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열 가족 칠 남매가 빠듯이 먹고나 지낼 농촌에서 누나, 형이 공부를 포기해 차례는 닿았지만 등록금 만들 자신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했지요. 독학 고시생이 되겠다고 했지만 맑은 하늘에 흰 구름 잡기로 마음만 하늘을 날다 떨어지다 걷잡을 수 없어 미칠 것만 같습디다. 2차 원서로 명지대 2년 졸업하면 중학교 교사 자격증 준다기에 입학했지요. 겨우 셋방에 터 잡아 가방 만드는 집안 형님 2층 좁은 공장에 엉덩판 디밀고 살려 달라 했지요. 6.25 폐허 어디에 취직이 되나요. 용궁 저수지에 대나무 낚싯대 하나 달랑 들고 신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아까운 젊음만 낚았다 놓았다 했지요. 3년 뒤 경희대에 편입학 졸업하고 임용고시로 중학교 국어교사가 되었지요. 육군 소위 동생 월급 뜯어내고 형님 남의집살이로 대학을 나왔고 밑의 동생들 앞길 막아버린 은혜와 죄책의 무거움은 아직도 가슴을 누르고 있습니다.
명지대 졸업 후 ‘장편소설을 써서 삼류잡지에라도 실을 수 없습니까’라고 정비석 선생님께 보였더니 포기하라 합디다. 포기했지요. 당시 그 속뜻을 새겨듣지 못했지요. 작품을 많이 읽지도 않고 쓰기만 했더니 황순원 선생님도 명작을 많이 읽으라고 하더군요.
2000년 <조용한 새벽>이란 시집을 내고 다음해 한국시로 등단하고 한국문화예술협회 서예부 초대작가, 2005년 시사문단에 소설 <아내의 환상> 당선, 2006년 문학세계에 시 <설탕꽃> 당선, 2007년 문장에 수필 <하루살아> 당선, 제2시집 <바람꽃> 출판, 2008년 소설집 <아내의 환상>을 발간했습니다.
남들은 들앉아 유명세 따지며 여생을 한가하게 즐기고 있을 때 나는 부끄럽게도 발바닥에 먼지 날리며 월간문학에 시 <사과>가 소설문학에 소설 <비너스의 시기>가 실렸다고 좋아했지요.
내 용렬한 재주와 무딘 게으름이 고작 여기에 머무는 걸 낸들 어쩌겠어요. 분필가루 마시며 이순에 학생들과 씨름하는데 또래의 또는 훨씬 후배의 사람들도 국회의원, 사장, 장군, 시장으로 신문, 방송을 휘젓지 않았나요. 한여름 폭양에 비지땀 흘리며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 리어카 끌고 골목을 누비며 폐휴지 줍는 사람, 성난 파도와 싸우며 고기 잡는 사람들, 맡은 일에 열심이잖아요. 그렇고 그렇게 살라고 타고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쨌든 자기가 골라잡은 일에 열성 다 쏟아 노력하면 살아갈 것이고 삶을 헛되고 불행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로 나간다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난 명 길게 타고났다 여기고 남은 열정 쏟아 못 다한 일 끝까지 해낼 작정입니다.
후배 여러분들!
떳떳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칠칠치 못한 선배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하겠다는 것도 하나의 교훈이 되겠지요. 용감하고 힘찬 인생으로 잘 살아가기를 바라면서 줄입니다.
임제훈(국문 57) 동문
박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