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도시, 색을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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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도시, 색을 입다
  • 권민서 기자
  • 승인 2017.05.18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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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충한 시멘트가 아닌 밝고 알록달록한 색채가 가득한 벽, 민화가 그려진 전신주, 외관도색 작업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갖게 된 폐공장. 단지 색을 입었을 뿐이지만, 이 작은 변화는 그보다 큰 효과를 불러왔다. 삭막한 도시가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갖게 됐고, 버려졌던 마을이 사람들로 붐비게 됐다. 범죄율 또한 감소했다.
건물만 가득하던 빌딩숲에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하고 도시 전체가 캔버스가 되어 아티스트들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하기도 하는 아트페인팅. 회색빛 가득한 도시에서 단시간에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극적인 효과를 준다. 최근 많은 지역에서 진행 중인 도시문화예술 사업의 일등공신이기도 한 아트페인팅에 대해 알아봤다.

 

도시를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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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 인문캠 앞의 민화가 그려진 전신주       ▲예술마을로 거듭난 깡깡이 마을
                                                                          (출처/ 깡깡이예술마을 홈페이지)

삭막한 마을에 활기를


아트페인팅을 통한 도시문화예술 사업은 전국적으로 곳곳에서 진행 중에 있다. 우리대학 인문캠 앞의 민화가 그려진 전신주도 이에 해당된다. 지난해 진행된 ‘민화 품은 전신주 거리’는 지역 주민과 우리대학 학우들, 노용식 민화작가의 참여로 이뤄졌다. 전봇대 29개와 담장 2곳에 민화가 그려졌으며, 특색 있는 거리 조성을 통해 지역 상권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근대조선산업의 발상지인 부산 영도구의 ‘깡깡이 마을’. 활발하게 산업이 부흥하며 부황을 누린 과거와 달리 조선업이 쇠퇴하며 도시는 점차 슬럼화 되었고, 결국 잿빛 공장과 폐업한 상점들이 즐비하게 됐다. 인구 또한 절반이 줄어들며 활기를 찾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2015년에 깡깡이 마을은 부산시의 문화예술상상마을로 선정되며 180도 변했다. 칙칙한 회색 공장이 다채로운 빛깔의 그림들로 가득 채워졌고, 이에 따라 마을의 분위기도 화사해진 것이다. 길거리를 거닐며 예술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찾는 재미도 쏠쏠해 폐공장만 가득하던 인적 드문 깡깡이 마을은 이제 부산 영도하면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관광지가 됐다. 깡깡이예술마을의 송교성 사무국장은 “이런 아트페인팅 등의 문화예술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의 장점은 소통이다. 일반적 도시개발은 예산도 많이 투여되고 사업도 크게 벌이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사업을 통한 도시재생의 경우는 다르다”며 “도시재생 사업으로 건물 외벽에 페인트를 칠할 때는 건물주나 거주민 등을 만나서 사업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동의를 구하는 작업을 한다. 또, 외벽 작업을 하고 있으면 주민들이 작업하시는 분에게 어떤 일 하는 건지 궁금한 걸 물어본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소통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깡깡이 마을의 발전을 위해 문화예술 사업이 채택된 이유도 이것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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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 광장동 현대아파트3단지 담장 벽화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으로 조성된 
   (출처/아시아 경제)                                          게스트하우스의 벽화 (출처/ 업코리아)

 

청년들의 일자리

아트페인팅을 통한 예술 사업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서울시는 공공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문화예술적인 방면에서 도시의 미관을 살릴 뿐만 아니라 일자리까지 제공한다. 특히 광진구는 ‘2017 벽화그리기 사업’을 실시하며 도시의 경관도 살리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주민들의 이용률이 높은 장소와 유동인구가 많은 곳, 주변 환경이 노후 되고 도시미관을 저해하는 곳을 선정해 벽화를 그리도록 하며, 올해 상반기 사업은 오는 6월까지 세종대학교 회화과 졸업생으로 구성된 참여자들이 진행한다. 또한, 서울시는 ‘뉴딜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청년예술가와 소상공인을 1대 1로 매칭해 회화, 전시디자인 등 시각예술 분야를 통해 점포의 전반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아트마케팅 사업이다. 작년에 처음 시행된 이 사업은 사진관,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 다양한 상점들과 청년예술가의 협력을 통해 가게만의 개성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소상공인은 적은 비용으로 상점을 꾸미고, 사회 활동에 참여할 기회가 적던 청년예술가들은 일을 맡으며 직업 역량을 쌓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기대되는 사업이다. 실제로 작년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에 참여한 청년예술가 19명 중 5명은 서로의 전공을 살린 공동작업실 겸 카페를 창업해 운영 중이다. 서울시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50%가 ‘다양한 작업 시도 및 실무 경험’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으며, 가장 만족스러운 점으로는 32%의 사람들이 ‘참여 예술가 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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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리동 소금길의 거리 모습 (출처/ 트래블바이크뉴스)

 

범죄율 감소

단지 벽화를 그린 것만으로도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 바로 범죄예방 환경 설계 기법인 셉테드(CPTED :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를 통해서다. 셉테드는 어두운 골목길에 벽화를 그려 분위기 반전을 꾀하거나 가로등이나 CCTV를 설치해 주민의 불안감을 줄이는 등, 도시환경을 바꿔 범죄를 방지하고 범죄에 대해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선진국형 범죄 예방 기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포구 염리동의 소금길이 대표적인 셉테드 마을로 꼽힌다. 소금길은 재개발이 지속적으로 미뤄지며 슬럼화되어, 낡은 담벼락과 어두운 조명으로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도는 우범지역이었다. 그러나 2012년 염리동 범죄 예방 프로젝트로 마을에 벽화가 칠해지고 CCTV 등도 설치되며 피하고 싶은 우범지가 아닌 걷고 싶은 산책로로 변화했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점차 늘더니 벽화와 함께 사진을 찍는 관광객도 생겨 마을에 활기가 가득해졌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셉테드 시행 1년 후 염리동의 5대 범죄 발생률은 전년 대비 7.48% 감소했으며, 소금길에서는 강간 범죄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거주민의 심리적 안정감에도 효과가 있었다. 서울시가 2013년에 염리동 소금길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사업 시행 5개월 후에 주민의 범죄 두려움이 13.6% 감소했고 범죄 예방 효과는 78.6%, 주민의 만족도는 83.3%가 증가했다. 한국셉테드학회에서 이사직을 맡고 있는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강석진 교수는 벽화가 범죄예방에 주는 효과에 대해서 “벽화나 벽면도색은 지저분한 환경을 밝게 개선해서 범죄자에게 ‘이 지역은 주민이 동네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구나, 내가 범죄를 저지르면 발각될 수 있겠구나’ 하는 인식을 준다. 이를 통해 범죄 심리가 위축되고, 주민에게는 스스로 환경을 정비하며 동네에 대한 관심이나 애착심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 된다”고 전했다.

 

거리에 피어난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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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깁슨의 작품 ‘CYCLEGLYPHICS            ▲그래피티 예술가 심찬양의 작품
(출처/ roadsworth)

 

우리나라의 아트페인팅은 지자체 주도로 도시개발계획에 의거해 시행되는 사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도시가 아티스트의 예술 무대로 온전히 작용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아트페인팅을 통한 부수적인 효과를 기대하려는 목적보다는, 작품 그 자체로 도시를 빛내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게 된다.
캐나다의 길거리 예술가 피터 깁슨은 자동차 도로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편적인 ‘자동차 문화’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서 길거리 예술을 시작한 그는, 2001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첫 작업을 시작했다. 평범한 길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특색 있는 거리로 변한다. 도로위에 피어난 커다란 꽃들, 횡단보도를 헤엄치는 물고기, 거대한 당구장처럼 보이는 도로 등등 길
거리 위에 온갖 상상력이 넘친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그래피티 라이터 심찬양 씨는 흑인 여성에게 한국적인 미를 가미한 그림을 그리며 큰 호평을 받았다. 힙합 문화가 발전한 미술 형태인 동시에 스트리트 아트의 한 분야이기도 한 그래피티는, 우리나라에서는 장소도 마땅치 않고 사회적 인식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비주류에 속하는 예술 분야다. 그러나 심찬양 씨의 그림이 한국에도 알려지며 그래피티의 ‘예술성’이 조명을 받고 있다. 그래피티가 얼마나 아름다운 문화인지 알리고 한국에서 그래피티의 문화 저변을 넓히는 것이 그의 목표다.
 

벽화동아리 '담빛'을 만나다

우리대학에도 벽화를 그리는 이들이 있다. 인문캠 벽화동아리 ‘담빛’이다. 담벼락의 빛, 그림을 그리며 빛을 낸다는 뜻의 ‘담빛’은 현재까지도 다양한 장소를 오가며 벽화를 그려 빛을 내고 있다. 벽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는 동아리 담빛을 만났다.

 

Q. ‘담빛’은 어떤 동아리인가요?
A. 안녕하세요, 희망을 그리는 벽화동아리 담빛입니다. 저희는 벽화 봉사 동아리로, 다양한 곳에서 벽화를 그려요. 병원, 교도소, 군대, 초등학교는 물론 KOICA 해외 벽화 봉사활동을 가기도 했고, 서울대공원 대동물관에서 벽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인문캠에서 활동하는 지라 전문적으로 미술을 배운 사람들은 많이 없지만, 마음만큼은 전공자와 다를 바 없다고 자부해요.

Q. ‘담빛’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A. 벽화라는 게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고, 기분을 좋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해요. 그림을 잘 그리고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닐지라도 저희가 그린 벽화를 통해 사람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으면 하는 마음에서 동아리가 만들어졌어요. 벽화 그리는 활동 자체가 굉장히 재밌기도 해요.

Q. 벽화를 그리는 과정이 궁금해요.
A. 별로 복잡하지 않아요. 미술을 전공하신 분들이 그림의 도안을 그려주는데 이렇게 연필로 그려진 도안을 따라 페인트칠을 해요. 그 외에 부수적인 작업이 있다면 작업 중에 페인트가 여기저기로 튀지 않게 시트지로 포장하는 일 정도가 있겠네요.

Q. 벽화를 그리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아무래도 작업이 끝나고 완성품을 봤을 때 가장 뿌듯해요. 그래서 벽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싶지만, 본 적이 없어서 아쉽기도 해요. 대신에 그림을 보며 즐거워 할 사람들을 상상하는데, 초등학교에서 작업했을 땐 ‘아이들이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완성된 벽화, 그리고 기뻐할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요소가 있는 것 같아요.

Q.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그릴 때는 힘든 걸 모르는데 활동이 끝나고 나면 힘이 다 빠져서 집에 가요. 벽화의 특성상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내야해서 마지막까지 신중하게 작업해야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이런 부분들은 견딜만하지만, 사실 이것보다는 외적인 부분이 더 힘들어요. 동아리방이 없고, 페인트를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겪는 어려움이 더 큰 것 같아요.

Q. ‘벽화그리기’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완성작을 봤을 때가 가장 성취감이 느껴지고 좋아요. 너무 당연한 말이기도 한데, 정말 그게 매력이에요. 학교에서 공부에 치이다가 밖으로 나와서 교내에선 겪어볼 수 없는 것들을 색다른 장소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매력이에요. 이런 매력이 있는 벽화그리기, 또 벽화그리는 ‘담빛’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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