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노벨상, 최고 괴짜 연구에 수여되는 엽기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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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 최고 괴짜 연구에 수여되는 엽기 노벨상
  •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7.09.2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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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조각상들의 음낭은 어느 쪽이 더 클까. 한밤에 청어가 방귀를 뀌는 까닭은 무엇일까. 화장실 유머가 아니다. 노벨상 시즌에 맞춰 재미있으면서도 기발한 발상이나 이색 업적에 주는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연구 주제들이다. 이그노벨상은 모두 10개 분야로 올해로 27회째. 수상 분야는 매년 바뀌는데 물리학, 화학, 의학, 생물학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되고 문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같은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에도 상을 준다. 10개 분야에서 10건의 연구가 선정되는 것이 원칙이나 특별한 경우 한 분야에서 복수 시상도 한다. 심사와 시상은 실제 노벨상 수 상자들이 맡는다.
이그노벨(Ig Nobel)상은 미국 하버드대학의 유머 과학잡지인 'AIR(Annals of Improbable Research: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의 발행인 마크 에이브러햄이 과학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1991년 제정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보내오는 연구 논문들을 살펴보다가 너무나 ‘엉뚱하고 기묘한’ 연구 결과들에 매료돼 이 상을 제정했다고 한다. ‘이그(Ig)’는 다이너마이트처럼 터지는 ‘소다 팝(병 탄산음료)’을 발명한 가공인물 이그나시우스 노벨(Ignacius Nobel)에서 이름을 땄다. 진짜 노벨상이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알프레드 노벨의 기부금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빗댄 것 이다. 이그노벨은 ‘고상한’을 뜻하는 영어 단어 ‘노블(Noble)’의 반대말로 ‘품위없는’을 뜻하는 ‘이그 노블(Ignoble)’과 상통한다.
이그노벨상은 한 해 동안 지구촌 사람들을 즐겁게 한 최고의 괴짜 연구에 돌아간다. 처음엔 사람들을 웃게 만들지만 그 다음에는 곰곰이 생각하게 만드는 업적에 주는 ‘엽기 노벨상’이다. 진짜 노벨 상 발표에 앞서 하버드대학 샌더스 강당에서 수여 된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는 1000만 크로나(약 14억 123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지만, 이그노벨상은 상금이 한 푼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상자들이 자기 돈으로 비행기 삯을 내고 시상식에 참가할 정도로 권위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재기발랄한 괴짜 과학자들에게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9월 14일(현지시간) 열린 시상식에서 눈길을 끈 수상작은 유체역학상. 이 상은 컵을 들고 걸을 때 커피가 쏟아지는 원인(출렁거림)을 규명한 미국 버지니아주립대학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우리나라의 한지원 씨가 받았다. 그는 실 험을 통해 커피가 반 정도 담긴 와인잔에 4Hz의 진동이 발생하면 표면에 잔잔한 물결이 생기지만, 원통형 머그잔의 경우엔 액체가 밖으로 튀고 결국 쏟 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즉 컵의 모양에 따라 유체의 운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또 컵 윗부분을 손으로 쥐고 걸으면 공명 진동수가 낮아져 컵 속 커피가 덜 튄다고 설명했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유익한 연구다. 다음엔 진짜 노벨상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
생물학상도 재밌다. 생물학상은 브라질 동굴 속에 서식하는 벌레의 생식기를 연구한 일본 홋카이도대학 연구팀에게 돌아갔다. 연구팀은 특이하게도 이 벌레는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가 바뀐 형태라고 밝혔다. 암컷은 수컷, 수컷은 암컷 모양의 생식기를 갖고 있어서 교미할 때 암컷이 자신의 생식기를 수 컷에 삽입한다는 것.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을 돕는 이색적인 연구다.
가장 ‘실용적’인 연구는 평화상 부문이다. 올해의 평화상 수상자는 ‘원주민의 전통 악기가 코골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스웨덴 취리히 대학의 연구팀. 이들은 9,000개 후보를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연구팀은 호주 원주민의 전통 목관악기인 디제리두(didgeridoo)를 불면 혀 근육의 뭉침 현상이 개선되면서 수면무호흡증과 코골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밝혀, 코골이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연구팀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코 골지 않고 깊은 잠자기’ 훈련을 시작한 지 불과 수 주 만에 실험참가자 80% 이상이 코를 골지 않는 수면 상태가 뚜렷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 해부학상에는 ‘나이가 들면 귀가 길어지는 이유’를 밝힌 영국의 지역보건의 제임스 히스콧 에게, 물리학상은 고양이가 액체인지 고체인지를 연구한 프랑스의 파르댕 연구원에게 돌아갔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결과들은 대부분 실제 학술지와 저널에 실린 연구다.
이그노벨상 연구는 언뜻 사소하거나 무용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거기에 '쓸모의 가치' 가 숨어 있다.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으나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엽기적 쓸모에 나도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 또한 의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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