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의 미학 〈1161호〉
신문사에 들어와 어느덧 다섯 번째 발행을 맞이했다. 처음 기획 기사를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료를 찾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을 기사에 담고, 무엇을 덜어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청년 투자 열풍, 기회와 위험 사이」 기사를 준비하며 청년들의 투자 행태와 그 이면의 위험을 살펴봤다.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여러 쟁점을 들여다볼수록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졌다. 어떤 내용을 빼면 중요한 맥락이 사라지는 것 같았고, 설명을 줄이면 독자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문장씩 보태다 보니 정작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흐려지기도 했다.
노자는 『도덕경』 48장에서 “위도일손(爲道日損)”, 곧 도를 행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덜어낼수록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기사를 쓰는 일도 다르지 않다. 기사는 취재한 내용을 빠짐없이 옮기는 기록물이 아니다. 독자가 사안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고르고, 그 정보가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도록 엮는 작업이다.
중요도를 가리는 기준은 단순하다. 그 정보가 빠졌을 때 독자가 사안의 핵심을 오해하게 되는가를 물으면 된다. 그 답이 아니라면 과감히 덜어내도 좋다. 많이 담는다고 잘 전달되는 것도, 짧게 쓴다고 명료해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과감히 덜어낸 자리에 기사의 핵심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채우는 것은 글쓴이의 욕심이지만, 비워진 여백을 채우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기사에서 덜어낸 공간은 독자가 사안을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만의 시각을 채워 넣는 사유의 자리가 된다.
앞으로 취재를 거듭할수록 쓰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아질 것이다. 그때마다 모든 것을 담기보다 독자에게 꼭 전해야 할 한 가지가 무엇인지부터 물어야 할 것이다. 덜어냄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마음에 더 크고 깊은 울림을 남기는 기자, 그것이 다섯 번째 발행을 지나며 필자가 가슴에 품은 새로운 이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