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라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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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라는 기억
  • 김혜진(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
  • 승인 2017.10.1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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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닐곱 살 때였다. 그 당시 나는 구름을 참 좋 아했다. 몇 시간이고 평상에 누워 구름이 흘러 가는 것만 보았었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에 들 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 는 구름을 보면서 동화책에서 봤던 공주를 연상 하기도 했고, 공주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왕자 를 떠올리기도 했다. 생전 눈으로 본 적도 없는 동물들과 만나본 적 없던 사람들이 하늘을 떠다 녔다. 나는 내가 본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고 나름의 사연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대부분 비슷한 사연에 비슷한 이름들이었지만 햇빛에 눈이 부신 가운데서도 나는 하늘을 계속해서 올 려다보며 그것들과 교감했더랬다.
그 당시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돈을 많이 벌어 동화 속에 나오는 커다란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손에 쥐는 것이었다. 왠지 구름은 말랑말랑 해서 내 손 안에 그러쥘 수 있 을 것만 같았다. 기구에 올라 바람을 타고 점점 높은 곳으로 오르는 기분은 어떨까. 손 안에 구 름을  꽉  쥐었다 풀면 구름은 어떤 모양으로 바뀌 어 있을까. 그런 생각만으로도 발끝이 들리고 눈 이 가늘게 떠졌다. 더 멋지고 대단한 상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짜릿한 설렘을 느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 꿈이 깨진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자 연’ 시간이었고 선생님은 물질의 순환 과정에 대 해 설명하고 계셨다. 지금도 칠판 가득 그려진 하늘, 구름, 산, 강, 바다 위를 오가던 분필 가루 잔뜩 묻은 선생님의 손이 선명하게 기억  난다. 선 생님은 증발된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 이 되고 그것이 온도가 변하면 물의 형태로 다 시 떨어진다고 설명하시면서 바다에서 산으로, 더 위로, 하늘로 손을 움직이셨다. 그날은 이상 하리만치 우리 반 전체가 조용했기 때문에 ‘수증 기 덩어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 입에서 터진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은 반 전체의 이목을 끌기 에 충분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왜 그렇게 소리 를 질렀는지 묻지 않았고, 구름을 만지겠다고 단 단하게 먹었던 나의 원대한 꿈이 산산조각이 나 는 소리는 딸꾹질 소리 정도로 묻히고 말았다. 
아무도 내가 어떤 상실을 맛봤는지 알지 못했 지만 나는 꽤 긴 시간을 방황했다. 속성을 알고 난 다음 바라본 구름은 더 이상 근사한 표정의 동물도, 왕자도, 공주도 아니었다. 어린 내 눈에 보기엔 그냥 하얀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었다.
고무줄을 해도 쉽게 줄을 건드려 ‘뻔할 뻔 자’ 라는 나름 ‘유니크’한 별명을 가지고 있던 나였 지만 나는 고무줄을 다시 타기도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공터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츰 구름을 잊어갔고, 자연현상으 로서의 구름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억 때문인지 나는 여전히 구름 을 좋아하고 구름을 보며 수많은 이미지를 떠올 린다. 언젠가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를 읽 다가 산시로와 미네코가 구름을 두고 대화를 나 누는 장면을 보았는데, 괜히 그 장면에서 울컥 눈물이 났다. 동시에 무지한 산시로에 대한 깊은 분노도 치밀었다. 구름을 보자는데 대기현상을 말하면 어쩌란 말인가.
발바닥에 땀이 차도록 하루 종일 뛰어도 이상 할 게 없을 어린 나이에 평상에 누어 하늘이나 보고 있었던 한동안의 시간들은 내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바람을 타고 시시각각 변하며 이야기 가 되었던 구름들은 수많은 은유와 이야기를 낳았고 내가 글을 쓸 수 있도록, 아니 글을 쓰는 일 을 포기하지 않도록 마음 깊은 곳에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기억으로 나는 여전히 글을 쓰 는 사람인 것이고, 앞으로도 오래 글을 쓰고 싶 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원심력이 ‘쎈’ 기억 들이 존재한다. 힘들고 지칠 때, 무너질 것만 같 을 때, 당신들 마음 한 가운데, 전자 팽이처럼 여 전히 돌고 있는 원심력 쎈 기억들을 떠올려 보았 으면 한다. 그 기억들을 떠올려 오늘을 더 생기 있게, 발끝을 들고 걷는 당신들이 되었으면 한 다. 당신들의 상상도 곧 기억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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