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사실적 서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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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사실적 서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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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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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자(사실적 서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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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만큼 다방면으로 큰 성공을 거둔 할리우드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는 서부극의 대스타이자, 돈 시겔 감독의 <더티 하리> 시리즈물의 액션 배우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다음으로 감독과 제작자로서도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 거장의 위치에 올랐으며, 정치적으로는 캘리포니아 카멜시에서 민선시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성공의 출발점이자 관객의 뇌리에 강하게 박힌 그의 이미지는 판초를 뒤집어쓰고, 시가를 질겅 문 무명의 총잡이였다. 즉,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 만든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 등 소위 마카로니 웨스턴 3부작이 성공하면서, 그는 서부영화의 새로운 영웅으로 부상하였다. 그는 고전적 서부극의 틀을 완전히 타파한 황당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과장된 제스처를 적절히 구사하였다. 서부극은 법과 질서를 수호하지 않고 선악의 구분도 없으며, 오직 복수와 돈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었다.
이와 같이 반反 영웅주의 무법자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큰 성공을 거둔 그가 60세의 나이가 넘어서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영화를 제작한 사실은 영화관계자 뿐만 아니라 그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이 영화를 제작 기획할 당시 서부극의 장르는 이미 한물이 아닌 두물은 족히 지나갔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영화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마카로니 웨스턴이 아니고 기존의 정통 서부극도 아닌, 말 그대로 19세기 후반의 서부 시대를 사실적으로 다룬 것이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역사적 사실 그대로의 서부를 묘사하고 싶었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이를 영화화하기로 계획했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이 영화를 통하여 기존의 구축하였던 자신의 ‘신화’를 스스로 ‘탈 신화’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다시금 서부영화 붐을 주도할 정도였다.
기존의 서부극과는 달리 아주 사실적인 영상과 이념을 담고 있는 <용서받지 못한 자>.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은 한결 같이 카리스마가 깃든 강한 남성상과는 거리가 멀다. 주인공은 하루하루를 생활고에 시달리며 사는 노인이며, 키드는 허풍쟁이에 불과하고, 로건은 죽어가는 사람을 본 충격 때문에 일을 그만둘 정도로 감성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들이야말로 그 당시 실제 서부의 상황이었다.
서부 역사에는 고전적 서부극에서 나오는 결투 장면이 거의 없었으며,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결투 당사자들만이 아닌 입회인하에 시행되었다. 여기서 사용될 총기류는 결투 신청을 받은 사람의 의사로 선택되며, 대체로 각자 총알 한 발씩을 사용한다. 더불어 결투 시에 먼저 총을 쐈는데 상대방이 맞지 않았다고 해서 도망칠 수 없었다. 이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으로 평생 괴로움을 안고 살았다. 더욱이 주로 복수보다는 명예에 손상을 입어서 결투를 했다. 따라서 서부극에 나오는 누가 먼저 총을 먼저 뽑는가는 실제 결투에서는 거의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럼 낭만적인 혹은 허구적인 서부극이 나오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아마도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서부’라는 지역이 갖는 상상 속 자연환경의 기대감일 것이다. 바꿔 말해서, 자신들이 살고 있는 안정되고 질서가 잡힌 동부(상대적인 의미의 동부)의 세계에 비하여, 서부는 농토를 개척하고 원주민들과 전투를 치르고 도시를 건설하면서 자연히 거칠고 자유분방하며 활기가 넘치는 생활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미국인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으며, 1751년 벤자민 프랭클린의 다음과 같은 예언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북 아메리카의 영토는 너무 광대하므로 완전히 정착되기까지 여러 세대가 소요될 것이다…. 여기서는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영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정착될 때까지는 결코 노동력이 저렴해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서부’라는 미개척 지역에 대한 동경은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억눌린 자의 안식처’ 혹은 ‘야심을 가진 자의 낙원’으로 비쳤다.
끝으로 미국인들의 서부 지역에 대한 동경은 1880년대를 전후하여 사라졌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더 이상 개척할 서부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서 미개척지라는 의미의 ‘서부’ 지역도 정착이 되었으며, 무법과 무질서의 조건에서 마음껏 활개를 치던 서부극도 막을 고한 것이다.

연동원 역사학자ㆍ영화평론가    
임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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