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당선소감+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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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당선소감+심사평
  • 고상윤
  • 승인 2009.12.0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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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당선소감+심사평
 

<2009 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육식동물


예전에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신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의 수가 몇 명인지 알아? 백억, 백억 명이래. 지금 지구의 인구가 칠십억에 가깝잖아. 2030년이 되면 지구의 인구가 그 백억에 육박한다는 거야. 그렇다면 백억이 된 후에는 어떻게 될까? 글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점점 인구가 많아지면 결국 어떤 방법으로든 인간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래야만 지구가 버텨낼 수 있을 테니. 인류의 멸망은 이런 방식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류의 멸망을 늦추는데 일조하고 있으니 전 지구적인 영웅 아니겠어? 처음엔 그냥 웃어 넘겼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남편은 때때로 저렇게 말하곤 했다.

이 사람들은 왜, 무엇 때문에 없어진 걸까? 결혼 십 주년 기념으로 떠났던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돌아보던 중, 남편은 나에게 대뜸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글쎄, 그래서 미스터리라고 하는 거잖아. 처음 발견했을 때 이미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도시였다면서. 뭔가 이유가 있었겠지. 억양 없는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웃음 지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를 둘러보면서 그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내내 생각해봤거든. 그래서 내린 결론인데……. 그 때 캄보디아로 여행을 갔던 이유는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이 캄보디아에 있는 고대도시유적인 앙코르와트를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미스터리나 음모론, 초자연 현상 같은 것을 좋아했다. 특히 멸망한 고대문명이나 역사의 뒷얘기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나에게 잉카나 마야 같은 사라진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나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매번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나는 앙코르와트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도 남편이 습관처럼 해왔던 엉뚱한 이야기들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 때 이미 앙코르와트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위해 새벽 여섯 시가 되면 항상 오르던 동네 뒷산에서 남편은 사라졌다. 조금 이상했던 것은 사라지던 날 남편이 나를 깨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평소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를 먼저 깨운 뒤 집을 나서던 남편이 그날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옷을 챙겨 입고 배달을 나갔을 뿐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남편이 집에 없는 걸 확인했을 때도 나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집에 혼자 있을 때 즐겨하던 인터넷 맞고 게임에만 열중했을 뿐이다.

그렇게 꼬박 하루가 지나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도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편의 옛 직장동료들에게 전화도 걸어보고 그 밖에 수소문해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봤지만 남편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제야 나는 뭔가 일이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스물여덟 시간 만에 경찰에 신고전화를 넣었다. 경찰에서는 남편의 인적사항만 몇 가지 물어본 뒤 별 일 아닐 거라며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렇게 남편을 기다린 지도 벌써 열흘이었다. 경찰에서는 신고한 지 삼 일이 지나서야 수사에 들어갔다고 알려왔지만 그게 전부였고, 수사 진행상황이 어떤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갓 마흔을 넘긴 남편은 올해 초 휴직했다. 승진 심사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의 휴직이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이제 우리한테 남은 기회가 별로 없잖아. 할 수 있는데 까진 해봐야지. 남편은 휴직하면서 내 녹즙일도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신도 이제 일을 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가 여기에 살 필요도 없고. 어디 경치 좋고 조용한 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따로 재테크를 하진 않았지만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쌓인 돈이 꽤 되는 편이었다. 좋아할만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시간 전까지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안방 건너편, 남편이 서재로 쓰던 작은 방에 들어갔다. 별다른 취미가 없었던 남편은 집에 있는 동안 잠 잘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이 곳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따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가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기 때문에 나는 청소할 때를 제외하고는 이 방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책상 위에 있던 중요한 서류를 폐지로 알고 재활용했다가 남편에게 크게 혼난 뒤로는 방 안 그 어떤 물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고 청소 하는 것마저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방 안 풍경이 나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방 안 구조는 단순했다. 문이 있는 벽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책상, 오른쪽에는 책장이 있었다. 책장 옆 옷걸이에는 남편이 걸쳤던 추리닝과 모자 따위가 걸려있고 책상 옆에는 원목으로 만든 아기침대와 쌓여있는 상자 몇 개가 있었다. 나는 남편이 썼던 의자에 앉아 방 안을 둘러보았다. 책상 밑으로 아령이 보였다. 책을 읽으면서도 틈틈이 운동을 한 모양이었다. 백 구십에 가까울 정도로 키가 컸던 남편은 운동을 좋아한 덕에 오십 대답지 않은 몸을 갖고 있었다. 나는 의자를 책상에 바투 붙여 앉았다. 십 년도 더 된 나무의자가 삐걱거리자 책상도 덩달아 끙끙댔다. 그러고 보니 한 달쯤 전이었나, 자꾸 비틀거리는 의자를 고치면서 남편이 말했었다. 이젠 더 못쓰겠는 걸. 자꾸 나사가 헛돌아서 더 조이지도 못하겠어. 이놈도 이젠 사라질 때가 됐지. 남편은 나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진작 좋은 책걸상 하나 장만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새삼 후회스러워졌는지 콧등이 시큰해졌다. 책상 위에는 낡은 스탠드와 독서대, 그리고 책 몇 권이 놓여있었다. 나는 독서대 옆에 있던 남편의 책들을 살펴보았다. 약간 먼지가 쌓인 책 표지는 많이 닳아있었다. 세계 역사의 미스터리, 사라진 문명의 수수께끼, 강명자 박사의 한방불임 치유법, 건강한 임신 불임해결 길라잡이…….

우리가 처음부터 아이를 포기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결혼 후 처음 몇 년간은 임신을 위해 안 해본 노력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우리는 산부인과에서 불임검사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그 불임검사가 더욱 큰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 검사결과 남편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자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남편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희망을 갖고 찾아왔던 산부인과였고 의지를 갖고 했던 불임검사였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배란 쪽에서 보이는 약간의 이상은 불임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라잖아. 신생아실 앞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울컥하며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비오는 날 유리창을 보는 것처럼 자꾸만 시야가 흐려져서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인큐베이터들 속이 모두 텅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위로하는 남편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여보, 이건 내가 위로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책상에 있는 서랍들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오른편에 층을 이루고 있는 세 개의 서랍에는 필기도구나 스탠드 램프 정도가 있었을 뿐, 달리 들어있는 것은 없었다. 책상 중앙에 가로로 길게 누워있는 서랍은 잠겨있었다. 열쇠를 찾기 위해 방 안을 둘러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남편은 비밀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 그래서인지 잠겨있는 서랍에 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열쇠를 찾아 온 방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남편에게 왜 미스터리나 음모론 같은 것을 좋아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냥, 우리가 미스터리하니까. 뭐가 미스터리하단 거야? 생각해봐, 병원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벌써 십 년이 다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 왠지 미스터리 하지 않아? 어쩌면 병원에서조차 모르는 다른 불임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신체적 문제나 그런 게 아닌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데 그걸 지금 모르는 것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건 그런 미스터리들을 풀고 진실을 찾는 것과 비슷한 거 같단 생각이 들어.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찾는 거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우리의 아이를.

책장 가득한 미스터리 관련 책들을 반 이상을 들춰냈을 때 위에서 두 번째 칸 가장자리에 있는 ‘똑똑한 아이, 아빠가 만든다’ 가 눈에 들어왔다. 열쇠는 책 제2장, ‘아빠와 함께 책을’ 사이에 있었다. 나는 잠겨있는 중앙서랍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서랍 안에는 노란 봉투 하나와 작은 앨범이 있었다. 한 면에 사진이 한 장만 들어갈 정도로 작은 앨범 속에는 귀여운 여자아이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갓난아기 때의 사진부터 시작한 앨범은 초등학교 입학식 때 찍은 듯 보이는 단체사진과 함께 끝났다. 노란 봉투 안에는 주민등록등본 사본을 비롯한 인적관련서류와 남편이 붉은 색 벽돌로 된 건물 앞에서 앨범 속 여자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마도 남편이 후원했던 아이인 것 같았다. 나는 사진 속 아이와 남편을 번갈아가며 보았다. 아이의 얼굴에서 남편의 얼굴이 조금 묻어나는 듯 했다. 남편이 말했었다. 사라진 폼페이나 트로이를 찾았던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우리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야. 서랍 속에서 남편은 아이를 찾았고 나는 남편을 찾았다.


등본 상에 기재된 보육원은 집에서 십 분 정도 떨어진 곳, 동네 뒷산을 향해 올라가는 길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뒷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가 나왔다. 십 년 전 처음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 남편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임신이 되지 않자 입양을 심각하게 생각했었다. 때문에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이곳을 꽤 자주 방문하는 편이었다. 여기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나중에 우리 아이를 키우는데도 도움이 될 거라는 남편의 제안도 한 몫 했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에 등산을 갔다 올 때마다 보육원에 들러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었다.

나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 많이 서툰 편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이들과 무척 잘 어울렸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나보다 남편주위에 모여들었다. 남편에게 질투를 느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등산길이 꺼려졌고 남편 혼자 보육원에 들르는 횟수가 늘어갔다. 가끔 나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정말 밝고 귀여운 아이와 친해졌는데 우리 아이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오 년 전 내가 폐경을 겪고 보육원에 발길을 끊은 뒤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굳이 설득하려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남편은 항상 나를 배려했다. 덕분에 나는 남편을 많이 찾지 않았다. 내가 사소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남편이 항상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 후 삼 년쯤 되었을 때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임신으로 인한 우울증과 히스테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시작했던 학업이었다. 남편의 권유도 있었다. 계속 집에만 있으면 더 안 좋아. 밖에 나가서 좋은 공기도 쐬고 평소 하고 싶었던 공부도 하고 그렇게 집중할 일이 생기면 마음이 좀 안정될 거야. 특별히 하고 싶은 공부가 없었던 나는 남편의 추천을 받아 전문대 경영학과에 편입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배운 식품영양학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학과였지만 공부보다 출석에 의미를 두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배우든 상관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집에서 특별히 하는 일이 없었던 나는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했다. 처음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공부도 학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열심히 하다 보니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학교와 공부에 더 열중하게 되었다. 남편은 매일 밤,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는 나를 데리러 오곤 했다. 2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배운 것을 써보고 싶었고 그렇게 녹즙일을 시작했다. 그 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우울증과 히스테리가 사라진 것도,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것도 모두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 보육원 없어진 지 꽤 됐는데.”

“없어진 지 얼마나 됐는데요?”

“글쎄, 한 오 년 쯤 됐나.”

보육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만난 촌스런 등산복을 입은 아줌마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래도 남편과 관련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발걸음을 옮기는데 아줌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거기 안가는 게 좋아요.”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아줌마를 돌아보았다.

“보육원 없어진 뒤로 그 건물이 버려지는 바람에 지금 노숙자들 천지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동네사람들도 언제부턴가 뒷산엔 잘 안 올라가요. 나야 뭐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그냥 다니지만 솔직히 나도 별로예요, 거긴. 그 사람들 때문에 약수터도 못쓰고.”

보육원 마당에는 무성한 잡초만큼이나 노숙자들이 가득했다. 모여 있는 노숙자들에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여름 오후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보육원을 휘감고 있었다. 아예 없거나 깨진 유리창, 떨어져나간 현관문, 그을린 자국이 군데군데 보이는 벽면도 현재 보육원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애써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때를 떠올려봤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 어쩌다가 이곳이 이런 모습으로 변한 걸까. 적어도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보육원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곳이 원래 이런 곳이었을 수도 있다. 내 기억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 때 내가 남편과 갔던 곳이 보육원이 아니라 유치원이었던가.’ 나는 밀려드는 생각을 뒤로하고 행여 남편에 관련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보육원 마당으로 들어섰다. 노숙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참아내며 막 건물 쪽으로 가려는데 건물 현관 앞 계단 밑에 누워있던 노숙자가 내 앞을 대뜸 막아섰다.

“어딜 가려는 거요. 여긴 왜 왔수.”

머리가 하얗게 샌 노숙자의 입과 몸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나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한 여름인데도 찢어진 겨울 잠바를 입은 노숙자는 낯빛에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사람 좀 찾으러 왔어요.”

“우리한테서 뭘 바라는 거요. 우리 같은 사람을 찾는 사람은 없수다. 어서 내려가쇼.”

노숙자는 냉랭한 말투로 말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는 노숙자에게 남편이 열흘 전에 사라졌단 말을 해주었다. 내가 남편을 찾을 수 있게 조금이라도 짐작 가는 게 있으면 꼭 좀 알려달라고 말하자,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노숙자도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분명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사라진 사람일 것이다. 오랜만에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남편을 찾는 것처럼 그들도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바깥양반이 어디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알고 있소?”

노숙자는 경계를 풀지는 않았지만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남편이 보육원 바로 뒤에 이어진 산으로 등산을 갔다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내 말을 들은 노숙자의 표정은 어두웠다. 땀으로 범벅된 몸도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그는 나의 시선을 피한 채 한동안 침묵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줌마, 이 산엔 말이오……, 괴물이 살아요.”

“네? 무슨 괴물이요? 맹수가 산단 말이에요?”

노숙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구요.”


사라진 문명들이 아직 이 세상에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이유는 그 멸망이유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건 단지 추측일 뿐이다. 마야나 앙코르와트에 살던 사람들이 무슨 이유 때문에 사라졌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편은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그럴듯한 가설이 생각나면 나에게 얘기해주곤 했다. 앙코르와트 사원의 벽면에는 당시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양각되어있다. 옛날 앙코르와트에 살던 사람들은 그런 얼굴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자신의 가설을 말해주는 남편의 얼굴은 그 얼굴과 닮아있었다.

여기 사람들은 모두 잡아먹힌 걸 거야. 잡아먹히다니 누구한테? 글쎄, 굳이 말한다면 사람을 잡아먹는 육식동물?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남편은 못미덥다는 듯 말하는 나를 보며 웃어보였다. 당신 앙코르와트가 왜 20세기가 돼서야 발견된 거 같아? 이 도시 주위를 둘러봐. 밀림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어. 도시로 통하는 길도 없고.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공간이라는 거지. 여기 사람들은 여기 말고는 다른 곳에서 살 수 없었다는 얘기지. 섣불리 정글로 나갔다간 죽기 십상일 테고. 근데 그런 게 육식동물이랑 무슨 상관이야? 남편은 내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자 답답한 모양인지 말을 끊었다. 당신, 쥐 알지? 앙코르와트를 대충 둘러본 뒤 수많은 관광객들과 더위에 지쳐 나무그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한참동안 아무 말이 없던 남편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 쥐를 우리 안에 넘칠 정도로 가득 넣은 뒤 먹이를 주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아? 나는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었다. 글쎄, 무슨 일이 벌어지는데? 지들끼리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해. 처음엔 약하고 어린 쥐부터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잡아먹게 되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쥐는 자기 종족을 잡아먹는 육식동물일 뿐 이미 쥐가 아니야. 나는 그런 비슷한 상황이 이곳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어. 결국 모든 인간을 잡아먹고 나서 그 육식동물도 죽어버린 거고. 그래서 아무도 남지 않게 된 거지. 어때? 좀 무서운 얘기긴 해도 그럴듯하지 않아?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남편이 왠지 더 무서웠다.

남편이 무서웠던 적은 예전에도 있었다. 처음 남편과 사귀기 시작했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는 살아온 환경이 너무 달랐다. 내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별다른 탈 없이 살아온 데 비해 남편은 열세 살 때 부모님을 잃고 혼자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남편은 가족과 아이에 대한 집착이 있는 편이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했던 아버지가 결국 결혼승낙을 한 이유도 남편의 이런 면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남편이 부담스러웠다. 결혼 후 몇 년, 임신에 실패하고 아이 없이 지내는 하루가 늘어갈 수록 남편의 말수는 줄었고 나의 부담감은 커져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쌓이던 부담감이 딱딱하게 굳어 남편과 나 사이에 벽을 만들었을 때쯤, 기적처럼 그 벽을 뚫고 작은 생명이 잉태되었다. 결혼한 지 십 년만의 일이었다. 남편은 출동 중에 처음 임신소식을 들었다. 고마워 여보, 정말 고마워. 소방복을 벗지도 않고 찾아온 남편은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에 내 손을 부비며 울었다. 나는 몇 시간 전 네일아트를 받은 손톱이 상할까봐 염려스러웠다.

그 뒤로 남편은 나에게 과도한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결혼 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던 관심이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다주는 것은 물론이오,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전화를 걸어 나의 소재를 파악했다. 비번인 날은 종일 집에 붙어있었다. 전엔 내가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해도 별로 간섭하지 않았고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밖에서 취미활동 하는 것을 권했던 남편이 이제는 잠시 외출하는 것조차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남편 탓에 나는 언제나 갇힌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도 그동안 했던 마음고생을 내려놓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답답했다. 백화점에서 함께 유아용품코너를 둘러보고 아이에게 읽어줄 그림책을 고를 때에도, 웃고 있기는 했지만 남편과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나 정말 훌륭한 아빠가 될게. 임신이 3개월째에 접어들 무렵, 잠자리에서 남편이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남편에게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돌아누웠지만 남편은 내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물어왔다. 당신 왜 그래. 갑자기 왜 울어. 다, 당신 말, 말을 들으니까 너, 너무, 너무 기, 기뻐서 그래. 나는 우는 얼굴을 남편에게 보이기 싫어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 동네로 이사 온 것은 그 때쯤이었다. 십 년 간 살던 13평 연립주택을 나와 새로 장만한 32평짜리 아파트였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집이 더 커야할 것 같아서. 나에게 처음 집을 보여주었을 때 남편은 몰래 집을 장만한 것이 미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새로 이사한 집에는 방이 총 세 개였다. 남편은 내 배를 어루만지며 이 아이가 자라면 안방 건너편 방을 아이방으로 만들 거라고 말했다. 내가 하나 남은 방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자 남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둘째 아이방으로 써야지.

하지만 남편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았던 어느 늦은 오후였다. 갑자기 찾아온 하복통과 함께 출혈이 시작됐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에서, 병원에 도착해 수술이 진행되는 중에도 고통은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병실 문을 열고 한참 서 있다가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소방복 차림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아무 말 없이 서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고개를 들어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깨끗하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있던 남편이 말했다. 오인출동이었거든. 또 다시 말이 끊겼다. 한참동안 침대 옆에 서있던 남편은 돌아가기 직전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남편은 지금까지 나에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었던 굳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눈이 이렇게 말하는 듯 했다. 당신이 아이를 잡아먹었어. 그 날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노숙자는 남편이 아마 그 괴물에게 잡혀갔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노숙자에게 괴물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본 적 있냐고? 나는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우리 노숙자들 사이에선 유명한 얘기요. 우리가 녀석의 먹잇감이니까.”

“먹잇감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노숙자의 말에 따르면, 괴물은 산에 살면서 밤이 되면 먹이를 찾아 내려오는데 그 먹이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자신은 딱 한 번 괴물의 그림자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이 사람과 흡사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처음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가 보이는 반응이 워낙 진지했다. 게다가 그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주위 노숙자들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얘기를 듣고 다시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려했지만 노숙자는 길을 열지 않았다.

“안에 들어가는 건 위험해요.”

“왜요?”

“안에는 노숙자들뿐이에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세요.”

나는 고개를 들어 보육원 안쪽을 살폈다. 대낮이라 조금은 내부가 보일 듯도 하건만 현관 쪽 신발장만 어렴풋이 보일뿐 잘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보면 건물 안이 굴속처럼 어두컴컴한 게 꽤 깊어보였다. 게다가 노숙자의 말과 달리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하자 노숙자가 내 몸을 밀쳐 밖으로 쫓아냈다. 그 와중에도 내 시선은 여전히 동굴 같은 보육원 안쪽을 향해있었다. 노숙자는 다신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순 없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를 뒤졌다. 빅풋, 예티, 설인…… 미스터리 프로그램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털북숭이 괴물이나 거인에 대한 책들은 많았지만 어디에도 그 털북숭이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말은 없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다른 육식동물에 대한 내용 또한 전무했다. 거실로 나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했다. 보육원에 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을까 해서였다. 정보를 검색하던 중 한 뉴스 사이트에 걸린 “네안데르탈인, 인간이 잡아먹어 멸종”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인간의 식인증거를 숨겨왔으나 이젠 식인관습을 인정해야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멸종 시기는 현생인류의 유럽유입시기와 일치한다.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유입된 현생인류는 먹을 것이 필요했으며 약하고 얻기 쉬운 먹잇감이었던 네안데르탈인을 사냥했다. 약 30만 년 전 출현하여 몇 번의 빙하기를 이겨내고 3만 년 전 경까지 생존했던 네안데르탈인들은 인간에 의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보육원에 관한 정보를 찾아 헤맸다. 검색사이트에서 수많은 보육원들의 정보를 찾아줬지만 내가 찾는 보육원에 대한 것은 없었다. 나는 다시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틀에 기대 방 안을 보고 있는데 문득 아기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아이방으로 꾸며졌어야 했던 이 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가구다. 방금 전 보육원 정보를 검색할 때 봤던 아기침대랑 비슷한 디자인이다. 어쩌면 똑같은 침대일지도 모른다. 아기침대 옆에 있는 상자들을 열어봤다. 상자 안에는 아기용품들이 들어있었다. 남편은 내가 임신한 뒤 함께 쇼핑을 갈 때마다 유아용품코너에 들러 아기가 입을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을 한두 개씩 꼭 사곤 했다. 퇴근길에 아기장난감을 사들고 올 때도 종종 있었다. 나는 남편이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다.

“뭐 하러 이런 걸 벌써부터 사고 그래.”

“왜? 지금부터 출산준비를 미리미리 해둬야 하는 거라고.”

“아니, 암만 그래도 이제 임신한 지 8주밖에 안됐는데 벌써 이렇게 살 필욘 없잖아. 나중에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는 거 아냐?”

아기옷을 고르던 남편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 아이 갖는 게 싫은 거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그, 그게 무, 무슨 말이야.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 나는…… 그, 그러니까 그냥 지금 이러는 게 낭, 낭비 같아서 그래.”

남편은 손에 들고 있던 아기옷을 내려놓고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장난으로 물어본 거였는데…….”

유산 후에 나는 남편이 사온 아기용품들을 전부 버렸다. 어디 줄 곳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별 말 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버렸던 아기용품들을 남편은 전부 상자 안에 간직하고 있었다.

상자 안에는 처음 보는 배냇저고리도 있었다. 남편이 아기용품들을 많이 사오긴 했지만 배냇저고리만은 사오지 않았었다. 나는 상자에서 배냇저고리를 꺼내 펼쳐보았다. 남편이 나 몰래 장만해두었던 건가 싶었다. 그 때 머릿속으로 사진 속 여자아이의 모습이 스쳐갔다. 나는 서랍을 열어 남편과 여자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냈다. 처음엔 남편을 닮은 것처럼 보였던 아이는 볼수록 나와 닮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앨범을 열어 아이의 다른 사진들을 살폈다. 아이는 내 어린 시절 모습과 비슷했다. 확실히 그랬다. 아이는 남편을 닮은 것 같기도 했지만 나와도 비슷했다. 남편은 이 아이를 후원하며 우리아이를 기르는 것 같은, 대리만족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배냇저고리는 이 아이를 입히기 위해 장만한 것일 수도 있었다. 배냇저고리만이 아니라 상자 안에 있는 아기용품들 모두 이 아이가 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 아이는 남편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왠지 남편은 아이와 함께 있을 것만 같았다.

새벽 한 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보육원으로 향했다. 낮에 들어가 보지 못한 보육원 건물 안에 사진 속 아이와 남편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노숙자들이 나에게 보였던 태도는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남편은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왔다. 남편은 자의식이 강한 나 때문에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내가 싫을 때도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화내고 짜증부리는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고약한 아내의 히스테리를 전부 받아주었다. 남편이 참아주지 않았다면 이십오 년간을 부부로 버티며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남편에게 난 제대로 된 아내노릇 한 번 해준 적이 없었다. 반평생을 나에게 헌신하면서 살아왔던 남편이 나에게 바란 것이라곤 시간 맞춰 불임클리닉에 다니는 것과 거기에서 시키는 내용을 잘 따르는 것, 그리고 배란기에는 꼭 관계를 맺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것조차도 일을 핑계 삼아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내가 유산한 이후 남편은 아이를 입양하길 원했다. 십년동안 노력을 해왔지만 아이를 갖지 못했기에 나도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낳지도 않은 아이를 제대로 길러낼 자신이 없었다. 남편도 입양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나를 알아챘는지 무리해서 추진하지는 않았다. 다만 매일 잠자리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설득했을 뿐이다. 남편은 결국 나를 설득하지 못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기분 나빠하거나 실망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남편이 고맙다는 생각은 했어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남편을 되찾고 싶은 마음뿐이다.


보육원으로 가는 길은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했다. 손전등을 가져오긴 했지만 고르지 않은 바닥 탓에 걷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보육원은 어둠만큼이나 깊은 정적에 잠겨있었다. 낮에 찾아왔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보육원 앞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많던 노숙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로부터 급하게 도망친 듯 옷가지만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났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다. 손전등은 일부러 켜지 않았다.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아 나는 벽을 짚어가며 걸었다. 낮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건물 안이 아니라 거대한 구멍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눈을 뜬 것과 감은 것이 전혀 구별 되지 않았다. 나는 좁고 뻑뻑한 어둠을 뚫고 한걸음씩 전진했다. 이따금씩 발에 둥글고 딱딱한 것이 밟혀 긁히는 소리가 났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내 힘으로 걷는 게 아니라 뭔가가 일정한 리듬으로 뒤에서 떠미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 우는 것 같은 소리였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 때 동이 트듯 눈앞이 어렴풋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애써 눈을 찡그리며 빛이 흘러나온 곳을 찾았다. 빛은 보육원 가장 끝에 있는 방으로부터 나오고 있었다. 빛은 신기하게도 주위를 밝히지 않았다. 마치 어둠 속에서 홀로 점멸하는 반딧불 같았다. 나는 빛을 향해 다가갔다. 방에 가까워질수록 빛은 밝아졌고 소리도 더 또렷해졌다. 빛은 점점 더 밝아지더니 마침내 방 앞에 이르자 오로라처럼 환하게 일렁였다. 방 안에는 어떤 동물의 것인지 모를 뼛조각들이 흩어져있었다. 바닥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있었고 빛도 소리도 그 구멍을 통해 밖으로 새나왔다. 구멍 속에 뭔가가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구멍 속에 있었다. 덩어리들은 점멸하는 반딧불처럼 어른거렸다. 나는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촉촉하고 물렁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원통 모양의 덩어리를 더듬어 올라가는데 끝부분에서 뭔가가 만져졌다. 다섯 개의 손가락이 붙어있는 사람의 손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덩어리를 던져버리고 다른 덩어리를 집었다. 그 덩어리의 끝에는 발이 붙어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구멍 속 덩어리들을 쳐다보았다. 겹쳐있는 덩어리 사이로 다소 크기가 작은 덩어리 하나가 보였다. 다른 덩어리들이 원통형인 것과 달리 그것은 공 같은 형태였다. 나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덩어리들 사이로 그것을 꺼내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남편의 머리였다. 나는 남편의 머리를 들고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소리는 남편의 조각들이 내는 빛 속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두 남녀가 몸을 섞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가 일방적으로 위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보다 거대한 몸을 갖고 있었다. 밑에 깔려있는 남자는 여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너무 작고 연약해 보였다. 그는 내 남편이었다. 남편의 몸은 움직임을 잃은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어깻죽지부분이 너덜너덜한 것으로 봐선 양팔이 뜯겨져 나간 듯 했다. 머리를 산발한 여자는 손이 대롱대롱 달린 팔을 먹고 있었다. 아마도 남편의 것인 듯 했다. 여자는 눈물을 흘렸고 남편의 팔을 먹었으며 계속해서 몸을 움직여댔다. 울음소리가 커질수록 여자의 움직임도 점점 격해졌다. 그 여자는…… 나였다.

울음소리는 어느 틈엔가 내가 내는 교성으로 바뀌었다. 머릿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신혼 첫 날 밤이었다. 아마도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아니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한 순간. 나는 몸을 움직이며 천천히 남편을 감싸 안았다. 흥분을 참지 못하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습관적으로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 때의 포옹은 남편의 가슴 속에 있는 바다로 잠겨 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평양처럼 넓었던 그 바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마네킹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유영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은 그 사람들 사이에서 어린 아이처럼 손을 내밀고 있었다. 입을 열고 뭔가 말하는 듯 했지만 물거품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아무도 남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가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어린 남편은 천천히, 미끄러지듯 나를 향해 다가왔다. 스쳐가는 사람들 때문에 남편의 모습이 흐릿했다. 남편은 사람들 틈 사이로 어린아이처럼 작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을 둘러싼 알지 못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사람들로 인해 사라져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손을 내민 남편의 모습은 점점 멀어진다.

어느새 소방복을 입은 남편이 집 앞에 서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집은 고요하다. 남편은 피가 흥건한 거실을 가로질러 안방으로 간다. 잠시 모습을 감췄던 남편은 방에서 가방을 들고 나온다. 남편의 가방이 아니다. 자리에 앉아 내 가방을 뒤지던 남편은 곧 뭔가를 손에 들고 몸을 일으킨다. 학교를 다니던 때부터 폐경을 겪기 전까지 함께했던 익숙한 알약이 남편의 손 안에 들어 있다. 남편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 때 남편의 등 뒤로 현관문이 열리고 정장을 입은 내가 들어온다. 남편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나는 그런 남편의 시선을 견딜 수 없다. 고개를 숙인 채 남편에게 다가가던 나는 품속에서 칼을 꺼내 남편을 찌른다. 남편은 마치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온 몸이 조각나며 쓰러진다. 남편의 조각들이 거실에 흥건한 피 속으로 떨어진다. 피는 곧 구멍이 된다.

귓구멍을 가득 메우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구멍 속의 내가 남편의 머리를 뜯어내고 있었다. 비명소리는 남편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는 것이었다.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소리를 지르면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몸과 분리된 남편의 머리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머리를 먹는 동안 남편의 목에선 또 다른 머리가 돋아났다. 나는 남편의 머리를 먹다 말고 그 얼굴을 바라봤다.

순간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남편의 머리를 내팽개쳤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얼굴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 빠른 속도로 머리를 뜯어 얼굴을 눈앞에 두고 몇 번을 더 확인했다. 앙코르와트에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쥐를 잡아먹은 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는데.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쥐들이 순순히 잡아먹힌 걸 보면 그냥 보통 쥐랑 별다를 게 없지 않을까? 원래는 녀석도 보통 쥐니까. 아마 쥐를 잡아먹은 쥐도 처음엔 자기가 그렇게 될 줄 몰랐을 거야.

나는 눈앞에서 울고 있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쥐도, 괴물도 아닌……, 나의 얼굴.


필자: 김영랑(문창 02)

<2009 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소감>

나는 <미운오리새끼>라는 동화를 좋아한다. 함께 농장에 살던 동물들과 형제오리들, 심지어 이름 모를 작은 새에게까지 따돌림을 받았던 미운오리새끼. 결국 미운오리새끼는 쓸쓸히 추운 겨울을 보낸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미운오리새끼는 문득 하늘을 날 수 있게 된다. 미운오리새끼는 ‘백조’였다.

내 어렸을 적 별명은 ‘오리’였다. 남보다 튀어나온, 옆으로 찢어진 입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동화 속 ‘미운오리새끼’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분명히 말을 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내 말이 전해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의도로 전해지는 말들이 무서웠다. 나와 그들의 언어는 서로 달랐다. 영장류에 대한 조류의 동경은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입으로 그들의 언어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과 부대끼며 살기 위해서는 그들과 소통을 해야만 했다. 내가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글을 쓰는 것뿐이었다. 나의 언어를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지만 나는 그 작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미운오리새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첫 번째 털갈이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미운오리새끼’였던 나를 보듬어줬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들이 있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첫 번째 털갈이의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나를 둘러싼 수없이 많은 호박씨를 헤치고 내 손을 잡아준 사람들에게 이제는 ‘미운오리새끼’가 아닌 나를 보여주고 싶다. 나의 털갈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소설당선자.JPG 필자: 김영랑(문창 02)

<2009 백마문화상 소설 부문 심사위원 심사평>

‘식인Cannibal’은 문명 혹은 문화와 대극에 서있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모든 문화는 본능의 포기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 건 프로이트였고 그 본능에는 식인이 포함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유럽이 자신들의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지배당하는 식민지 사람들에게 ‘식인’이라는 표상을 부여했다고 말한다. 이렇듯 현대문명은 식인본능을 억누르거나 타자에 전가함으로 성립되고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당선작 <육식동물>은 식인과 문명의 이분법을 가로질러 자기(문명) 속에서 타자(식인)를 읽어낸다. 오이디푸스 이래로 있어온 ‘발견하는 자=발견당하는 자’란 서사는 진부하지만, <육식동물>은 식인이라는 타자를 끌어옴으로써 진부한 서사를 갱신한다.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에 주목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가작 는 대형서점에서 밤을 보내는 노숙자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책(글자)을 보아야만 사고가 작동하는 ‘글감옥’에 갇힌 하이칼라 노숙자인 셈이다. 이는 우리 시대 작가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낸 알레고리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진짜로 길바닥에 나앉게 된 사람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그들의 ‘까만 전화기를 울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미흡하다.

그 외에도 <인생이여, 만세!>, <자라자라>, <코끼리 무덤>, <티눈> 등도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요하는 작품들이었다.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이 작품들과 앞의 두 작품의 질적 차이는 극히 미미하다. 이야기를 엮어내는 능력, 문장을 구축해나가는 능력 등이 소설쓰기의 기본기라고 한다면 응모작들 모두는 이러한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 심사위원으로서는 그만큼 고르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다는 말이다.


신수정 교수님.jpg윤대석_교수님.JPG
필자: 신수정(문예창작학)ㆍ윤대석(국어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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