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움직이는 그늘, 민중의 광장 〈1159호〉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라고 까지 이야기한다. 소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살림살이에 깊숙이 들어와 자리잡았다. 그러나 돌아보면 소나무가 상징한 우리 문화는 지식인을 비롯한 지배계층 중심의 문화였던 게 사실이다. '아들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다’는 것도 실은 장차 이 땅의 지배계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 담긴 행위였을 것이다. 소나무 문화로 우리 문화 전체를 대변하는 데에는 모자람이 있다.
이 땅의 평범한 백성과 농부들의 살림살이를 가장 너그럽게 품어 안은 나무를 따로 짚어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중의 삶과 공동체를 지탱해 온 진정한 문화의 요람은 단연 느티나무다. 마을 어귀나 한복판에 넉넉한 품으로 서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을 묵묵히 지켜보아 온 느티나무는 말없이 우리 민중의 문화를 상징하는 나무임이 분명하다.
시골 마을에서 사람들은 느티나무를 흔히 '당산나무’라고 부른다. ‘당산제’를 올리는 나무여서다. 느티나무 외에도 팽나무 왕버들 등을 당산나무로 삼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당산나무 가운데 가장 많은 나무는 느티나무다.
당산나무와 당산제를 두고 한때 미신이나 샤머니즘의 낡은 잔재로 폄하하고 핍박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당산제는 종교 행위가 아니다. 한 해의 무사안녕과 풍년을 빌며 농사에 지친 농부들을 위로하는 마을 큰 잔치였다.
당산제에는 종교성이 없다. 우선 종교 제의에 반드시 수반되는 사제(司祭)가 따로 없다. 제례를 진행하는 제관은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추대한 원로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누구라도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관이 될 수 있다. 또 당산제를 올리기 전에는 꽹과리와 북, 장구가 어우러진 풍물패가 골목골목을 누비는 ‘길놀이’로 흥을 돋우고, 제사 뒤에는 마을 잔치가 이어진다. 더불어 당산제에 참여하는 마을 사람들의 흥겨운 표정에서도 종교성과 무관하다는 걸 읽을 수 있다. 신에게 올리는 종교 제례라기보다 마을 사람들이 어울리던 문화 행위였음을 증거하는 대목이다.
당산나무는 언제든 마을 사람 누구나 기대어 쉴 수 있는 천연의 쉼터, '정자나무’였다. 뙤약볕 내리쬐는 들녘에서 땀 흘려 일하던 농부들은 나무 그늘에 모여 허리를 펴고 새참을 나누며 숨을 돌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다 보니, 마을의 온갖 기쁜 일과 궂은일이 모두 이 그늘 아래서 논의됐다. 어른과 아이, 이웃과 이웃이 둘러앉아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던 정자나무 그늘은 자연스에 ‘민주주의의 광장’이었다.
느티나무를 마을의 정자로 여기며 아예 ‘정자나무’라고 부르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충북 괴산 우령마을의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다.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여느 근사한 정자의 이름처럼 '삼괴정(三槐亭)’이라고 부른다. 세 그루의 느티나무가 모여 정자를 이루었다는 뜻의 이름이다.
800년 전 마을이 처음 터를 잡을 때 심었다는 이 나무들 가운데, 아래쪽의 느티나무는 지금도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내는 신목(神木)이고, 위쪽의 나무는 버섯 모양으로 고르게 가지를 펼치며 수려한 느티나무의 전형을 보여준다. 인공의 서까래와 기둥 대신 나무 줄기와 잎으로 지은 정자다.
느티나무가 정자나무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비결은 무엇보다 풍성한 그늘에 있다.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무려 5백만 장에 이르는 잎이 달린다. 벌레에게 살점을 나눠주고 구멍 뚫린 잎, 갓 돋아난 여린 이파리, 싱그럽게 물오른 푸른 잎사귀들이 겹겹이 엉키며 그늘을 지어낸다. 바람이 불어오면 5백만 장의 잎이 일제히 물결치며 짙은 어둠을 지었다가, 이내 흩어지며 눈부신 햇살의 조각들을 쏟아낸다. 가장 어두운 밝음에서 가장 밝은 어둠까지, 빛의 농담(濃淡)과 그늘의 심천(深淺)을 끊임없이 바꾼다. 멈춰 있는 그림자가 아니라 생명의 호흡에 따라 물결치는 '살아 움직이는 그늘’이다. 그 안에 날짐승의 노랫소리가 깃들고, 지친 사람의 발길이 스며든다.
느티나무의 바르고 넉넉한 품 안에서 우리 조상들은 공동체의 역사를 엮어왔다. 각박하고 소란한 오늘날에도 사람살이의 고단함을 조용히 감싸 안아주던 그 푸르고 깊은 느티나무 그늘은 소나무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모자란 우리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느티나무에 담긴 우리 옛사람들의 사람살이를 돌아보는 것은 곧 우리 문화의 긴 역사를 짚어보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