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앞에 도사리는 사행성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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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앞에 도사리는 사행성의 늪
  • 곽태훈 수습기자, 임정빈 수습기자
  • 승인 2017.05.1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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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뽑기부터 확률에 의존하는 게임 아이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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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가와 번화가를 중심으로 인형뽑기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이하 게임위)의 ‘전국 인형뽑기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여러 인형뽑기 기계를 두고 영업하는 인형뽑기방 수가 2015년 21곳에서 올해 3월 1,705곳으로 늘어났다. '뽑기 열풍'이 불며 불과 2년 사이 81배 정도 급증한 셈이다. 이외에도 학생들이 즐기는 모바일,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 대부분이 확률에 의존하는 형태다. 이로 인해 확률형 아이템을 통한 과도한 과금 유도 및 사행성 조장이 논란이 되며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습득률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의 게임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단순 놀이문화처럼 보이는 인형뽑기와 확률형 아이템이 어떻게 사행성을 조장하는 요소가 되는지에 대해 짚어본다

확률에서 재미를 찾는 학생들, 그 이면엔 ...

부천대학교 전자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수철 학생 집에는 인형이 15개정도 있다. 대부분은 뽑기방에서 뽑은 것들이다. 그는 인형뽑기에 대해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 본 사람은 없다”며 중독성을 표현했다. 아울러 “군 복무 시절 월급이 20만 원 정도였는데 소대원들과 외출을 나가면 인형 뽑기에 많게는 5만 원씩 썼다. 그런데도 인형뽑기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인형을 뽑다 보면 친구들과 경쟁심이 붙기도 하고 내가 이미 투자한 금액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박재영 학생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다. 평소 뽑기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친구들과 우연히 들른 뽑기방에서 단숨에 만 원을 잃었다. 한 번 해보니 오기가 생겨서 계속 도전하다 순식간에 돈을 다 써버린 것이다. 이런 식으로 돈을 잃는 학생은 한 두명이 아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는 일당 5만 원 중 인형뽑기에 3만 원 정도를 사용
하는 친구가 있다. 인형뽑기에 소비하는 돈이 어른들 입장에서는 푼돈일지 모르지만, 소득이 별로 없는 20대 입장에선 큰 금액이기도 하다”며 이런 소비행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청년들의 이러한 소비행태를 일컫는 말로 ‘탕진’과 ‘재미’를 결합한 용어인 ‘탕진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재물이나 시간 등을 헛되이 다 써서 없앤다는 의미의 탕진이 하나의 놀이문화가 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박지종 대중문화평론가는 탕진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에 대해 “많은 돈을 소비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 적은 돈으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우리대학 경제학과 빈기범 교수는 “우리는 소비를 통해 생존을 포함한 만족감을 얻는데, 인형뽑기의 경우도 재미를 통한 만족감을 얻는다는 점에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 소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다만, 이는 생존을 위한 필수 소비는 아니며 특이한 점은 사행심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서울남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예방과 정보영 과장 역시 “사행심은 우연한 이익을 기대하면서 하는 모든 행위를 칭한다”며 “따라서 인형뽑기나 확률형 아이템 모두 강한 사행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형뽑기와 사행성의 연결고리-경품의 환금성

‘인형뽑기 인형판매 25개 17만 원 개당 7000원, 인형뽑기 중형·대형 인형 삽니다(포켓몬 4,000원 그 외 3,000원).’ 인기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해당 중고거래 사이트에 인형뽑기를 검색한 결과, 최근 한 달 사이에 올라온 뽑기 인형 거래 글만 495건에 달한다. 이는 현 사회에서 인형뽑기를 통해 얻은 경품의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형뽑기는 회당 1,000원이다. 그러나 1,000원으로 뽑힌 인형의 판매가는 낮게는 3,000원부터 높게는 30,000원까지 책정되기도 한다. 잘만 뽑으면 투자한 금액의 30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단번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문적으로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자신이 뽑은 인형을 되파는 이른바 ‘신(新) 보부상’이 대거 등장하기도 했다. 경품의 환금성이 높다는 것. 인형뽑기의 사행성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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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한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뽑기 인형 거래 게시물들이다.

 

인형 뽑기와 사행성의 연결고리-관련 콘텐츠 생산

인형 뽑기가 일종의 수익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열리면서 SNS와 유튜브에는 ‘인형 잘 뽑는 방법’에 대한 강의 영상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실례로 인형 뽑기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 ‘홍성오빠’는 구독자가 13만 명을 넘었으며, ‘인형 뽑기 기술 TOP7 공개’란 제목의 영상은 12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박재영 학생은 “그런 영상은 잘 뽑힌 것만 골라서 올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도 영상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잘 뽑을 수 있겠다는 오해를 하게한다”고 말했다. 확률적 요소를 실력으로 생각하게끔 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예 스마트폰을 통해 인형 뽑기를 할 수 있는 게임 애플리케이션도 개발되는 추세다. 한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현금으로 구입 가능한 ‘루비’라는 가상화폐를 한 번 뽑기를 진행할 때마다 소진하는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뽑은 인형은 배송료를 내면 실제로 배송도 해주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인형 뽑기와 동일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같은 콘텐츠의 개발로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뽑기를 접할 수 있어 더 쉽게 사행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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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모바일 인형 뽑기 게임 소개 화면이다.

 

인형 뽑기와 사행성의 연결고리-기계의 확률조작 가능성

지난 2월, 대전의 한 뽑기방에서 이 모 씨 일행이 2시간 만에 200여 개의 인형을 모두 뽑아가자 뽑기방 주인이 이들을 경찰에 절도죄로 신고하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인형 뽑기 기계의 확률 조작문제가 대두했다. 해당 뽑기방 주인이 ‘인형이 30번에 한 번 뽑힐 수 있도록 기계 설정을 해놨는데 단시간에 저렇게 많은 인형을 뽑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 발언으로 업주가 기계의 확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확률 조작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실제로 게임위에서 2016년 9월부터 11월까지 뽑기방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101곳 중 12곳이 게임물 개·변조로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업주뿐만 아니라 이용자들 사이에서도 인형 뽑기 기계의 확률을 조작하는 ‘뽑기 버그’가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업주든 이용자든 기계의 확률을 조작할 수 있다는 건 사행성을 부추기는 또 다른 원인이다. 과거 사행성으로 문제가 된 아케이드 게임 ‘바다 이야기’ 역시 확률 조작이 사행성 조장의 시발점이 됐던 사례다. 이렇게 사회적 문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만, 현재까지 어떠한 법적 규제도 마련돼 있지 않다.
 

확률형 아이템 무엇이 문제인가?

확률형 아이템의 대표적인 예로 인기 온라인게임 ‘던전앤파이터’의 ‘봉인된 자물쇠’라는 아이템을 들 수 있다. 이 아이템의 1회 개봉을 위해서는 현금 1,200원가량의 열쇠를 구매해야 한다. 아이템 개봉시 0.3%~1%의 확률로 현금으로 15,000 ~ 40,000원가량에 해당하는 아이템에 당첨될 수 있으며, 꽝일 시에는 대부분 물약이나 재화로써의 가치가 없는 아이템들만 등장한다. 당첨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금으로 전환도 자유롭다. 개인당 구매 제한도 없어 사실상 무한정 도박이 가능하다. 게다가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사에 의해 제작 판매된다. 이 때문에 항상 아이템 당첨 확률에 대한 의혹이 존재해 왔다. 실제로 모바일 게임 ‘그랑블루 판타지’의 경우, 이벤트성으로 출시된 확률형 아이템에 대하여 한 유저가 현금 3,600만 원을 투자해 아이템을 구매했으나 단 한 번도 당첨되지 않자 이를 소비자청에 신고한 사례가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유저들 또한 당첨확률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해명을 요구했고 결국 개발사가 직접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처럼 개발사가 확률 조작의혹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이런 형태의 사행성 짙은 확률형 아이템들은 모바일 게임 포함 국내 대부분의 게임에 존재한다. 특히 게임의 특성상 접근 연령층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은 더욱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이와 관련한 민원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정부 및 관련기관의 대책방안은?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책방안은 얼마나 진행됐을까? 확률형 아이템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법적 제재는 미비한 수준이며 게임사 주도의 자율규제방안에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자율규제안 자체를 두고 실효성 논란이 제기됐다. 자율규제인 만큼 법적인 강제성이 없으며, 결정적으로는 스스로에 대한 자발적 규제만으로, 현실적인 제재가 가능하냐는 의문에서다. 실제로 자율규제안 발표 초기엔 사회적 시선을 고려하여 게임사들이 대부분 자율규제안을 준수하는 듯 보였지만,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 시간이 지나며 이행률이 증가하기는커녕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등은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 획득률을 의무 공개하도록 하는 '게임산업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에 대해 게임업계에서는 이 같은 제제가 성장하고 있는 게임산업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으며 제재가 통하지 않는 외국기업과 비교했을 때 역차별이라며 반발했다. 법안 통과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또한 게임아이템 개발은 기업의 영업 비밀에 해당하여 해당 안건에 대해서는 게임사의 자율규제안을 우선으로 한다고 밝혔다. 법안 부결에 대한 논란이 일자 자율규제방안의 시행처인 한국게임산업협회는 강화된 자율규제방안을 내놓고 홈페이지에 매월 자율규제안 시행에 관한 보고서를 게재하여 실효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인형 뽑기의 경우엔 인형 뽑기 기계를 게임물로 분류해 게임위에서 관리하기로 했을 뿐 아직 어떠한 법적 제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마저도 게임위에서 진행한 뽑기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등급 미필 및 무등록으로 적발된 사례가 101곳 중 34건이나 돼 관리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에 경찰에서는 인형 뽑기가 사회적 인기를 얻고 있는 만큼 게임위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뽑기방 단속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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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과거 바다이야기가 그랬듯, 사행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산업은 중독자 양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형 뽑기와 확률형 아이템에서 짚어본 경품의 현금화, 확률 조작 문제는 바다이야기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동일하다. 또한 정보영 과장은 “그것을 시작으로 도박 중독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형 뽑기와 확률형 아이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음에도 혹자들은 적은 돈으로 행해지는 단순한 여가 생활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아르바이트를 통해 한 시간에 벌 수 있는 돈이 6,470원이라는 청년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면 버튼 클릭 몇 번으로 최저시급을 몽땅 잃을 수도 있는 게임 금액이 적은 돈일지 의문이다. 인형과 게임이라는 가벼운 즐거움에 속아 그 속에 숨겨진 사행성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청년들 스스로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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