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현의 작품을 보다]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 〈1160호〉
대부분의 미술 전시장에는 관람객이 지켜야 할 여러 관람 수칙이 있다. 그중에서도 작품의 캡션만큼이나 눈에 띄는 안내 문구는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일 것이다. 손바닥 모양에 사선이 그어진 이 안내 표시는 관람객의 접촉을 제한하여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간단하고도 명료한 신호이다.
관람 수칙을 경시하면 작품이 훼손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 회화나 조각 작품은 미세한 접촉에도 표면에 흔적이 남거나 재료의 상태가 변할 수 있다. 관람객에게는 순간의 작은 접촉일 수 있지만 작품에는 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전시의 의도나 작가의 작업 특성에 따라 어떤 작품은 눈으로만 감상해야 한다.
이러한 관람 수칙은 모든 예술 작품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직접 만지고 참여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는 흥미로운 경우도 있다.
캐나다 보존연구소(CCI)에 따르면, 사람의 손에 있는 땀과 유분, 염분 등은 작품의 표면에 흔적을 남길 수 있으며 작품의 재료와 상태에 따라서는 손으로 가해지는 작은 압력만으로도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부산의 모래축제에서는 한 관람객이 백사장에 설치된 일리야 필리몬체프의 모래 조형물 〈바다의 어머니들〉을 목발로 일부 무너뜨리는 일이 있었다. 해당 관람객은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됐으며 작품은 복구가 어렵다고 판단되어 결국 철거됐다. 관람 수칙을 지키지 않은 행동으로 인해 많은 관람객이 더 이상 그 작품을 볼 수 없게 된 셈이다.
그리고 경주의 한 미술관에서는 벽면에서 바닥까지 설치된 대형 한국화 작품 위에 어린이들이 신발을 신은 채 올라가 눕기도 하고 걸어 다니면서 작품을 훼손했다. 당시 작품가는 1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 미술관에서도 개념미술가 빔 T. 스히퍼르스의 대표작 〈땅콩버터 바닥〉을 관람객들이 밟아 훼손한 일이 있었다. 미술관 측은 작품을 훼손한 관람객들에게 복구 비용을 청구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관람객의 태도와 작품 훼손에 대한 경각심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예술 작품이 관람객의 손길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는 관객 참여형 설치작품 〈소멸의 방〉을 통해 관람객이 공간 곳곳에 스티커를 붙이며 작품을 함께 완성해 갔다. 또한 일본 나오시마의 카도야에 설치된 미야지마 타츠오의 〈시간의 바다 '98〉은 5세부터 95세에 이르는 지역 주민 125명의 참여로 완성된 공동 작품이다. 이 공간은 어두운 일본 전통 가옥 내부를 수영장처럼 꾸며 125개의 LED 디지털 카운터를 무작위로 배치하였는데, 이 카운터의 점멸 속도는 나오시마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각자 원하는 속도로 정했다. 제주 '우도 9경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우도의 삶과 자연을 기록하고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한 공공미술 프로젝트였다. 작업의 결과물은 회화와 사진, 영상과 음악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되어 참여 주민들에게 기증되거나 지역의 문화 자산으로 남아 있다. 이렇듯 전시의 목적에 따라 관람객의 직접적인 참여가 작품을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작품은 눈으로만 보세요'라는 안내 문구는 단순히 작품에 손대지 말라는 주의를 넘어, 예술 작품을 온전히 보존하고 다음 세대까지 지켜주기 위한 하나의 약속에 가깝다. 예술 작품은 다양한 재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료의 특성에 따라 작은 접촉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한 번 훼손되면 복구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거나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고, 더 이상 전시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관람객들은 전시장의 안내 문구에 따라 눈으로 감상해야 하는 작품은 눈으로만 보고,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작품이라면 적극적으로 동참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작품을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지켜야 할 감상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 작품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은 예술 작품의 가치를 영구히 지키는 동시에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향유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