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적은 민중이다 <10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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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적은 민중이다 <1060호>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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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평가받는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은 초연과 동시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장면은 노라가 자신의 정체성과 행복을 찾기 위해 집을 나가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노라의 선택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에서는 용인될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식에 대한 책임, 남편에 대한 의무를 들어 작품을 비난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조차 입센이 이혼을 조장하고, 가정파괴를 부추긴다며 비판하였다. 노라가 집에 남았다면 모두가 행복했을까?

<유령>은 이러한 비난에 대한 입센의 극작가다운 답이다. 작품은 ‘애정 없는 결혼이 한 여성의 삶을 망쳐놓는 과정과 나아가 가정이 파괴되는 결말을 보여준다. <유령>에서 그는 결혼제도와 가부장제 뿐 아니라, 보수적 종교와 당대의 도덕도 비판하였다. <유령>은 <인형의 집>보다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진보매체라 자처하던 언론마저 입센이 급진적인데다 부도덕하다며 비난하였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그는 동료 문인 소프트 스칸도르프에게 보낸 편지에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스칸디나비아의 비평가들 몇몇은 다른 재능은 없을지 몰라도, 자신들이 판단하려는 책의 저자를 완전히 오해하고 잘못된 해석을 내리는 재능만큼은 틀림없이 갖추고 있더군요.” 조금 더 친분이 있던 출판업자 헤겔에게는 더 격앙된 어조로 비판했다. “작품에 침을 뱉은 멍청한 자들은 언젠가 미래의 문학사가 내리치는 철퇴에 머리를 얻어맞을 것입니다.”

다음 작품 <민중의 적>에서 그는 평론가와 언론, 대중을 작정하고 비판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사건은 온천개발로 모두가 부자 될 꿈에 부풀어 있던 때, 한 박사가 안전상의 문제로 개발계획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면서 시작된다. 시장은 계획 변경 시 발생하게 될 막대한 비용과 추락할 마을 이미지, 그로 인한 관광수입 감소를 핑계로 개발을 강행하려 한다. 이에 박사는 진실을 알리고자 언론에 수질검사 결과를 제보한다. 하지만 진보를 표방하던 언론사는 시장의 편에 서서 진실을 은폐한다. 설상가상, 안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같은 생각일 거라 믿었던 시민마저 개발이익에 눈이 멀어 박사를 민중의 적으로 몰아세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옆에 있던 다수는 옳았습니까?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말을 듣지 않고, 갈릴레이 갈릴레오를 짐승처럼 무릎 꿇게 만들었던 다수가 과연 옳았습니까? 다수가 옳다고 인정받으려면 최소 50년은 걸려야 합니다. 옳다는 증명을 받기 전까지, 다수는 결코 옳지 않습니다.”

주인공 박사의 말이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렸을 뿐, 전작 <인형의 집>과 <유령> 공연 당시 다수에게 공격을 받았던 입센의 진심이 섞인 대사가 아니었을까?

혜화동 1번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민중의 적>은 이러한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공연은 <민중의 적>을 구상하던 입센이 평론가 브란데스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장면 외에도 공연에서는 입센이 네번 더 등장하는데, 몇 문장만 더 인용하겠다.

근 140년 전에 쓰인 글이지만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필자의 졸문을 대신해 편지글로 갈무리한다.

“우리가 깨뜨려야 하는 구습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특권의 오만, 고관의 오만함과 부패, 여성들의 사회적 좌절, 투기꾼들의 무책임, 요란스레 떠벌리는 이상주의 이면의 이기심, 요란한 말의 무의미함과 그 말을 발설하는 자의 공허함,”, “자유와 진보에 대해 말하고 쓰는 저들의 지도자들, 그들은 자신들과 연계된 정치나 정당에 대해서는 반도덕적인 지지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소. (......) 뵤른손은 ‘다수는 언제나 옳다’고 했소. 현직 정치인으로서 그렇게 말해야 되겠지요.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소. '소수는 언
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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