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져도 돼요, 행복해져야 돼요 <10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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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져도 돼요, 행복해져야 돼요 <1057호>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7 0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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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미나우>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존재 자체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존재를 태어나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와 아빠도 태어난다. (…….) 내가 처음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물을 받고 물위에 장난감 고무오리를 띄우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욕조에 띄운 고무오리 인형이 말했다. “안녕. 이제부터 우리는 긴 여정을 시작할 거야.”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낳는다. 그리고 아이는 엄마와 아빠를 낳는다. 연극 <킬미나우>의 주인공 제이크 스터디는 그렇게 말했다. 정확하게는 썼다. 그의 직업은 소설가로, 위의 저 말은 그가 자신의 소설「춤추는 강」에 썼던 표현이다.

제이크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후 홀로 아들 조이를 키우는 홀아비다. 조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식사도 목욕도 용변도 어려운 열일곱 살 선천성 지체장애인이다. 이런 조이를 위해 제이크는 직업인으로서 작가의 삶은 물론, 자연인으로서 개인의 삶도 포기한지 오래다. 그런 오빠의 인생이 안쓰러운 동생 트와일라는 타박한다. “오빠 인생을 먼저 생각해도 나쁘지 않아, 다른 사람들 좀 만나서 보통 중년남자들처럼 여자 꼬시는 얘기도 하고, 맥주도 마셔.” 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게다가 최근에는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이의 성기 때문이다. 조이 스스로 성욕을 해소할 수도, 그렇다고 제이크가 해결해줄 수도 없는 노릇. 조이를 목욕시켜주는 이도, 용변을 볼 때 성기를 잡아주는 이도 제이크이나 막상 자위를 돕는 건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행여 아동성추행범, 혹은 근친상간범으로 몰려 조이를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제이크의 숨통을 트여주는 건 일주일의 한 번 가지는 저녁나절의 외출이다. 트와일라가 조이를 봐주는 동안, 제이크는 여자 친구 로빈과 사랑을 나눈다. 그것이 제이크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이자 위안이다. 여담이지만, 엄밀하게 표현해 둘은 불륜관계이나 공연을 보면서 두 사람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와 연극 <킬미나우>는 이렇듯 성년이 된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의 생활의 고충과 실제적 고민을 보여준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다. 제이크마저 발작을 일으키고 병원신세를 지게 되는데, 발작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약은 제이크의 몸과 정신을 서서히 마비시킨다. 이쯤에서 작품은 또 다른 사회적 의제를 환기시킨다. 존엄사다. ‘나를 죽여줘, 당장’이라는 의미의 제목 ‘킬미나우’는 조이가 아닌 제이크의 말이다. 그러나 자살마저 쉽지 않다. 제이크가 로빈에게 하는 말이다.

“치료방법도 없고, 고통이 줄지도 않아. 난 내 고통, 내 인생을 마음대로 끝낼 이유도 있고, 권리도 있어, 그 어떤 법이든 평결이든 난 신경 쓰지 않아. 지금 아무나 붙잡고 날 좀 끝내달라고 매달리고 싶다고.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말이야, 내가 자살해 버리면 얼마 안 되는 보험금도 날아가 버린다는 거야. 그나마 이 집 건사할 돈이라도 받으려면, 살아있을 수밖에 없어.” 

저것은 현실적 문제다. 그리고 관계의 문제도 남아있다. 장애의 몸으로 험한 세상에 부딪혀야 할 조이를 생각하면 죽음은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러나 그 아들에게 오히려 짐이 될 생각을 하면 오히려 죽음이야말로 이타적인 행동이 된다. 결국 제이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앞서 소개하지 못했지만 이 연극에는 한 명의 인물이 더 등장한다. 조이의 친구 라우디다. 그 역시 지적장애를 알고 있지만, 그는 이 집 식구들을 대신해 온갖 집안일을 다 한다. 그런 그는 자신보다 두 배쯤 나이가 많을 듯한 트와일라에게 호감을 느낀다. 트와일라 역시 라우디의 호감이 싫지는 않은 듯하지만 왠지 주춤하는 눈치다. 그런 트와일라에게 라우디가 말한다. 그 말이 작품 속 등장인물 모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 말은 곧 <킬미나우>의 작가 브래드 프레이저가 모두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누나, 행복해져도 돼요, 행복해져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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