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기독교인 묘지(墓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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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기독교인 묘지(墓誌)
  • 이재희
  • 승인 2011.04.17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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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기독교인 묘지(墓誌)

예수 기독교인 묘지(墓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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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보통 부친이 돌아가시면 자식은 선친의 일생을 기록한 행장(行狀)을 가지고 명망가를 찾아가 묘지의 글을 청했다. 이를 다시 명필가의 글씨로 묘지문을 작성하여 돌에 새기거나, 흙판에 적고 가마에서 구워진 것이 묘지이다. 대개 묘지는 장례기간 중에 무덤 안에 넣는 것이나, 상당수는 오랜 제작기간 때문에 후대에 추가로 묻기도 한다.
묘지란 무덤에 넣는 작은 비석으로 이해하면 된다. 즉 죽은 사람의 관직과 이름 등을 적은 것을 무덤 안에 묻는 것으로 일명 ‘광지(壙誌)’라고도 부른다. 묘지를 무덤에 넣는 이유는 후에 무덤의 형태가 변하더라도 그 피장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런 묘지는 당대 사회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런 묘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조선묘지명”이란 전시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행적을 담은 다양한 형태의 묘지가 전시되었다. 우리학교박물관의 소장 자료와 비교하고자 전시를 관람하였다가 이곳에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지석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이 묘지는 11.7×21.4×3cm 크기로 재질은 백자이다. 초벌구이한 흙판에 산화코발트안료로 십자 표시와 묘지문을 쓰고, 회청색의 불투명 유약을 발라 재벌구이 하였다. 묘지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耶蘇基督敎人 崇政大夫同知中樞府事 扶安林公魯之壙 主降生後一千九百九年八月八日別世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교인 숭정대부 동지중추부사 부안임공 노의 묘광. 주님 강림 탄생 후 1909년8월 8일 별세함”의 뜻이다.
이 묘지에서 <종1품의 품계(品階)인 숭정대부로 중추부의 동지사(종2품)를 지낸 부안임씨 노란 자는 1909년 8월8일에 별세한 예수기독교인>이라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묘지의 가장 큰 특징은 묘지 첫머리에 나온 ‘야소기독교인’ 이란 구절에 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교인’을 음역한 용어로 조선시대 지석 첫머리가 ‘朝鮮國’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가히 혁명적인 일이다.
조선시대 지석의 글은 국가명→품계→관직→본관성씨→이름→가계→생몰일→나이→장례일→무덤위치와 풍수→가족관계 등의 순서로 적는다. 이런 오랜 관례를 깨고 ‘조선국’ 대신에 ‘야소기독교인’이라 명기한 것은 ‘임노’는 ‘하나님의 나라사람’이라는 인식이 확고한 듯하다. 그의 신앙심은 좌측 상단의 십자 표시에서도 읽힌다.
조선국은 기독교가 유교적 가치관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배척하다가 19세기 말에 비로소 공인하였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목사의 서울 선교를 시작으로 개신교가 인정되었고, 1886년 한불조약을 계기로 천주교도 합법화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가 공인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고위 관직을 지낸 인물로 당당하게 ‘예수그리스도교인’라 묘지에 기록한 부안 임노와 그 가족들의 신앙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 묘지는 비밀리에 제작된 듯하다. 묘지의 글씨는 서예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의 것인 듯 크기 등이 제멋대로이다. 아마도 후손이 적어준 묘지문을 도자기로 굽던 기독교인 도공이 비밀유지를 위해 직접 그리듯 쓴 것은 아닐지 추정해 본다.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도인 ‘임노’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다. 우리박물관에서는 실록 등 고문헌과 부안임씨 족보 등과 관련한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다.

필자: 명지대학교 박물관 학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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