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상감여지문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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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여지문발
  • 최홍
  • 승인 2011.09.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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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상감여지문발

이 그릇에 새겨진 무늬가 무엇일까? 딸기? 석류? 요즘 대형 음식점이나 마트에 가면 많이 있는 수입과일 중 ‘리찌’를 아시는지? 아마도 냉동되거나 과육 통조림으로 가공된 것을 먹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리찌는 ‘여지(?枝)’의 중국어 발음인 ‘리즈L?zh?’가 서양으로 전래되면서 포르투칼어로는 ‘리시아Lichia’, 영어로는 ‘리치Litchi’가 됐다. 무환자나무과의 상록교목으로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유실수이다. 둥근 열매에 겉껍질은 돌기가 있으며, 독특한 향으로 중국 남부에서는 ‘과일의 왕’이라고도 부른다. 생으로 먹거나 말려서 차에 넣기도 했다. <동의보감>에서는 여지를 ‘맛은 달면서 시고 독이 없다. 정신을 맑게 하고 지혜를 도우며 얼굴빛을 좋게 한다’며 약재로도 많이 사용했다. 또 현대의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폴리페놀 성분이 많아 시력보호와 심혈관질환에 좋다고 한다.
과일 여지가 널리 알려진 것은 양귀비와 관련된 일화 때문이다. 신선한 여지를 좋아했던 양귀비는 5월만 되면 당 현종을 졸라 구해달라고 했다. 당의 유명시인인 백거이(白居易)가 여지를 ‘열매는 딸기 같은데 속살은 빙설 같고 맛은 새콤달콤한 우유죽 같다. 열매가 가지를 떠나면 하루 만에 빛이 변하고, 이틀에는 향이 변하며 사흘이면 맛이 변한다’고 한 것처럼, 보관이 매우 어려워 생산지가 아니면 신선한 맛을 보기 어려웠다. 차도 비행기도 없는 당시, 남방에서만 생산되는 여지를 장안까지 운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을 두보(杜甫)는「병귤(病橘)」이란 시에 ‘남해의 사신들이 여지를 바치고자 수만리 길을 달려, 수백 마리 말이 산곡에서 죽었구나’라고 표현했다.
중국 남방에서 나는 여지가 어떻게 고려시대 그릇에 새겨졌을까? 현재도 그렇지만 가까이 두고 사용하는 그릇의 문양은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여지는 중국에서 귀한 과일로 여겨 어선화(御仙化)라 했으며 길상(吉祥)의 의미와 함께, 도교와도 많은 관련이 있다. 이러한 의미들이 고려에 전해져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여지문은 그릇 외에도 고려ㆍ조선의 고위 관료 관복의 띠에도 들어가, 이를 여지금대(?枝金帶)라고 했으며 고려불화의 옷문양에도 등장한다.
이 여지문이 새겨진 그릇은 전면에 투명한 청자유를 시유했고, 완만한 기측선에 좁은 내저원각을 지닌다. 내면에는 구연 바로 아래 당초문대를 두르고 네 곳에 여지문을 백상감했다. 외면에는 당초문대를 역상감했으며 국화를 사방에 흑백상감으로 시문했다. 굽바닥 면에 규석받침을 3~4개 두어 번조했던 흔적이 있다. 전성기 상감청자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명종(明宗)(1131-1202) 지릉(智陵)에서 발견된 <청자상감여지문대접>과 유사하다.
반상기의 일종이나 찻사발로 보는 견해 등, 이 그릇의 용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이 그릇은 현재의 찻사발보다 커서 문양대까지 물을 채웠을 때 용량이 약 1L이다. 이렇게 그릇이 큰 이유를 고려중기 이후 차 마시는 방법의 변화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찻사발에 가루차를 풀고 차선으로 휘저어 거품을 내어 마시는 송나라의 점다법(點茶法)이 고려에 전해지면서, 이에 적당한 형태의 그릇이 만들어 진 것으로 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ㆍ세종 대부터 중국의 사신이 여지를 진상했으며, 연산군은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품질 좋은 여지를 구해오라는 명을 내린 적도 있다. 기후 온난화로 이처럼 귀한 과일이이자 아열대 식물인 여지를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재배할 수 있게 됐다. 우리도 양귀비처럼 신선한 여지를 먹을 수 있게 됐으니, 온난화를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명지대학교 박물관 학예팀


여지문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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