성상, 취재 자료와 문제 해결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해 다음 기수에도 경험이 이어질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창간 72주년을 맞아 앞으로 어떤 신문을 만들어가고 싶으신가요?

한 학우가 점심마다 학생회관에서 명대신문을 읽는다며 인상깊은 내용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명대신문이 꾸준히 읽히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앞으로는 학우들이 기사를 읽는 데서 나아가 자신의 경험과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제보 경로를 알리고, 학우들의 문제 제기가 실제 취재와 보도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신뢰를 쌓고자 해요.

SNS를 통해 학내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환경에서 격주간 신문이 속도만으로 경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알려진 사안이라도 배경과 원인을 깊이 살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보도 이후에도 문제가 개선됐는지, 관계자들이 제시한 계획은 이행됐는지 확인하는 후속 보도를 강화해야 돼요. 결국 72년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것은 과거의 기록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록을 토대로 현재를 살피며 새로운 질문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