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백송의 하얀 줄기에 새겨진 격랑의 역사 〈1161호〉
말없는 나무에는 사람살이의 길고 긴 역사가 담긴다. 발 없는 나무가 자리를 옮겨 다니는 과정을 살펴보면, 나무를 매개로 다른 문화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교류했던 사실을 찾아볼 수도 있어 흥미롭다. 이를테면 오래전에 중국에서 들어와 우리 땅에서 살아가는 백송(白松)이라는 나무가 그렇다.
백송은 중국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인데, 나무줄기의 껍질에 흰 얼룩 무늬를 가지고 있어 백피송(白皮松), 호랑이 가죽을 닮은 무늬의 나무라 해서 호피송(虎皮松)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 이름을 대부분 순우리말로 쓰는 북한에서는 '흰 소나무'라고 부른다.
백송은 자라는 속도가 무척 느릴 뿐 아니라, 옮겨심기도 쉽지 않은 나무다. 그런 까닭에 우리나라의 오래된 백송은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귀하게 보호하고 있다. 조경 기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새로 심어 키우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 백송은 대개 중국을 왕래하던 사람들이 묘목을 들여와 심어 키울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을 안에 한 그루의 백송이 살아 있다는 걸 마을 사람들은 일종의 자존심으로 여기기도 했다. 중국을 쉽게 드나들거나 그게 아니라면 중국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세도 있는 조상이 살았던 마을, 즉 '뼈대 있는 가문'이 사는 마을의 상징물로 여겼다는 이야기다. 오래된 백송을 대부분 수도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백송은 헌법재판소 경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재동 백송'이라는 이름의 천연기념물인 이 나무는 나무나이 약 600년, 나무높이 17m의 큰 나무다. 둘로 나뉜 굵은 줄기가 아슬아슬할 정도로 넓게 벌어져서 보기에 따라 불안하지만, 그 규모와 줄기껍질에 드러난 특별한 빛깔은 신비롭다 할 만큼 인상적이다.
서울 재동 백송이 서 있는 자리는 조선 후기 격랑의 역사가 태동한 자리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서울 재동은 조선 시대에 권력자들이 모여 살던 행정의 중심지였다. 서울 재동 백송의 그늘 아래에는 그때 형조판서 겸 한성판윤을 지낸 박규수의 살림집이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그는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다.
박규수는 중인 출신의 역관 오경석과 함께 조선의 개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신의 사랑채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그들이었다. 개화 사상을 잉태하고 키워낸 산실이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박규수의 사랑채를 비롯한 그 시절의 흔적이 사라졌지만, 특별한 생김새의 나무 한 그루는 격변의 현장을 또렷이 기억하는 생명체로 남았다.
이 자리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기여고 전신)와 창덕여고가 들어섰다가 1993년에는 국가 최고기관 가운데 하나인 헌법재판소가 자리 잡았다. 대통령 탄핵 등 중차대한 사건들의 최종 심의가 여기에서 이뤄졌다. 이 땅의 크고 작은 역사와 재동 백송을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다.
격랑의 역사는 나무를 따라 이어진다. 재동에서 멀지 않은 종로구 조계사 경내의 백송이 그 나무다. 중국을 다녀온 누군가가 심은 나무라고는 하지만 기록이 없어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다. '서울 조계사 백송'이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된 이 나무는 나무높이 10m, 줄기둘레 1.7m로, 재동 백송보다는 작은 편이다.
서울 조계사 백송이 품은 사람살이의 핏빛 자취는 절묘하게 서울 재동 백송에 연결된다. 바로 조계사 마당 곁의 우정기념관을 통해서다. 박규수의 사랑채에서 싹튼 개화사상을 이어받은 개화파들이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갑신정변을 일으킨 곳이 바로 이곳 `우정총국'이었다. 두 그루의 백송은 개화를 둘러싼 격랑의 역사를 속 깊이 품고 서 있는 것이다.
우리 곁에서 오래 살아온 나무를 본다는 것은 나무에 담긴 사람살이의 문화와 역사를 살피는 일과 다르지 않다. 중국에만 있던 나무 백송은 사람을 따라 국경을 건너 우리 안에 자리 잡으며 문화 교류의 상징으로 남았고, 권력의 부침을 바라본 생명체로 오래 살아남았다.
백송이라는 특별한 나무의 흰 줄기에 남은 얼룩은 나무의 무늬만으로 볼 게 아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지나온 시간의 무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