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문화상-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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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문화상- 시
  • 이재희
  • 승인 2009.12.06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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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문화상- 시

<시 부문 당선작>

 

닭발

 

한 무더기의 비가

트럭을 몰고 언덕을 올라간다.

트럭 안,

그는 자꾸 후사 경으로

짐칸을 흘끔거린다.

고정 되지 못한 주파수에

라디오가 파란숫자들을

흔들며 울어도

오로지 그의 귀엔

트럭천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만 뛰어든다.

 

트럭 뒤 칸, 칸칸이 높여 만든

닭장, 여전히 철장 사이로

목을 빼고 있는 닭들.

트럭 전체를 울리는 빗소리에

운전사도 문득 창문을 열고

쭈욱, 고개를 뺀다.

제 전 재산을 덜컹덜컹

끌고 달리는

그의 뒷덜미를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닭, 닭발.


필자: 유수지(문창 09)

 

<시 부문 심사평>

‘2009 백마문화상’ 시 부문에는 모두 36명이 참가했는데 문제는 그중 상당수가 ‘시’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르는 응모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시를 무슨 유행가 가사 비슷한 것으로 알거나 청춘낙서 정도로 아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현재 문단에서 어떤 시가 높은 평가를 받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히 시를 쓴다며 끼적인다고 그게 다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응모작의 절반 정도는 시의 형태와 수준을 제대로 갖춘 작품들이었고 다시 그것의 절반 정도는 시적으로 우수한 작품이었다. 두 명의 선자는 최종심에 오른 일곱 명 정도 응모자의 작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결과 마지막으로 두 편에 주목하게 되었다.

당선작 <닭발>은 의식의 치열성이 간결하면서도 견고한 이미지 구축으로 이어진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이 삶의 한 장면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응모자의 시적 조숙성이 조금 걱정될 정도이다. 가작 <달을 벗기다>는 발상이 재미있고 상상력의 전개가 유연해 눈길을 끌었지만 상투적인 데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작에 머물게 되었다. 언어의 함축성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는 응모자라는 점에서 앞으로의 가능성이 기대된다.

이밖에 선자들이 주목한 응모작들로는 <포도알의 내력>, <화살코>, <설거지 레시피>, <두란> 등이 있으며 각기 매력 있는 시편이었다. 이번 ‘2009 백마문화상’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고 다른 응모자들도 건필을 빈다.

필자: 남진우(문예창작학)ㆍ정끝별(국어국문학) 교수


<시 부문 당선소감>

 

책을 읽다 보니,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리고 글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도저히 범접하지 못 할 것 같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기량에 겁도 납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것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제가 부족하다는 것에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저를 가깝게 만들어 주신 어머니. 제가 너무 많이 닮아버린 아버지께도 감사합니다. 어머니, 아버지보다 더 많이 읽고, 배운다고 해도 두 분보다 많은 것을 알지 못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든든히 제 유년시절을 함께 해준 우리 오빠도 고맙습니다. 멀리 있는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학교를 오가는 긴 시간 동안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아무것이나 노트에 끼적여봅니다. 이 시간 동안 읽은 책들과 상상, 끼적임 들이 부스러기처럼 모여 하나의 덩어리가 됩니다. 지금은 보잘것없는 완두콩처럼 작은 덩어리입니다. 하지만 곧 이 덩어리에서 싹을 올라오고, 허공을 메울 줄기가 나올 것입니다.

문학상에 시를 전송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몇 편 되지 않는 시로 부쩍 게을러진 저의 생활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제 시를 이렇게 평가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더욱 납작 엎드려 글을 쓰겠습니다. 많은 관념을 깨뜨려 주시는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방향이 잡힙니다. 이젠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09학번 동기들, 선배님들께도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양예고 문예창작과 선생님들과 23기들에게 감사합니다.

필자: 유수지(문창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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