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없었던 건 아니다〈1070호〉

2020-04-27     명대신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는 뜻을 가진 시구다. 학우들의 목소리 대신 노트북으로 온라인 강의만 듣고 있자니 지금이 어느 시기인지 실감되지 않는다. 4월 내내, 봄의 상징인 꽃은 지나가다 시선이 머무르는 방식으로만 볼 수 있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윤중로는 폐쇄됐고 제주도는 상춘객들의 밀집을 막기 위해 유채꽃밭을 갈아엎기도 했다. 이쯤 되니 보통의 봄이 그리워졌다. 그러나 온전히 봄을 그리워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다.

  지난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6년째 되는 날이었다. 같은 날 안산 화랑 유원지에서는 ‘세월호 참사 6주기 기억식’이 열렸고, 이를 주관한 4.16재단은 이와 관련해 “오프라인 추모식을 유가족 위주로 축소하고 국민은 마음으로 참석해 주시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잊지 않겠다’는 말은 참사의 반복을 막기 위해 밝혀지지 않은 진상들의 규명을 요구하겠다는 맥락에서 나왔다. 슬픔으로 형용할 수 없었던 날, 우리가 경계에 걸쳐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곳에 있는 회색지대는 바다 같았다. 지금 봄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만큼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날부터 정치인들은 더이상 아이들을 잃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고 수 개의 조사 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여전히 거리에 나와 있다. 부재로 인한 상실을 덮어두고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들을 두고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벌써 6년이다. 그동안 광화문을 지날 때 마다 잠깐 시선이 머무르는 방식으로 유가족들을 바라봐왔다. 그리고 진상규명에 서명을 한 번 한 것으로 책임을 조금 덜어왔다. 조금 지친다는 심정으로 제대로 마주보지 않았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봄이 오지 않은 채 가고 있다. 아무런 진실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제 광화문에서 그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봄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꽃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최근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전 정부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정황을 발견했다. 올해 활동이 끝나는 조사위가 지금이라도 진실을 밝혀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