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티프로 보는 그림 〈1159호〉
현재 대구간송미술관에서 《겸재 정선 - 조선의 눈으로 조선을 그리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 작품 중 나의 눈길을 끈 것은 《화훼영모화첩》의 <추일한묘(秋日閑猫)>였다. 화면에는 가을의 따스한 햇빛 아래 한가롭게 앉아 있는 검은색 고양이 한 마리와 분홍빛의 국화가 몇 송이 그려져 있다. 서로 대비되는 색조가 인상적이었지만, 문득 고양이와 국화가 함께 그려진 이유와 그 의미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관련 연구 자료들을 조사해 보니,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으로 장수와 고결함을 상징하며 고양이는 중국어 '묘(猫, māo)’가 노인을 뜻하는 '모(耄, mào)’와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장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추일한묘>에서 표현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소재를 '모티프(motif)’라고 한다.
모티프는 여러 미술 작품에서도 흥미롭게 발견된다. 예를 들어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바니타스(Vanitas)’ 정물화를 들 수 있다. 바니타스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성경 구절과 관련이 있으며 공허, 허영, 헛됨을 의미한다. 바니타스 정물화에는 '인생의 덧없음’과 '세속적 가치의 허무함’을 드러내기 위해 해골, 썩은 과일, 시든 꽃, 시계, 깨진 술잔, 보석, 책 등의 모티프가 등장한다. 해골은 죽음을, 썩은 과일과 시든 꽃은 삶과 아름다움의 일시성을, 시계는 인생의 짧음을 상징한다. 또한 깨진 술잔과 보석은 향락과 부의 덧없음을, 책은 죽음 앞에서 지식과 학문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1434)과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1656)에는 인물들과 함께 '개’가 등장한다. 서양 미술에서 개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충직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충절’과 '신실함’을 상징하는 모티프로 해석된다.
반면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1504)에는 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와 함께 '뱀’이 묘사되어 있다. 성경에서 뱀은 이브에게 금단의 열매(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하고 인간을 타락으로 이끈다. 따라서 서양 미술에서 뱀은 '유혹’과 '타락’을 상징하는 부정적인 모티프로 표현되었다.
나아가 모티프는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암묵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의 <발레(Ballet)>(1876-77)에는 무용수들 사이로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성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그는 당시 파리 오페라의 정기 관객층인 '아보네(abonné)’로 밝혀져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젊은 무용수들과 후원·보호 관계를 맺었으며, 때로는 성적인 관계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모티프를 통해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의 이면에 자리한 당시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까지도 엿볼 수 있다.
작품 속 모티프는 조선시대 <화조도(花鳥圖)>에서도 발견된다. 화조도는 '꽃’과 '새’를 함께 그린 그림으로 부귀와 장수, 다산과 같은 복(福)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모란은 부귀를 의미하고 까치는 좋은 소식 그리고 백로와 연꽃은 과거 급제를 상징한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소재의 모티프도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서양의 바니타스 정물화에서 책은 죽음 앞에서 지식과 학문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반면, 조선시대 <책가도(冊架圖)>에서 책은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고자 하는 입신양명의 소망을 상징한다.
작품 속 인물과 동물 그리고 식물이나 사물 등의 모티프를 살펴보면 종교와 문화 그리고 생활상은 물론 긍정·부정의 상징이나 삶과 죽음 또는 작품이 전하는 교훈적인 메시지까지 엿볼 수 있다. 특히 같은 모티프라도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문화적 배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작품을 감상할 때 모티프를 눈여겨보며 그 의미를 알아가는 재미를 즐긴다. 마치 그림 안에서 보물을 찾아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전시를 관람할 때 모티프를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묘미가 될 수 있다. 만약 작품에서 모티프를 발견한다면 작품 속 이야기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