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동, 판자촌 속 희망을 재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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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판자촌 속 희망을 재건하다
  • 이연주
  • 승인 2011.11.2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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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동, 판자촌 속 희망을 재건하다
포이동, 판자촌 속 희망을 재건하다
주거권을 얻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계속돼

강남구 개포동 1266번지에는 ‘포이동 재건마을’이 있다. ‘포이동 266번지’로도 불리는 이곳에는 1989년부터 국가에 의해 강제이주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건물을 짓고 살던 포이동 주민들은 지난 2003년, 강남구청이 불법 건물을 철거하라는 계고장을 보내온 후 주거권을 얻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투쟁이 9년째로 접어들던 지난 6월 12일, 골목길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포이동 96가구 중 75가구가 불타 사라졌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포이동 주민들의 주거권을 인정하는 발표를 일주일 앞둔 채였다. 

화재 후, 현재의 포이동은
포이동 266번지에 화재가 발생한 지 약 5개월이 지났다. 화재의 잔해는 여전히 방치된 채 마을 한 구석에 쌓여 쓰레기 더미를 이루고 있다. 주민들은 불길을 피한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임시 주거지를 지었다. 현재 마을 복구가 90% 이상 진행됐지만 하수도와 가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주민들 모두가 주민센터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지난 9일, 본 기자가 만난 마을 주민 김용금(63) 씨(이하 김 씨)는 쓰레기 더미가 치워져도 그 곳에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했다. 쓰레기 더미 옆에서는 주차장을 짓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중주거 생활권 쟁취를 위한 철거민 연합’의 박정재 연대사업국장(이하 박 국장)은 포이동 재건마을을 지지하고 있는 시민단체 24개 중 중심 단체를 맡고 있다. 그는 포이동 재건마을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이해하려면 포이동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박 국장은 “포이동 266번지에는 1981년부터 국가에 의해 강제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며 “자활근로대라 불린 넝마주이와 부랑자, 베트남 참전 상이용사, 국가가 동청사와 공영주차장을 짓기 위해 강제로 이주시킨 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주민들이 불법 점유자라는 이유로 물어야 하는 토지변상금이 약 25억 가까이 된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에서는 포이동 주민들의 강제이주 인정과 토지변상금 철회, 점유권 및 주거권 보장에 대해 인정을 하기로 했지만 화재 이후 아무런 입장 발표도 하고 있지 않다. 그 사이 포이동 재건마을에는 강남구청이 고용한 용역이 지난 8월 12일과 9월 29일 두 차례 다녀갔다. 

용역들이 다녀간 새벽은 전쟁 같았다
“새벽에 쾅쾅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전쟁 난 줄 알았지” 강양임(53) 씨(이하 강 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했다. 지난 8월 12일 새벽 4시 경, 강남구청이 고용한 용역들이 몰려와 잠자던 사람들을 끌어내고 집을 부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민들은 날이 밝자마자 항의를 하기 위해 강남구청 앞으로 몰려갔다. 그 사이 포이동 재건마을 담당 부서는 도시계획과에서 주택과로 바뀌어 있었다. 김 씨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며 “장대비가 내리던 날이었지만 강남구청 앞에서 며칠이고 항의를 하려고 했었다”고 당시 심정을 말했다. 
그 후 지난 9월 29일 새벽 3시 반 경, 포이동 재건마을에 두 번째로 용역들이 들어왔다. 강 씨는 “마을 입구 아랫길에서 주민 아저씨가 ‘한 차 들어온다!’고 외치는 소리에 용역들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용역들이 경찰들의 시위 진압 시 사용되는 방패같은 것으로 주민들을 찍어 눌렀다”며 “캠코더로 그 장면을 찍다가 용역들에게 수도 없이 팔다리를 얻어맞았다”고 말했다. 용역에게 폭행을 당한 주민들은 강남구청과 연계되어 있는 병원으로 치료를 받기 위해 갔지만 진단서 한 장 받을 수 없었다. 강 씨는 “원래 우리 땅인데 불이 났다는 것을 이유로 들어 우리를 내쫓으려 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대학생, 포이동을 위해 모이다
박 국장은 포이동을 재건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때가 이틀 만에 서른 채의 집을 지었을 때라고 한다. 그는 “어떻게 알았는지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몰려와 주민들과 함께 집을 지었다”며 “특히 화재 이후 대학생들이 마을을 찾아와 복구도 돕고 주민들을 위한 문화제도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포이동 주민센터에는 한신대학교 학생들이 머물며 마을의 복구를 돕고 있었다. 이수정(사회복지학과 09) 학생은 “화재 직후 왔을 때는 잿더미 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집이 많이 지어진 편이지만 주민들이 여전히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아영(사회복지학과 09) 학생은 “화재가 발생한 후 소방서가 늦장 대응했다는 말에 설마 했었다”며  “사실을 알고서 화가 났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주민들을 안마해드리면서 ‘도움이 없었다면 우린 굶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한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도움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달려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은희(사회복지학과 11) 학생은 “포이동 주민들이 주거민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끝까지 힘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포이동에는 지난 2005년부터 대학생들이 만든 ‘인연공부방’이 있다. 친구의 소개로 인연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연세대학교 김지홍(법학과 05) 학생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활동하게 된 것이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사고가 깊어져 오히려 도움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아이들에게 어 많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인연공부방을 후원하고 있는 봉사단체 평화캠프 인연공부방팀 심지혜 팀장은 “요즘 사정이 어려운 지역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들이 많다”며 “대학생들이 부도덕한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분노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지에서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이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을 돕기 위해 나서고 있지만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어렵다. 박 국장은 “약 5개월 동안 주거 복구에만 집중해 주민들의 생계가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강남구청과 협의해 포이동 지역이 개발되기 전까지 임시주거지로 인정받지만 개발계획이 잡히면 주민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라며 “곧 겨울이 찾아오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박 국장은 “빈곤을 모르고는 제대로 된 사회를 볼 수 없다”며 “대학생들이 빈곤에 대해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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