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5호]더치커피의 불편한 진실
상태바
[1035호]더치커피의 불편한 진실
  • 황호림 커피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12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었던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경칩(驚蟄)이 지났다. 날씨가 풀리면 카페 메뉴 중에 덩달아 많이 팔리는 음료가 일명 ‘더치커피’다. 더치커피 혹은 ‘콜드브루(Cold brew)’는 분쇄된 커피 원두에 찬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천천히 추출하는 방식을 말한다. 더치커피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선원들이 식민지인 인도네시아에서 수확된 커피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더운 날씨를 극복하고 오래 두고 마실 커피를 만들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정작 네덜란드에서는 더치커피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권 국가에서도 더치커피를 낯설어 하는 것을 볼 때 일본에서 마케팅 용어로 만들어 낸 용어를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사용하면서 고유명사화 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더치커피처럼 찬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쓴맛이 약해지면서 부드러워질 뿐만 아니라 나름 독특한 맛과 향이 있어 여름철에 특히 즐겨 찾게 된다. 과거 인도네시아는 로부스타를 주로 재배했기 때문에 커피가 쓴맛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로부스타 특유의 쓴맛을 줄이고 장시간 커피의 향미를 보존하기 위해 찬물로 커피를 추출하는 방법이 고안된 것이다.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상품화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부터 더치커피 열풍이 일어났다. 더치커피는 상온에서 추출해 냉장보관하기 때문에 다른 액상커피보다 유통기한이 길고, 원액 상태로 판매가 되기 때문에 물, 우유, 시럽, 꿀 등을 섞어 자신의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추출과정에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대량생산의 어려움이 있어 확장성에서 분명한 한계점이 있었다. 최근 들어 다양한 콜드브루 추출법이 개발되면서 단시간에 많은 양을 추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더치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일반 커피 보다 카페인이 적고 부드러워서”로 요약된다. 이 말이 사실일까? 먼저 카페인 함량부터 살펴보자. 얼마 전 시중에 유통되는 더치커피의 상당수가 아메리카노보다 4배 이상 많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찬물로 커피를 추출하면 카페인 성분이 녹아내리지 않기 때문에 더치커피는 카페인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카페인 함량 실험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카페인은 80도 이상의 물에서 급격히 추출된다는 것이 여러 논문이나 실험 결과를 통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그 이하의 물 온도로 추출하면 카페인이 전혀 추출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카페인은 분명 상온의 물에서도 소량 추출이 된다. 따라서 12시간 내외로 천천히 추출하는 더치커피의 경우 추출시간이 길기 때문에 카페인의 함량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카페인 부작용을 덜기 위해 더치커피를 즐겨 마셨던 분들은 오히려 카페인을 더 섭취해 역효과를 본 것이다. 우리나라 식약청에서 정한 1일 카페인 섭취 제한량은 성인은 400mg 이하, 임산부는300mg 이하(권고량은 150mg 이하)다. 어린이는 몸무게 kg당 2.5mg 이하로 제한하는 것이 좋은데, 몸무게가 20kg인 아이의 경우 하루 카페인 섭취량이 50mg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치커피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되는 것은 위생이다. 오랜 시간 상온에 노출된 커피와 물은 자연적으로 미생물이 발생한다. 특히 여름철에는 식중독균을 포함한 여러 가지 형태의 바이러스가 기생하게 되는데, 더치커피 생산 프로세스에서는 이를 살균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추출된 커피를 끓여 버리면 더치커피 본연의 맛과 향을 잃어버리는 데다, 액체 안에 들어있는 세균만 골라 죽일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시중에 더치커피를 제조하는 업체나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면서 위생에 문제가 생기자 정부는 2014년부터 사복 경찰 제도를 통해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더치커피는 일정 위생 설비를 갖춘 제조업 허가 업체만 제조와 유통이 가능하다. 개인 카페에서 더치커피를 추출해 시중에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의미다. 위생설비를 잘 갖춘 업체의 제품도 이 지경인데 개인 카페에서 생산되는 더치커피의 위생을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커피는 열에서 시작해 열로 끝나는 음료다. 굳이 찬물로 커피를 내려 마시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세균덩어리 음료를 마시는 것보다는 커피의 품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에스프레소 기반 메뉴나 핸드드립 커피 등을 권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