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72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새들처럼 (소설 부문 가작)〈1161호〉
새들처럼
경진은 대림역에 있었다. 대림역은 경진이 매일같이 출근을 하는 일터였다.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뿐인 간단한 청소일임에도 경진은 하루 종일 대림역에 머물렀다. 애매하게 남는 시간 탓에 어딘가로 향할 수도 없었다. 출근과 동시에 경진은 환복을 하고 마스크를 쓴 채 환승장의 중앙으로 향했다. 손에는 간단한 청소 용품과 경진의 키를 훌쩍 넘기는 먼지떨이가 있었다. 7호선과 2호선을 잇는 환승장은 그 넓이만큼 높이도 높았다. 청소하는 도중 먼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경진은 언제나 천장의 먼지를 먼저 털어냈다. 이후 바닥을 닦아내는 일은 아주 간단했지만 천장을 털어내는 일은 몇 시간이 걸렸다. 먼지떨이를 움직일 때마다 경진의 얼굴로는 먼지가 떨어졌다. 경진은 먼지를 맞지 않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대림역의 천장은 청록색의 길고 얇은 원통 철봉들이 방파제처럼 뒤섞여있는 모양새였다. 언뜻 보면 이쑤시개 여러 개를 쏟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 집요하게 끼어있는 먼지를 빼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복잡한 구조물 탓에 먼지는 몇 번을 쓸어도 언제나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경진은 떨어지는 먼지들을 피하며 콧바람을 불었다.
경진도 처음부터 모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미래를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미래는 정말로 알지 못하게 바뀌어 버리고,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경진에게 공포가 되어 다가왔다. 경진은 그 공포를 오후 근무자가 펑크를 냈던 날 몸소 느꼈다. 오후 근무가 없으면 저희도 너무 곤란해서요. 경진 씨, 죄송한 일이지만 오후 근무 좀 부탁드릴게요. 청소 업체 직원이 그렇게 이야기하던 날 경진은 안전모의 후크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얼어버렸다. 경진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 사이 직원은 경진에게 다음 근무자가 구해지기 전까지만 일을 해줄 수 있냐는 말을 덧붙였다. 경진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청소부가 뽑히기 전까지 수당을 두 배로 주겠다는 제안은 경진에게 거절하기 힘든 조건이었다.
정말로 거절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함은 따로 있었다. 경진은 팔을 떨고 땀을 흘리면서도 틈만 나면 열차 도착 안내 화면을 보았다. 출근 시간부터 일을 하는 경진에게 배차 간격이 5분 단위인 아침 시간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웠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음이 울릴 때마다 경진은 먼지떨이를 어깨에 인 채 환승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환승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열차에서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뛰었다. 간혹 휴대전화를 보며 걷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뛰기 바빴다.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위를 보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드높은 먼지떨이를 인 채 환승장 구석에 선 경진을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청록색의 촘촘한 천장은 오직 경진만이 쳐다보는 공간이었다. 경진은 그 순간마다 자신이 유령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두 다 빠지고 나서야 경진은 다시 환승장의 가운데로 향했다. 경진은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대림역 10분 거리 언어치료센터는 은영이 일하는 곳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은영은 사설 치료센터에서 시간제로 일을 했다. 낮에는 센터 일을, 밤에는 언어 재활사 1급 자격증을 공부하며 대형 병원으로 이직할 생각이었다. 정규직이 아닌 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은영이 버틸 수 있던 이유는 대형 병원에서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을 상상할 때면 과로하거나 자신의 대학 동기들이 작은 치료센터의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쯤은 배 아프지 않았다. 대학원에 오면 중견 병원에 취직을 시켜주겠다는 교수의 말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은영은 가끔 자신이 마음을 나쁘게 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은영이 취업 준비생이라고 해도, 그 전에 그녀는 치료사였고 누군가의 선생님이었다. 그 말은 대학에 다니며 은영이 가장 많이 듣던 소리였기도 했다. 언어치료사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강의 중 들었던 한 문장은 아직도 은영의 뇌리에 박혀있었다. 도훈을 만나기 전까지 은영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도훈은 은영의 센터에서 치료받는 아이였다. 몇 시간만 아이를 치료시키는 다른 부모와 다르게 도훈의 어머니는 도훈을 하루 종일 치료센터에 묶어두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빠르게 말을 배우게끔 하고 싶다는 목적인 것 같았다. 다른 치료사들은 도훈의 어머니가 이곳을 유치원과 헷갈린 게 아니냐며 짜증을 냈지만 은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도훈의 담당 치료사가 은영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오랜 시간 동안 센터에 있어야 하는 도훈을 그 시간만큼 맞춰 봐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시간제 치료사인 은영은 적임자였다.
치료실은 작은 놀이방을 개조한 것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치료센터의 모든 벽에는 스마일 얼굴이 그려진 벽지가 붙어있었다. 내부는 아주 잘 꾸며져 있었지만 유일하게 천장에는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도훈은 마치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고개를 치켜드는 도훈을 볼 때마다 은영은 한숨을 참았다. 고개를 위로 드는 것. 은영이 처음 도훈을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도훈이 고치지 못하는 습관이었다. 은영은 치료를 시작하기 전 언제나 도훈의 머리를 지그시 눌러주었다. 오늘은 그동안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사과 표현을 배울 차례였다. 은영은 나이트릴 장갑을 낀 손으로 도훈의 턱을 살살 잡았다. 도훈의 앞에 놓인 거울 속에서는 안간힘을 쓰는 은영의 모습만이 보였다. 은영은 입 모양을 맞추며 ‘미안해’나 ‘죄송해요’ 같은 말들을 발음시켰다. 발음이라는 것은 소리를 들어야 더욱 정확해지는 것이었기에 은영은 가끔 자신이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모습은 마치 도훈을 잡아두어서 미안하다는 은영의 사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은영을 짧게 스쳐간 아이들은 대부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은영에게 죽어도 거울을 보지 않는 아이는 도훈이 처음이었다. 그냥 하기 싫은 거야? 은영은 가끔 그렇게 물어봤지만 도훈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위로 들었다. 은영은 그런 도훈이 왜 천장을 보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수업이 되지 않아 밀린 단어가 너무 많았다.
경진은 발목에 파스를 하나 더 붙였다. 사흘 전에 샀던 파스는 벌써 다 쓴 상태였다. 오후 근무자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경진의 관절에 무리를 줬다. 오전 청소를 어느 정도 끝낸 뒤 경진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미화원 휴게실이었다. 미화원 휴게실은 두 명이 딱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한여름이 될 때면 휴게실은 작은 찜통과도 같았다. 오후 근무자가 있던 시절의 한여름 휴게실은 경진에게 악몽이었다. 오후 근무자는 경진보다 나이가 어렸고 경진보다 더 쌩쌩했다. 한여름이 되면 휴게실은 언제나 땀 냄새로 가득 찼다. 창문 대신 환풍기 하나가 딸랑 달린 휴게실은 악취를 정통으로 머금었다. 오후 근무자는 땀을 말리거나 닦을 생각이 거의 없어 보였고, 결국 매년 경진은 환풍기나 선풍기 따위를 항시 틀어놓았다. 이제는 비어버린 자신의 옆자리 의자를 보며 경진은 이제는 더 이상 땀 냄새와 파스 냄새가 섞인 기분 나쁜 악취를 맡을 일이 없다는 점에 안도했다.
경진은 언제나 오후 근무자를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경진이 매일 오후 근무자를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경진은 오후 근무자와 나눴던 대화 중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경진 님은 진짜로 천장 닦으면서 이렇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는 대뜸 자신은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비둘기 퇴치제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경진이 묻지도 않았지만 오후 근무자는 계속해서 떠들었다. 비둘기가 언제부터 많아졌는지 알아요? 88 올림픽 때 평화를 상징한다고 비둘기를 몇백 마리 풀어버렸대요. 그때부터 대한민국이 비둘기로 가득 찬 나라가 된 거예요. 이상하게 사람들은 자기 앞에 일이 닥쳐야 그게 큰일인 걸 알더라고요. 비둘기가 자기 앞에 대놓고 날아오면 걸음도 못 떼는데, 세상에는 이미 몇백 마리의 비둘기가 있고, 우리는 그래도 걸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비둘기를 퇴치하는 스프레이를 만드는 거죠. 경진은 오후 근무자의 말을 중간부터 듣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쪽이 맞았다. 경진은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중소기업 음반 회사에 보낼 지원서를 여럿 다듬거나 인터넷에 떠도는 면접 준비 영상을 보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이느라 바빴다. 오후 근무자가 비둘기니 뭐니 떠드는 순간에도 경진은 만들어둔 예상 면접 질문을 다시 되뇌고 있었다. 오후 근무자가 일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경진은 휴게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마지막 남은 파스를 붙이며 경진은 오후 근무자를 마지막으로 봤던 날을 떠올렸다. 오후 근무자는 비둘기 퇴치제 사업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 망연자실한 표정을 한 채였다. 경진은 지금 후회하고 있냐고 물었지만 오후 근무자는 고개를 저었다. 시도도 안 했다면 후회했겠죠. 경진 님이나 후회하지 마요. 사운드클라우드에 노래 올렸던 거 다 알아요. 음악하고 싶었죠? 무수히 쏟아지는 질문에도 경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진은 그저 오후 근무자에게 술도 한 번 사주지 못했다는 후회만을 하고 있었다. 경진은 가끔씩 오후 근무자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곤 했다.
이어 떠올린 또 한 가지의 사실은 발목의 통증이 과로 때문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경진은 발목을 살살 돌려보았다. 근육통보다는 조금 더 깊은 곳에서부터 통증이 느껴졌다. 수많은 먼지를 마셔온 경진이 단 한 번도 제대로 걱정하지 않던 것이 있다면 바로 건강이었다. 건강검진 하나 제대로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경진은 연신 발목을 잡았다. 뻐근한 느낌이 들며 당겨졌던 발목 뒤쪽이 아린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경진은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던 날을 기억할 수 없었다. 오후 근무자도 말을 얹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업체가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진 않아요. 경진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청소 업체 정규직을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마지막까지도 차마 할 수 없었다. 혼자가 된 휴게실에선 환풍구 돌아가는 소리만이 울렸다. 발목이 조금 더 뻐근해졌다. 오후 근무까지는 세 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아무리 도훈이 하루 종일 센터에서 지낸다고 해도 은영이 도훈을 하루 종일 치료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럴 때마다 은영은 다른 치료사들의 눈치를 보며 도훈에게 말을 걸었다. 너 안 졸려? 도훈은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위를 올려다보았다. 치료 시간이 아닌 경우 은영은 도훈을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도훈 역시 은영이 신경 쓰일 정도로 고개만 치켜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은 노래라고 하기에 애매한 리듬을 흥얼거리거나, 치료실 한쪽에 모아둔 이면지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은영은 도훈의 옆에 누워 그런 도훈을 바라보았다. 은영도 도훈이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은영은 그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훈이 평소와 다르게 수업에 잘 따라와 준 날, 은영이 간식을 건네자 도훈이 은영을 향해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였기 때문이었다. 아주 작은 까딱거림이었지만 그 순간 은영은 도훈이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은영은 대학 시절 읽었던 ‘자유롭게 키운 닭들이 그렇지 않은 닭보다 더 건강하다’는 논문이나 어디선가 보았던 ‘유럽의 아이들은 자유롭게 컸기에 천재가 많다’는 기사들을 떠올렸다. 그날 이후로 은영은 하루 중 절반 정도를 자유 시간으로 지정했다. 동시에 그 시간은 은영의 자유 시간이기도 했다. 은영은 도훈의 눈치를 보며 휴대전화에 저장해둔 국가고시 기출 문제를 풀었다.
두 시간 정도를 열심히 놀다 잠에 든 도훈이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은영은 기출 문제를 풀다 말고 도훈에게 달려갔다. 은영은 소리를 듣고 치료실 앞으로 온 다른 치료사들에게 너머로 눈인사를 보인 뒤 도훈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도훈은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은영의 팔을 퍽퍽 쳤다. 울기만 하는 도훈을 달래며 은영은 도훈이 악몽을 꿨다는 예측밖에 할 수 없었다. 도훈은 눈을 크게 뜬 채 다시는 잠에 들지 않기 위한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은영은 도훈이 편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하기 위해 도훈의 명치로 손을 가져다댔다. 은영의 손이 도훈의 명치를 쓸어내릴 때마다 도훈은 차츰 편해졌는지 고개를 위로 들고 심호흡했다. 연신 쓸어내리던 은영의 손에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내려다본 도훈의 목에는 작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평소에는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목걸이는 가운데 작은 십자가 팬던트를 단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은영은 펜던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동시에 은영은 자신은 그저 치료사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도훈이 왜 이곳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는지와 도훈이 센터 밖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서는 한낱 시간제 치료사인 자신이 알 일이 아니라고. 그러나 은영은 도훈의 모든 행동을 센터의 그 누구보다도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은영은 도훈의 어머니를 신경 쓰고 있었다.
은영이 도훈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었다. 학부모 면담으로 상담실에 온 도훈의 어머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은영에게 말했다. 어쩌면 얘는 가망이 없을지도 몰라요. 눈물을 흘리는 도훈의 어머니 뒤로 스마일 얼굴이 잔뜩 그려진 벽지가 보였기에 은영은 무언가 어색하다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엄만데. 은영이 아주 작게 말했고 여자는 그런 은영의 목소리를 용케 듣곤 소리쳤다. 엄마니까 그래요. 울분을 터트리며 말하는 여자 때문에 은영은 사색이 된 채 얼었다. 큰 소리를 들은 다른 교사들이 상담실을 박차고 들어왔다. 상담실을 나가기 전까지도 도훈의 어머니는 울분을 토해냈다. 동시에 은영은 도훈의 어머니가 말끝마다 작게 읊조리는 ‘아버지’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치료사는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던 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이 자기 자신까지도 포함이었다는 사실을 은영은 그 순간 깨달았다.
아버지, 하고 말하는 것은 은영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가르칠 자격이 없는 자식인데, 아버지 어쩌면 좋을까요. 은영의 어머니는 은영이 대학교에 입학했던 때에 그렇게 덕담했다. 은영은 어머니와 말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 이외에는 은영과 말할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초등학생 때부터 은영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없는 것이었다. 긴 외도 끝에 모든 것을 들킨 아버지는 한 마디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네 딸은 사실 다 알고 있었어. 가끔씩 마주친 아버지의 회사 동료라는 여자는 은영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은영의 입을 막았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은영의 어머니가 은영을 보채도 은영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이후 은영의 어머니는 은영이 성인이 될 때까지 교회에 나갔다. 자신을 말리는 은영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으며 어머니는 언제나 작게 중얼거렸다. 다 살자고 하는 거잖아.
은영은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기에, 서울로 올라온 은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살기 위해 자신의 편을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편을 만들기에 스무 살은 너무 어렸다. 믿었던 애인의 배우자가 자취방 앞으로 찾아온 날 은영은 처음으로 어머니의 죽고 싶은 기분을 이해했다. 물론 은영의 어머니는 은영을 이해하지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어. 은영의 어머니는 그 이후부터 매일같이 자신이 기도하고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문자 사이사이에는 책임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구차한 말들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 제발 정신도 못 차리는 딸을 구원해 주세요.
그 말에 은영은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게 정말 자신의 탓이냐는 생떼조차 부릴 수 없었다. 은영이 어리광을 부리려 마음먹은 날, 그녀의 어머니는 먼저 은영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며 기자들이 취재하러 온 순간 은영의 어머니는 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게 다 네가 태어나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 사이비니 이단이니 하는 것들은 더 이상 모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은영은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차단했다. 대형 병원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죽는다고 해도 연락을 하지 않을 셈이었다. 그날 이후 은영은 죽어도 믿음을 가지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것은 절대로 고개를 올리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았다.
도대체 왜 이제 오셨어요? 경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림역 근처 작은 정형외과 의사는 경진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의사 말에 따르면 경진의 발목은 오랫동안 진물을 방치한 탓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의사는 경진이 이해할 수 없는 용어를 섞어가며 발목에 대한 이야기를 더 늘였지만 경진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작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과, 그게 조금 부담될 경우엔 약을 포함한 이것저것을 처방해 주겠다는 소리였다. 경진은 잠시 고민을 하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진료실 책장에서는 트로피와 수료증이 형광등에 비친 채 놓여있었다. 영어로 쓰인 대학교 졸업장을 쳐다보며 경진은 괜히 자신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습관적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병원의 천장을 보며 경진이 고민한 것은 병원의 천장이 너무 하얗다는 것이었다. 틈새가 있는 곳은 언제나 먼지가 생기기 마련임에도 천장은 너무나 깨끗했다. 청소라는 것은 일절 필요하지 않은 공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모든 것은 아무 이유도 없이 경진을 신경 쓰이게 했다. 의사는 말을 잇지 못하는 경진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부담되시면요, 약을 좀 세게 해드릴게요. 경진은 정신을 차리고 의사의 말에 끄덕였다. 안 그래도 수술할 생각은 없었기에 경진은 번거롭게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의사는 처방전을 작성하며 질문했다. 다른 데 더 불편한 곳은 없으시고요? 경진은 네, 라고 대답하려다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아까부터 경진을 불편하게 했던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경진은 도대체 무엇이 자신을 신경 쓰이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대답하지 않는 경진을 본 의사는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듯 경진을 쳐다보았다. 의사는 작게 한숨 쉬었고 경진은 급한 마음에 아무 말을 내뱉었다. 선생님은 원래부터 의사가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의사는 네, 라며 되물었지만 경진은 그 말을 대답으로 알아들었다. 지금 어때요, 그 직업이 좀 맞아요? 의사는 경진의 말이 끝나자 오랫동안 생각하는 듯 대답하지 않았다. 이어 의사는 작게 말했다. 당장 수술 안 해도 괜찮으니까 여유 생기면 천천히 합시다. 원래 발목은 소모품이에요. 오래 걷고 오래 서면 자주 망가져요.
경진이 그토록 불편했던 이유는 발목이 자주 망가진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병원에서 나오며 경진은 자신이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던 첫날 경진은 마른침을 삼켜가며 말했다. 몸을 불사지르겠습니다. 모든 것은 음악을 시작해 보기 위함이었다. 경진은 언제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대학을 나온 뒤에는 진지하게 밴드를 꾸려 대학생 공모전이나 방송사 공모전에도 제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진은 현실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동시에 경진은 시작과 끝은 언제나 예고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음악을 하기 위한 돈도 필요했지만 슬프게도 음악을 하면서도 먹고 살아갈 돈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경진은 취업을 해야 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허비한 몇 년의 시간은 그런 경진의 발목을 잡았다. 경진은 스펙이라고 할 것이나 경력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집에서 음악 몇 개를 만들어본 것은 경력이 될 수 없었다. 경진은 초조해졌다. 번듯한 회사원이 아니어도 좋으니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싶었다. 하는 수 없이 아르바이트 지원서를 수십 장 적었지만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마저 경력직을 선호했다. 그렇게 경진은 청소 업체에 들어갔다. 유일하게 살릴 수 있던 경진의 장점은 체력뿐이었다. 그 말은 건강하다는 것을 빼면 경진에게는 단 하나의 장점도 없다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경진은 괜히 발목을 쓸어보았다.
그럼에도 쳇바퀴 같은 하루는 경진을 놓아주지 않았다. 경진은 또다시 오후 근무를 해야 했다. 귀에 꽃은 이어폰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지만 경진은 위를 쳐다보는 자신의 시야에 더 집중했다. 청소는 시야가 도달하는 맨 꼭대기부터 시작이었다. 시작은 언제나 위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위에서 떨어진 먼지는 아래로 향한다. 모든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향했다. 청소에서 인생까지 모든 것들이 떨어지듯 흘러갔다. 시야를 천천히 옮기던 그는 문득 정말 단 한 명도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역은 대림. 대림역이라는 안내가 나왔고 경진은 또 다시 기계처럼 청소도구를 챙겨 환승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경진은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걷거나 뛰었다. 앞을 보았다. 복잡한 환승장에서 위를 보는 순간 그들은 넘어질 것이었다. 균형을 잡기 위해 모든 사람은 앞을 보아야 했다. 경진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위를 보지 않는다면 도대체 자신은 왜 위를 청소하는 것일까. 경진은 자신의 폐 깊숙한 곳에 박혀 몸을 쿡쿡 찌를 아무 쓸모없는 먼지를 기억했다. 괜히 헛기침이 났다. 경진은 오후 근무자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경진 님, 계속 천장만 쳐다보고 살 거예요? 경진은 잡고 있던 먼지떨이를 괜히 꽉 쥐었다. 몇 년이 더 지난다면 경진은 자신이 더 이상 취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경진은 사무치는 생각들을 막을 수 없었다.
도훈을 대하는 은영의 태도는 눈에 띄게 어색해졌다. 정확히는 도훈의 어머니 때문이었지만 감정은 도훈에게도 적용되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도훈을 데리러 오는 도훈의 어머니를 마주쳐야 할 때마다 은영은 눈을 피하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은영의 시선이 떼어지지 않는 순간부터 은영은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들을 알게 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도훈의 어머니가 전화를 하며 ‘복음’이나 ‘찬양’ 등의 단어를 언급하는 순간이나, 그녀가 도훈을 센터에 맡겨두고 향하는 곳이 정말로 교회였다는 사실이었다. 은영은 도훈의 어머니를 자신의 마음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되뇌면서도 약한 편두통을 느꼈다. 은영은 자꾸만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는 결국 네 비겁함을 가르치겠지. 은영은 자신의 어머니가 지나가듯 말했던 모든 말을 자꾸만 떠올렸다. 도훈은 평소보다 더 자주 몸을 비틀었고 불안한 듯 치료실을 이리저리 올려다보며 소리 질렀다. 결국 은영은 도훈의 치료를 평소보다 일찍 시작해야 했다. 자신과 도훈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은영은 다시 도훈을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은영은 턱과 윗입술을 잡은 채 혀의 위치를 조정했다. 은영은 소리를 지르는 도훈의 귀에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죄, 송, 해, 요. 몇 번을 가르쳤지만 도훈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던 단어였다. 은영은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도훈은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몸을 버둥거렸다. 도훈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실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던 은영은 발버둥을 치며 눈물을 흘리는 도훈만큼 괴로워졌다. 그때 도훈이 은영의 손을 깨물었다. 은영은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얼마나 세게 물은 것인지 은영의 나이트릴 장갑 두 번째 손가락이 반쯤 찢어져 있었다. 은영은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비명을 들은 다른 치료사들이 황급히 그들이 있는 치료실로 들어왔다. 은영은 치료사들에게 재차 괜찮다는 말을 했지만 그들은 은영이 아닌 도훈을 쳐다보았다. 선생님을 물면 어떡해. 동료 치료사는 도훈의 팔을 잡고 다그쳤다. 그때 고개를 높이 치켜든 도훈의 입이 뻐끔거렸다. 죄송해요. 아주 느렸지만 그 말은 정확히 들렸다. 그 순간 은영의 세상에는 고요한 공백이 찾아왔다.
퇴근을 마친 늦은 밤까지 은영은 오전에 있던 일을 떠올렸다. 작은 자취방의 불을 모두 꺼두었음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마구 뛰는 느낌이었다. 은영은 침대에 누운 채 멍하니 눈을 감았다. 치료사들에게 둘러싸여 죄송하다는 말을 더듬거리던 도훈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말하고 있었다. 은영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집에서 홀로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도훈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해보고 도무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울고만 있을 도훈의 모습도 떠올려보았다. 은영의 상상 속 도훈의 옆에는 언제나 그의 어머니가 있다. 은영은 도훈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지만 자꾸만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모습으로 상상을 하곤 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일이었다. 그것도 말하지 못하는 거니. 은영의 상상 속에서 도훈의 어머니는 그렇게 도훈을 다그치며 고개를 들어보였다. 이어 도훈은 기도하는 모습을 따라할 것이었다. 도훈은 어쩌면 인정을 바랐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중 은영은 문득 도훈의 목에 걸려있던 십자가를 떠올렸다. 교회 건물의 모든 십자가는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다. 도훈은 남들은 보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그러니 하늘을 봐야 하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은영이 서울에 올라와야 했던 것처럼. 그게 도훈에게는 너무나 필요했다는 사실을 은영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주 조금은 오후 근무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경진은 생각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대림역을 오가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온종일 어디론가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는 경진은 덩달아 초조해지고는 했다. 생각해 보면 가장 현실적이지 못할 사람은 경진이었다. 경진은 사실 자신에게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이제는 끝내야 하는 일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경진은 먼지떨이를 더욱 꽉 쥐었다. 후회가 없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났을지도 몰랐다. 괜히 발목이 아려오는 것만 같았다. 열차 도착 안내 방송이 울렸고 경진은 또다시 환승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물밀듯 쏟아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경진은 오후 근무자를 구하고 있다던 청소 업체를 떠올렸다. 더 이상의 후회가 없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번 주 안으로는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경진에게 있어서 이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때 환승장 창문에서부터 무언가 분주하게 움직였다. 경진은 멍해진 정신을 붙잡고 그것을 쳐다보았다. 회색의 비둘기였다. 비둘기 한 마리가 환승장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고개만 움직이고 있었다. 비둘기는 점점 더 움직이는 인파 쪽으로 접근했다. 사람들은 알아서 비둘기를 피해서 움직였다. 비둘기는 환승장을 벗어나기 위해 날갯짓했다. 날아오른 비둘기가 잠시 앉은 곳은 대림역 천장의 철봉 위였다. 문득 경진의 뇌리를 스친 건 오후 근무자였다. 자기 선택에는 후회가 없다던 그는 어떤 천장을 보았을까. 경진은 그가 쓸고 닦은 천장이 왜인지 자신이 본 것과는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진은 수많은 비둘기가 보았을 천장을 떠올렸다. 88 올림픽을 위해 날아오른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보았던 모습은 드높은 하늘일 것이었다. 단지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은 경진을 꼼짝도 못 하게 만들었다. 이내 비둘기는 얽힌 천장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마치 둥지에 배를 붙이는 모습 같기도 했다. 이내 고개를 천천히 내린 경진은 한 사람이 환승장 끝에서 자신과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렇기에 경진은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딱 하루만 더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럼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아주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출근을 하며 은영은 오늘은 기필코 도훈의 고개를 내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은영은 단 한 번도 도훈의 턱을 내리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살아가며 말하지 못하는 순간이 말하는 순간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은영은 도훈의 입을 잡았었다. 은영은 언어 치료사였으니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언어 재활사 1급 자격증을 따낸 채 대형 병원에 입사할 의료인이었으니까. 그러나 은영은 그 전에 자신이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을 떠올렸다. 말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알아야 하고, 그 사실을 이미 아는 치료사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라는 강의 내용이었다. 대림역을 내린 은영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도훈을 보며 처음으로 지어 보일 표정을 연습했다. 도대체 어떻게 그를 맞이해야 어색하지 않을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은영의 머리 위로 새 한 마리가 지나갔다. 놀란 은영은 고개를 아주 살짝 들어 보였다. 은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대림역의 천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청록색의 철봉 같은 것들이 방파제처럼 얽혀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알아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은영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평생 고개를 들지 못했던 은영에겐 평생 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순간 새는 천장의 한 구석으로 숨어 들어갔다. 은영은 자신이 평생을 대림역 천장 어느 구석에 숨어 살았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동시에 아마 우리는 모두 저 사이에서 길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 바로 위를 보아야 할 때였다. 은영은 작게 심호흡했다. 곧 눈을 감았다.
〈2026 제72주년 명대신문 소설 부문 가작 수상소감〉
학과 익명 편지 행사에 참여하던 도중 익명의 사람에게서 “써나가며 이겨낼 수 있는 시간이 더 많기를”이라는 메시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 문장을 읽던 도중 수상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우연적일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 소설도 아주 우연히 쓰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보았던 역사 천장이 아주 신기하게 생겼다는 이상한 감각에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그때 당시 천장을 쳐다보던 사람은 저뿐이었기에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전 살아가는 게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아직은 쓰는 것도 서툴고 삶을 알지도 못하지만, 알지 못할 미래를 지금의 선택에게 맡겨도 되는 것일까 하는 두려움을 지니고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게 많은 것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소설을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내가 왜 소설을 쓰겠다고 설쳤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뒤돌면 잊어버립니다. 역사에서 갑자기 고개를 들었던 그 이상한 긴장감이 언제나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쓰는 일을 그만두지 말라는 의미로 이번 공모전 수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은 저를 위해 언제나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신 교수님들께, 제게 믿음을 주는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변하지 않는 제 팬이 되어주신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글에게 가장 많은 영감과 관심, 믿음을 주신 아버지께 한 번 더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