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편해" 씁쓸한 신조어 '관태기'
상태바
"혼자가 편해" 씁쓸한 신조어 '관태기'
  • 윤다영
  • 승인 2017.10.30 0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관계에 염증 … 인맥 거지 자처하는 대학생

지난 3월, 동아일보 2020행복원정대 취재팀이 여론조사기관 마크로밀 엠브레인과 20∼ 29세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인간관계와 행복의 관계’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표적 인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인 페이스북 친구(이하 페친)가 100명 이상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약 62%를 차지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몇 명이나 되느냐’ 질문에는 평균 4.99 명이라고 답했다. 속마음을 툭 터놓을 수 있는 진짜 친구는 SNS 친구 수의 1.5%에 불과한 셈이다. 또한, 이 중 과반수가 넘는 55%의 청년들은 인간관계 때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SNS를 통해 순식간에 수백 명과 친구로 연결될 수 있는 세상이다 보 니, 그런 양적 관계의 팽창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관계의 권태기, 청년들은 이를 ‘관태기’라고 부른다. 이에 본지는 대학생들이 겪고 있는 관태기의 특징과 관태기가 등장 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짚어보고자 한다.

 

‘관태기’ 앓는 20대
관태기는 ‘관계+권태기’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회의적인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다. 이런 관태기에 빠진 사람을 ‘관태족’이라고 칭하는데,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 관계에 권태를 느끼는 20대의 모습을 비유한 말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발적 아웃사이더’, ‘나 홀로족’ 등으로 이어진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은진 학생은 본인을 스스로 관태족이라고 칭하며,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고 신경 쓰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학업 스트레스만 해도 충분히 힘든데 타인으로 인해 부가되는 스트레스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를 사귀는 것보다는 편하게 혼자 생활하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이른바 ‘관태기’를 앓고 있 는 20대가 점점 늘고 있다. 지난 4월, ‘알바몬’이 대학생 1,417명 을 대상으로 ‘관태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대학생 38.5% 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인 신조어 ‘관태기’를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설문에 참여한 대학생 중 42%는 현재 관태기를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실제 우리대학 학우들도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대학 인문캠 학생상담센터 이아영 연구원은 “대인관계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이 굉장 히 많다.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겪는 스트레스나 회의감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전했다.
관태족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새로운 인간관계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주로 혼자 스트레스를 푼다 △가급적 사람이 많은 모임은 피한다 등의 특징을 보인다. 한 마디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들은 남들과 함께하는 것 보다는 혼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라 생각한다.

 

관태기의 등장배경은 …


청년층이 새로운 인간관계에 회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삶에 여유가 없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취업준비나 과제 등에 지쳐 인맥을 관리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알바몬’이 대학생 2,245명을 대상으로 아르바이트 기간 등에 대해 조사한 결과 ‘방학이나 학기 중 관계없이 항상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51.4%에 달했다. 20대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남들보다 더 높은 학점, 더 좋은 스펙을 쌓으려고 고군분투하면서 동시에 값비싼 등록금을 내기 위해서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노력한다하더라도 안정적인 일 자리를 갖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20대들의 삶에는 여유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에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을 아깝게 생각하고 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이재흔 연구원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좁아지는 취업문, 이 안에 들기 위해서 오늘날의 20대는 매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학점도 챙겨야 하고, 학점 이외에도 취업 시장에서 조금 더 유리할 수 있는 스펙을 쌓거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팍팍한 현실 속, 신경써야할 것이 많은 20대 에게 ‘인간관계’에 들여야 하는 돈과 시간은 또 하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며 “20대는 ‘인맥이 힘’이라며 무조건적으로 인맥을 쌓고 공을 들이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인간관계만 유지하여 ‘인맥다이어트’를 하는 등 관태기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SNS의 활성화는 이러한 관태기를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 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SNS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관계에 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다지 친하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의 ‘단톡방’은 의미 없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모바일을 이용한 SNS 친구는 많지만, 정작 일상에 서 마음을 나눌 친구는 적거나 없는 게 관태족들의 현주소이다.
이재흔 연구원은 “이러한 관태기의 확산엔 20대의 가치관 변화도 한 몫 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엔 개인보다 단체의 이익이 중시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단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받기를 바라며, 개인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고 있다”며 “20대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단체에 소속되거나 인맥을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되려 혼술(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 혼행(혼자서 여행하는 것) 등 혼자서 온전히 자신을 위하는 시간을 보내는 문화가 각광받고 있다”고 전했다.

 

관태족, 일회성 인맥에 끌리는 이유는
과도한 인맥관리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로움을 달래줄 일회성 인맥, 이른바 ‘티슈 인맥’을 선호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티슈 인맥이란 ‘티슈(tissue)’와 ‘인맥’의 합성어로,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내가 필요할 때만 만나고 소통하는 ‘일회성’ 인간 관계를 말하는 신조어다. “혼자가 편하다”며 주변인들을 과감하게 쳐내 ‘인맥 거지’를 자처하는가 하면, 외로움을 달래줄 일회성 인맥을 찾는 이들을 말한다. ‘관태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 정도까지 관계를 유지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됐다.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깊은 인간관계를 꺼리는 젊은 층의 성향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재흔 연구원은 “20대들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인간관계에 권태로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관계를 거부하고 혼자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20대는 관계나 소속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인한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부담감을 느낀다”며 “따라서 20대가 목적 지향적 모임이나 티슈 인맥을 선호하는 것은 이런 부담감을 최소화 하면서도 자신의 만족과 소속감을 얻기 위한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처럼 인간관계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도 외로움은 해소하려는 현대인의 양면적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보다는 질적 관계에 초점, 다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뇌와 마음에 휴식을 주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마음의 창이 점점 굳게 닫히고 사회성이나 협력성이 떨어질 수 있으며, 아예 대인관계 자체에 공포감과 불안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을 쓰고 있 다.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20대들은 관계에 회의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혼자 두려고 한다. 본인을 혼자 두어야만 여유를 찾을 수 있는 20대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하고 이 사회를 이끄는 주축이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서툴고, 혼자서 하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문화로 인해 공동체 내 갈등과 사회문제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관태기를 겪는 청년들은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양보다 질적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이아영 연구원은 “SNS의 친구들은 분명히 친구인 건 맞지만 깊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서적인 지지자는 아니다. 결국 자신의 지지자원이 부족함을 깨닫게 되어 혼자 실망하고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고 전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SNS는 일회성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과 양적 관계의 팽창에 피로감을 가중시킬 수 있어 지양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근본적인 원인은 관태족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재흔 연구원은 “관태기는 개인의 문제 가 아닌 여유가 사라진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로 나타난 사회 현상 중 하나다”라고 밝혔다. 이렇듯 청춘들의 인간관이 달라진 데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청년세대가 눈앞에 직면한 학업과 취업문제로 타인의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팍팍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20대에 게 관태기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헬조선' 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실과 앞날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한 ‘관태기’를 앓는 20대 청춘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소통의 창을 닫아버리고 살아가는 청년 관태족들, 오늘날 이런 모습이 과연 건강한 우리 사회의 모습인지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