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이상을 방송ㆍ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레디 고’를 외치다, 강단에 서서 후학들과 토론하며 산 경험을 전수하는 행복감을 느껴 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그 맛의 진수를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하루 수업 한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다. 수업시간 학생들의 해맑은 눈과 진지한 표정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고, 날카로운 질문에서는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각을 하지 않으려고 숨 가쁘게 강의실에 들어서는 학생에게선 더 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정성스럽게 제출한 과제에선 무한한 책임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한 달 남짓 명지의 초년생으로 하루하루를 새로움과 설레임을 느끼며 즐겁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타 학과 학생과 복도와 캠퍼스 등을 오가면서 마치 남처럼 스쳐 지내야만 하는 것이 안타까워서일까? 엘리베이터 정원초과 소리에 ‘누가 내려야 할까’ 고민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양쪽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휴지통 없는 금연 표시 앞에서 연기를 내뿜는 학생들을 만나게 되는데, 지나가는 나를 외면하는 것이 민망해서일까? 창틀과 바닥에 무수히 버려진 꽁초를 환경미화원은 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치울까?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요즘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다. 소리 내어 하는 인사가 멋쩍다면 서로 가벼운 묵례만이라도 나누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신임교수로서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명진칼럼에 주저 없이 기고한 이유는 꼭 찾고 싶은 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일, 첫 강의에 늦지 않으려고 오전 8시쯤 출근해 주차장에서 본관 쪽 현관으로 향할 때의 일이다. 한 손엔 가방과 또 한 손엔 교재를 잔뜩 들고 현관에 이르러 몸으로 문을 열려고 하던 찰나, 나의 뒤에서 오던 사람이 어느새 나를 앞질러 “제가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란 말과 함께 내가 문을 통과할 때까지 문을 잡아 주었다. 그 사람은 바로 우리 대학 학생이었다. “고마워요”란 말을 남기고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히는 문 사이로 학생을 찾았지만 다른 방향으로 갔는지 그 학생은 보이질 않았다. 이름 묻기가 뭐 했다면 무슨 학과 학생이었는지 알아 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며칠 전 본관 현관을 나설 때 뒤 따라오는 학생들을 위해 문을 잡고 서 있었는데 몸만 살짝 빠져 나가는 학생들을 보노라니 학기 첫 날의 그 학생이 부쩍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나 하지 않았기에 더욱 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들에게 그날 그 학생의 행동이 대수롭지 않는 일이라고 느껴질 만큼,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최소한의 마음들이 자연스레 표현되어 함께 배우고 나누는 그런 대학생활을 보내게 되리란 믿음을 가져 본다.
염현섭(디지털미디어학) 교수
박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