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9호]물론 텔레비전도 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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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호]물론 텔레비전도 쉬지 않는다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5.1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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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쉬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채널에서 드라마, 뉴스, 예능이 나오고, 맛집 탐방에 요리에 패션에 영화에 다큐멘터리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정보들이 가득하다. 빈 시간은 우리의 욕망을 총망라하는 광고로 빼곡하다.

인터넷 공간은 그보다 더 하다. 지구 어디서든 잠들지 않은 이들이 24시간 끊임없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들락거린다. 사진, 영상, 문자, 소리가 멈추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오간다. 쉴 틈 없는 정보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 인터넷 세상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역할과 관계로 엮여 거대한 일들을 도모한다. 무한대에 가까운 정보를 생산하는 도시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고밀도 정보의 삶이다. 이러한 도시 생활의 무늬는 지역과 환경을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텔레비전이든 인터넷이든 모두 도시생활에 필요한 - 심지어 한적한 지방의 맛집 정보조차 빡빡한 도시생활의 탈출구로 - 소비된다. 어떤 요구로서의 정보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 도시는 쉬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은 원래 분주하다. 자연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생사를 반복하고 사건을 만든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서로 간섭하면서 다량의 정보를 생산한다. 그러니 세상의 일부만 해석 해오던 인류가 폭발적 인구증가 이후 정보화시대를 맞아 대폭 늘어난 정보량을 맞닥뜨린 게 오늘날 우리의 삶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많은 것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다는 걸 다들 안다. 물론 오랫동안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외교 등은 전문적인 지식을 쌓은 이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취업률과 취업시장의 변화, 제 날짜에 급여가 나올지에 대한 우려,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이 이번 달 생활비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민하려면 각종 전문영역의 복잡한 정보는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복잡하게 얽힌 사회일수록 최종 결정을 남의 손에 미루는 건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자가 아닐수록 한 번의 결정에 유무형의 큰 비용을 실어야 하므로, 많은 이들이 더욱 다중정보 준전문가를 지향하게 된다.

소수의 전문가들이 사회의제를 판단하던 시대에는 전문가들의 판단이 크게 의미 있었다. 특정한 사안에 간섭현상을 일으키는 행위자들의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름 정보를 갖춘 준전문가가 되어 직접 행위자로 참여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모순과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정보화 시대엔 자신처럼 정보를 갖고 영향을 끼치는 다른 행위자가 많아지면서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이익의 격차는 정보화 시대의 더욱 높아진 정보 비대칭의 비율만큼 벌어진다.

대체 어떤 정보가 가치 있고 확실한 것인가. 사람들은 소수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정보를 캐기 위해 혈안이 된다. 입시정보설명회나 비트코인 광풍이 그렇게 인정받는다. 어떤 전공이 미래에 살아남을지, 어떤 업종에 취업해야 전망이 밝을지 끊임없이 탐색하는 건 이제 전국민적 스포츠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도 쉽게 믿을 수 없게 된 세상의 메아리다.

어쩌면 문제는 정보를 찾으려 하는 그 자체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미디어와 인터넷과 도시에서 쉬지 않고 활동하는 타인들에 의해 생산된다. 자신도 타인들에겐 한 명의 정보생산자다. 정보생산자로서 ‘나의 기능’이 가치 있고 훌륭한지 상대비교 할 때 필요한 것이 스펙과 능력이다. 그러나 정보생산 생태계에서 가장 완벽한 정보생산자가 되려면 지구인구 60억분의 1에 해당하는 정점에 올라야 한다. 결국 평범한 개인의 노력은 현재보다 최대 60억 배를 지향한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뢰여부다. 정보생산능력에 대한 최종 판단도 결국엔 그 정보를 신뢰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기준을 따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정보 생산자이기도 하지만, 또한 하나의 고유한 정보라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중요하다. 나의 성정, 태도, 지향점은 타인이 나를 해석할 때 중요한 정보다. 그리고 ‘나라는 정보’가 신뢰할 만 하다고 여겨질 때, 누군가는 나를 찾기 위해 오게 된다.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다. 하루하루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가. 신뢰할 만한 인격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정보로 인정받는 걸 볼 때가 많다. 사람은 노력을 쉬지 않지만 무엇을 노력하느냐가 중요하다. 누군가의 믿음을 얻는 게 허랑한 정보를 찾아 헤매는 것 보다 낫다. 물론 텔레비전도 쉬지 않고 방송을 내보낸다. 하지만 요즘은 거기서 나온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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