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의 이단아’ 카를로스 클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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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의 이단아’ 카를로스 클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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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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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의 이단아’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난 칼럼에서 3주에 걸쳐 음악계의 황제였던 카라얀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번 주에는 카라얀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 ‘음악계의 이단아’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살아있는 전설’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은둔 생활 끝에 2004년, 7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는 명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나치 체제를 증오한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아르헨티나로 이주해 그 곳에서 자랐으며, 이름도 스페인어식인 카를로스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는 자신의 아들이 음악하는 것을 반대했고, 정통적인 음악교육 과정을 밟지 못 하게 했다. 하지만 재능을 숨길 수 없었는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몰래 음악을 하다가 대 지휘자로 성장한 독특한 경우이다. 마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가 자기 아들들이 음악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몰래 음악을 한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를 위시해 그 아들들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작곡가ㆍ지휘자가 되었던 경우와 비슷하다.  
예전에 나는 사실 그렇지 않지만 ‘내가 만약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면’ 황제와 같은 지위를 누렸던 카라얀보다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인의 삶을 살았던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훌륭한 지휘자들은 많았지만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음악팬 마음 속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가 있다. 그는 상임 지휘자로 한 연주단체에 얽매이는 것을 지독히 싫어해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지휘자였고, 아주 가끔 레코딩을 했는데 그가 한 연주 레코딩은 매번 전설적인 위치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는 판을 거의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몇 안 되는 유산들은 음악팬들의 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데뷔 레코딩은 ‘마탄의 사수’라고도 알려져 있는 독일 국민주의 오페라의 시조 격인 작품,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자유 사수>이었다. 야노비츠, 마티스, 슈라이어, 아담 등의 독일계 명 성악가와 같이 연주한 이 판은 아직도 명반의 위치에 있다. 그 이후 녹음한 베토벤 교항곡 5번, 7번, 4번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코딩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아서 더 신비롭게 보인 측면도 있지만 그의 연주는 매번 위대했다. 더 많은 레코딩과 더 많은 실황연주를 할 수도 있었지만 연주와 녹음에 필요 이상의 만전을 기하는 완벽주의자여서 그의 판들은 매우 희귀하다. 음악계의 이단아 카를로스 클라이버, 자유인으로 살았던 그의 정열적인 지휘가 새삼 그리워진다.

강규형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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