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0호]갈림길에서 서성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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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호]갈림길에서 서성일 때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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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참 제 뜻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인간의 몸을 떠올릴 때마다, 특히 네발동물과 비교 할 때마다 그렇다. 척추동물은 대부분 기다랗게 엎드린 몸을 가져서 머리가 맨 앞에 나서 있고, 얼굴의 전면이 앞으로 뾰족하게 튀어 나와 있다. 맨 앞의 뾰족한 머리는 앞서 냄새와 소리와 시선으로 주변을 탐지하고, 네 개의 발로 이리저리 재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달리던 중이라도 위험이 보이면 언제든지 긴 몸통을 이리저리 틀며 급격한 방향전환이 가능하다. 앞발이나 뒷발을 딛는 축으로 해서 중심을 이동시키며 동시에 가로방향 척추를 유연하게 구부리면, 몸의 운동에너지를 원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두 발로 곧추 서며 무게중심이 올라간 인간의 몸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직립 보행 이후 두 손과 열 손가락의 자유를 얻었지만, 인간은 그렇게 얻어낸 복잡해진 사고량의 증가만큼 둔중한 몸도 함께 얻었다. 머리와 몸과 발이 땅으로부터 수직의 동일선상에 놓이면서, 탐지된 위협은 몸체의 모든 부위에든 같은 거리로 온다. 시선의 위치가 높아져 시야가 확보된 것까지는 좋지만 발밑에 다가온 위험을 머리가 탐지하기 어려워졌다. 몸의 일부를 내주는 대신 머리는 보호하게 됐을지라도, 자유롭게 구불거려야 하는 척추는 무거운 상체와 머리를 받치느라 운동이 제한되어 움직임을 무겁게 한다. 행여 달리다가 급격히 방향선회를 하려면 척추의 움직임을 도움 삼아 두 발만으로 뛰느라 네발동물만큼 기민하지 못하다.

순간순간 위험과 도전을 받는 자연에서 한발 앞선 판단과 즉각적인 대응은 꼭 필요한 덕목이다. 굳이 자연에서의 삶을 말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다. 산에서 마주친 처음 보는 버섯을 먹어도 괜찮은지 아닌지 냄새 맡는 것과, 밤길 불량배들 때문에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울지 말지를 머뭇거리는 것은 생존의 결에선 같은 일이다. 어떤 진로를 선택할 지, 어떤 인연을 붙잡거나 떼어내야 할 지, 어느 회사에 가야할 지, 크고 작은 모든 선택에서 번민은 시작된다. 앞발을 포기하는 대신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뇌를 키워온 덕분에.

우리의 고뇌는 미래를 낙관하고 싶어하는 바람의 결과다. 하루 뒤, 일 년 뒤, 십 년 뒤까지 미래를 판단하고자 하면서부터 당장의 고민은 시작된다. 그렇게 곤혹스러운 갈림길에 설 때마다,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을 이겨내는 네발동물의 민첩함과 자구능력이 부럽다. 사람도 그렇게 쉽고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뒤를 잊은 듯 내달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적으로 내린 결정에 앞으로도 내내 행복해 할 수 있을 정도로 미래에 무감하다면 좋겠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괴로움은 선택의 갈등 때문이 아니다. 생애는 선택의 연속인 게 맞고 선택은 갈등의 요체이지만, 오늘의 고민은 미래의 불행을 염려하면서 생겨난다.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태생이 고통을 일으킨다. 코로 땅을 헤치며 먹이를 찾는 게 행복하다는 이유로 하늘을 쳐다볼 수 없는 돼지의 몸이 되어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사람이 제 뜻대로 살 수 없다고 느끼는 건, 결국 욕망과 현실의 사이에서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없는 숙명 때문이다. 나이를 웬만치 먹고 세상살이를 좀 알게 되어도 사람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과 고민은 나이와 관계없이 지속된다. 동물처럼 쉽게 결정하고 쉽게 단념할 수 없다면 인간다운 방법을 찾아내는 수밖에 없다.

척추동물로서 인간이 가진 단점은 그 대신 지성을 얻기 위해 거래한 대가다. 그때 그때 동물처럼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대신 다양한 도구와 기구와 제도로 단점을 대체해 왔다. 미리 준비하고 채비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동물을 혹은 자연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인간으로서 갖게 된 자신의 숙명을 상대로 헤쳐 나갈 수가 없다. 내일이 아닌 과거에 해둔 준비, 곧 과거가 될 오늘 하는 행위들이 앞으로 다가올 선택의 순간을 돕는다. 미리 만들어 둔 준비가 미래를 이끈다. 지나간 시간 동안 살아온 나의 모든 여정이 준비과정이다. 오늘 해야 할 선택의 순간이 고민스럽다면, 과거에 내가 어떻게 해 왔는지를 고민해 보기로 했다. 지금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게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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