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1호(종강호)]장사와 장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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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호(종강호)]장사와 장사치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6.04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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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남북미 외교문제가 뉴스가 되다 보니 트럼프의 협상 방식도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그런데 인터넷 돌아다니다보면 트럼프의 협상력에 대한 인상을 표현할 때 장사치라는 낱말이 자주 눈에 띈다.

내 주변에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 말의 뉘앙스가 여간 텁텁한 게 아니다. 비하의 뜻을 담아 쓰는 걸로 보이는 이 낱말에는 두가지 사고가 담긴다. 첫째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낮춰보는 것이다. 둘째는 이 낱말로 지시하는 이를 그만큼 낮추고자 함이다.
그러나 나는 장사하는 이들을 그만큼 낮춰 불러야 하는가 의문이다. 열심히 일 해 돈 버는 게 그리 문제냐라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딜가나 똑같은 일을 하고도 변변치 못한 능력을 보여주는 이가 있고 두각을 나타내는 이가 있다. 그러니 장사하는 이들 중에도 잘 버는 이가 있고 못 버는 이가 있다. 그럼 장사로 돈 잘 버는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장사로써 돈을 많이 번 사람의 거래능력, 협상능력이 얼마나 남다른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과거 친했던 친구가 갓 스물을 넘겼을 때부터 이것 저것 장사를 했다. 물건 팔고 가격 흥정하는 데에 귀재였는데, 이십대 때부터 옆에서 보고 들은 것만 해도 ‘아 저건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화이트데이 때도 종일 일하던 그 친구에게 놀러온 여자친구와 여자친구의 친구. 친구는 여자친구에게 아무 선물도 못 사 미안했는데 저녁식사 겸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나가는 길에 화이트데이 이벤트용 꽃바구니 파는 노점상 아저씨를 본다. 물어보니 개당 2만 원. 헌데 그 친구는 만원에 팔라고 했다. 뜻밖에도 아저씨가 오케이 한다. 내가 물어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시간은 해질녘이고 다음날은 화이트데이가 아니니 꽃바구니를 그대로 두면 손해다. 1차 협상 승. 그러자 이 친구는 자기가 지금 카페에 갈 건데 거기 가면 커플들이 많을테고 여기서 꽃바구니를 만 원에 판다고 소문 내줄 테니까 오천 원에 팔라고 했다. 아저씨는 어차피 놔두면 손해인 거, 친구의 넉살이 재미나기도 해서 두 개에 만 원에 팔아서 여자친구과 여자친구의 친구에게 줬다고. 처음 판매가의 25%에 물건을 산 것이다. 이 친구는 밥 먹으러 들어간 국밥집에서 밥 먹다말고 일하는 분들에게 컴퓨터 세 대를 판 적도 있다. 이런 종류의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꽤 있다.
그 친구의 부모님들도 장사하시는 분들이셨다. 틈을 안주는 계산능력과 상상력 그리고 0.1원만큼의 이익이라도 내면 그 또한 이익이라는 뚜렷한 관점 등 그 친구가 일찍이 장사에 보여준 철학은 여러모로 감탄스러웠다. 사무실이나 책만 들입다 파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실전 근육이다. 그 친구 아니더라도 시장에서 상인들이 어떻게 물건을 떼어 와서 어떻게 손님들에게 팔아내는가를 어깨너머로 보다 보면, 도시의 진짜 아마추어는 어쩌면 빌딩 안에 있고 프로들은 시장에 있다는 생각도 든다. 거래에서 사정을 두지 않는 그런 거침없는 태도는 실전이 아니라면 얻기 힘들단 생각이다.
물론 장사하는 이들을 장사치로 비하하려는 것에는 그들이 현실에서 벌이는 언행이 수준 낮고 천박하다라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인 걸 안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생존의 육탄전장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언어가 우아하고 유려하더라도 외양만 그렇지 속은 수준 낮고 천박한 이들이 사무직이라 해서 덜 있는 건 아니다. 조금 더 다듬어져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흔히들 그렇게 저어하는 상인들의 언행을 걷어내고 보면 그 안에서 발견되는 날것 그대로의 비린내가 세상의 모든 협상과 계약의 테이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최대확장판인 외교에도 이는 똑같이 유지된다. 무얼로 포장해도 외교관계에서의 첫번째 목적은 항구적 생존이고 이 목표는 절대 야생의 비린내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다만 그걸 보다 이성적으로 다듬어서 고도로 전략화 할 뿐이다.

누군가더러 장사치라며 폄하하고 싶은 감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래야만 당혹감을 해소할 수 있는 감정적 반응일 수 있단 걸 다들 안다. 직선의 정의는 두 점 사이를 잇는 가장 짧은 거리다. 직선을 제대로 잘 그리는 이들로 나는 장사하는 이들을 생각한다. 생존의 장에서 그 사람들 이길 재간 있는 사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늘 한발 빠르고 늘 한 점 더 차지한다. 그걸 폄하하고 있다보면 당하기만 할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 주변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부모 형제 친구 중에, 혹은 그렇게 한 다리만 건너면 넓은 의미로 죄다 장사하는 분들이다. 조선시대처럼 장사를 업으로 삼은 것을폄하하는 낱말을 지금도 쓸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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