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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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진실
  • 김지연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7.05.2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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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쉽게 넘어가면 천만다행이 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 육체와 정신에 상처와 흉터를 안고 살게 된다. 불구가 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사고는 사고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때 받은 충격과 공포는 여전히 남아 고통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은 그 상처를 극복하기도 하고, 껴안고 참기도 하고 때로는 굴복하기도 한다. 어떤 방식이든 삶은 계속된다. 바로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것이다.

3년 전 세월호가 침몰했다. 침몰의 과정을 온 국민은 생중계로 지켜봤다. 그것은 피해자에게도 그것을 바라보던 국민들에게도 너무나 가혹한 일 이었다. 모두에게 그해 4월은 잔인한 달이었다. 사고가 나던 그때, 나는 모교에서 화법교육론 강의를 하고 있었다. 수학여행에 갔던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삽시간에 우리 교실을 덮쳐왔다. 교사가 되길 희망하던 예비교사들에게 학교 행사 중에 벌어진 사고는 매우 각별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엄청난 숫자의 실종자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낯익은 이름이 하나 들어있었다. 우리들의 선후배였던 한 담임 교사의 이름이었다. 실종자의 이름은 하루하루 지날수록 사망자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그 안에서 생존자로 바뀐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이미 그 학기 수업은 엉망이 되고 있었다. 그렇 게 처참한 뉴스가 이어진 지 한 달째 되던 날, 한 친구가 강의실 앞으로 나오더니 학생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심란함에 한숨도 자지 못 하고 왔다는 녀석은, 실종자 명단에 있던 동기의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하고 함께 추모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는 잠시 울먹였고, 교실 안은 가누기 힘든 무거운 슬픔으로 가득 찼다. 나라의 큰 사고가 가까운 우리의 이야기로 실감이 나던 순간이었다. 실종자 명단 앞에 놓였던 실낱같은 희망이 어두운 현실이 되던 순간이었다. 이튿날, 학생들은 장례식장 일을 돕기 위해 수업에 나오지 못했다. 우리들은 그 시절을 다시 기억하기 싫은 암울하고 슬픈 한때로 아로새겼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애도하고 슬퍼하며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하지만 그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지 못했다. 이해하기 힘든 괴로운 상황은 그 뒤로 더 세차게 이어졌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모습처럼.

3년이 지나서야 배가 뭍에 떠올랐다. 1,000일 의 세월이 훌쩍 넘어서야 세월호가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새삼스레 매일의 뉴스 속에는 미수습자의 유류품과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타진되어 온다. 그때마다 나는 그날의 울먹이던 학생들과 당시 참담했던 교실의 공기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함께 사고를 당했고, 오랜 기간 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상처 를 나름의 방식으로 껴안고 삶을 살아왔다. 각자 의 슬픔은 각자의 모양대로 가슴에 박혀 오랜 시간을 버텼다. 아마도 그 슬픔이 촛불이 되어 사람 들의 물결을 모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때 그 사고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깊이 자문해 왔다. 지금의 정국은 우리가 만든 그때의 답일 테다.

새 지도자를 세웠고 새 시대가 시작되었다. 꽃 다운 아이들이 왜 그렇게 무력하게 삶을 잃어야 했는지, 그때 국가가 해야 했을 일은 무엇인지. 유가족과 국민들의 질문은 그리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그 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왔다. 미수습자의 소중한 흔적과 함께 부디 세월호 의 진실도 빛을 보게 되길 간 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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