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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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사는 마음으로
  • 관리자
  • 승인 2009.11.1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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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사는 마음으로
30대 초반이던 나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우리대학 문예창작학과 3학년에 편입해 우리대학을 다녔다. 입학 당시 나는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낸 등단 근 10년 차에 이르는 중고 신인이었다. 어느 정도 시단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시 쓰기에도 탄력이 붙어 새삼스럽게 시를 공부해야 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편입을 하기 위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실기시험 준비를 했다. 주변에선 이런 나를 보고 왜 새삼스럽게 대학을 다니려 하는지 물어보는 이도 있었다. 그때마다 다소 부끄러운 얼굴로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래요”하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곤 하였다. 시인으로서 참 궁색하고 멋없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실지로 그런 생각이 강했다. 글을 쓰기 위해 골방에 틀어박혀 열심히 책을 읽고 창작에 몰두하는 것이 시인의 본분이겠으나, 그것만으로는 시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활인으로서의 삶이 바탕 되지 않으면 시 쓰기는 허물어지기 쉬운 모래성이 되기 십상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시 쓰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 시란 고상한 것이 아니라 밥을 먹고 사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시란 밥을 먹고 사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난 믿었다. 흔히 세상살이를 ‘밥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비유하는 것도 인생이란 ‘따뜻한 밥을 먹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의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머리를 맞대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먹는 동안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따뜻한 훈기는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그런데 30대 초반의 나는 인생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 당시 IMF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이어서 사회가 뒤숭숭했고 다니던 직장도 문을 닫을 처지에 몰려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앞으로의 직장생활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시인으로서의 앞날을 위해서, 대학 편입을 선택했다. 스무 살 초에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지만 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원까지 마쳐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생활을 꾸릴 만한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에 박범신 교수님 등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원 석사 과정부터 박사 과정까지 문예창작학과 김석환 교수님의 배려로 명대신문사 조교로 근무하며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행운에 가까웠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김석환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삶에 등을 돌리고 돌아앉은 골방의 시인이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이 어렵고 힘들수록 우리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때부터 자신 안에 웅크리고 있는 참된 자아가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미래를 예견하게 하는 희망이 싹튼다. 모락모락 김나는 한 그릇 쌀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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