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은 성실한 이들의 태도다<10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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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성실한 이들의 태도다<1055호>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0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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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2인의 성난 사람들>

“우리가 틀릴 수 있습니다. 우린 지금 죄인을 사회 안으로 돌려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린 피고의 유죄를 증명하는 데 있어 의심할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며, 이런 장치가 바로 기능해야만 우리 제도의 진정한 가치가 보호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배심원도 자신이 완전히 확신하기 전에는 유죄를 선언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아버지를 칼로 찔러 살해한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되었다. 검사 측이 제시한 각종 증거들은 소년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소년이 아버지로부터 지속적으로 구타를 당해온 사실, 피해자 사망시간과 관련한 소년의 석연치 않은 행적, 소년의 살인 장면을 보고 들었다는 이웃들의 증언, 무엇보다 사체에 꽂혀있던 소년의 칼까지. 살인동기와 정황증거, 물적 증거, 증인 등 모든 것들이 소년의 유죄를 입증하고 있다. 검사 측은 소년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소년은 변론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배심원들의 평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범행여부와 관련해 배심원들도 검사 측과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렇게 속전속결로 심리를 마치려 할 때, 한 명의 배심원이 조용히 반대표를 던진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런 이유는 없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엄마를 여의고 평생 폭력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아온 그 아이에게 적어도 “한 두 시간 정도 얘기할 시간은 빚 진 게” 아니겠느냐고. 평결을 내리려면 배심원들의 만장일치가 있어야 하는 상황. 찜통 같은 더위에, 선풍기까지 고장 난 비좁은 배심원실에 더 갇혀있어야 하는 상황은 짜증났지만, 결국 다른 배심원들은 1시간 더 심리를 진행하기로 한다.

5월 3일 개막한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바로 그 12명의 배심원들이 소년의 범죄여부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연극이다. 8번 배심원은 다른 배심원들을 상대로 11대 1의 외로운 싸움을 펼친다. 짐작할 수 있듯, 그가 소년의 무죄를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유죄를 확신할 수 없을 뿐이다. 동어반복 같지만, 두 단어 사이에는 먼 거리가 있다. 유죄의 반대말은 무죄가 아니다. 확신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다. 의심이다. 소년에 대한 8번 배심원의 변론이 이어지면서, 차차 그의 논리에 설득된 이들이 늘어난다.

그렇게 자신에게 동조하는 배심원들이 많아질 즘, 8번 배심원이 말한다. 제일 앞에 인용한 문장이다. 요약하면, 자신(들)의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고, 어쩌면 자신(들)의 노력이 살인자를 다시 거리로 나오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그는 다른 사람들의 확신이 초래할 결과와 더불어, 자신의 의심이 초래할 최악의 결말까지도 의심하는 셈이다. 그는 그 결과를 염려하면서도 끝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고수한다.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go Sum), 의심이 곧 그의 존재이유기 때문이다.

사실 저 배심원 누구도, 심지어 8번 배심원조차 사건의 진실을 알지는 못한다. 중요한 것은 8번 배심원을 제외한 이들에게 진실 그 자체는 아무런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스스로를 증명하지도, 누군가를 설득하지도 못한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중세에는 이성적 판단이 결여된 광신도, 맹신자들이었다면, 현대에는 모든 일을 사실에 근거해 판단한다고 스스로를 합리적 인간이라 자처하는 이들이란 사실이다. 그것은 현대의 비극이다.

운이 나쁘다면, 우리가 불충분한 혐의로 기소되어 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들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때 우리가 8번 배심원을 만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몫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는 피고석이 아닌 배심원석에 앉게 될 가능성이 높다. 법정이 아닌 일상에서 우린 종종 배심원을 자처한다. 그때 우리가 8번 배심원이 되어 확신에 이를 때까지 의심하고, 그렇게 찾은 확신까지 의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확신은 성급한 이들의 태만이며, 의심은 성실한 이들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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