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난중일기」 , 김훈의「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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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난중일기」 , 김훈의「칼의 노래」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7.10.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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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 장군(이하 이순신)의「난중일기」 는 불멸의 고전이긴 하나 전쟁의 과정을 일기형식 으로 축약해 나열한 것이라 뚜렷한 독서 목표 없이 는 정독, 완독이 매우 어렵다. 물론 정유재란을 맞아 진도 울돌목에서 벌였던 명량대첩을 기록한 1597 년 9월 16일의 일기처럼 박진감 넘치는 대목들도 없 는 것은 아니다.
28세에 응시했던 첫 무과 때 말에서 떨어져 실격 한 이순신은 32세에 급제, 1591년(47세) 전라좌수 영 수사가 됐다. 왜의 침략을 예감했던 그는 거북선 과 판옥선, 화포, 진지 구축 등에 남다른 의지를 보 였다. 1592년 4월 13일, 조총으로 무장한 약 30만 왜 군이 부산에 상륙했고 경상도 수군은 궤멸했다. 출 격 명령을 받은 이순신은 이억기 전라우수사 함대 를 기다리다 못해 5월 4일 단독으로 경상도 해안으 로 출전한다. 함선과 수군의 숫자에서 이순신 함대 는 왜군과 비교할 수 없는 열세였다.
육군의 연전연패로 한양까지 일거에 점령당한 직 후인 5월 7일부터 9일까지 옥포, 합포, 적진포에서 왜의 수군을 연파하면서 처음으로 승전보다운 승 전보가 울렸다. 연이은 학익진의 한산대첩은 교과 서의 단골 메뉴. 이순신이 두려운 왜군은 해안 곳곳 에 성을 쌓고 틀어박혀 수비로 일관했다. 서해안을 거쳐 한양까지 가려던 왜의 수군 전략은 거제도를 넘지 못한 채 틀어졌다. 이듬해 이순신은 삼도수군 통제사로서 조선 수군 전체를 지휘한다.
강화협상으로 일시 철수했던 왜군은 정유년 (1597년 1월) 다시 부산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적 장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간계를 부려 재침 사실을 조선에 흘린다. 이순신을 멀리 부산으로 유 인해 격파하거나 선조 임금의 미움을 사게 하려는 이중 전략이었다. 이를 간파한 이순신은 선조의 출 격 명령을 거부했다. 임금보다 나라를 보았던, 자신 의 목숨을 건 불복종이었다.
한양으로 압송돼 선조의 국문을 받은 후 ‘백의종 군’을 명 받고 4월 1일 옥문을 나왔다. 6월 6일 경상 도 합천의 도원수 권율 장군진에서 백의종군을 시 작했다. 이순신 탄핵 후 그의 표현에 따르면 ‘매우 흉악한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됨으로써 꿈을 이뤘다. 그러나 7월 16일 무리한 출전으로 칠천량에 서 조선 수군이 궤멸 당하면서 자신의 목숨도 잃었 다. 경상우수사 배설이 재빨리 후퇴해 건진 12척 함 선이 겨우 남았다.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 신이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 신 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순신은 죽지 않았 습니다!”를 외쳤던 기반이었다.
열두 척의 배로 남해안, 서해안을 전전하다 ‘명 량’에서 맞은 13척 대 133척의 필사 항전, 수군 복구 를 위해 ‘추운 배 밑창에서 쪼그리고 앉아 떨며 밤 을 지새우고, 피로와 스트레스로 코피를 한 되나 쏟 는 이순신’ 앞에서 독자는 드디어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 이 노량에서 죽음을 맞기 하루 전날인 1598년 11월 16일 끝을 맺는다.
말했듯이「난중일기」는 목표의식이 없으면 정 독이 어렵다. 그럴 경우 김훈의 소설「칼의 노래」일 독을 권한다. 김훈은 한양으로 압송되는 이순신부
터 명량과 노량까지의 이순신을 다뤘다. 별첨으로 이순신의 출생부터 중요 연보, 난중일기 주요 대목 과 인물까지 정리했다. 이순신에 관한 많은 지식을 ‘흥미 있게’ 읽으며 체득하기 안성맞춤이다. 물론, 두 권을 다 읽는다면 ‘이순신 박사’가 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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