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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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내는 편지
  • 이재희
  • 승인 2011.04.17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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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내는 편지

정조가 채제공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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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우리대학교 자연캠퍼스와 가까운 용인시 역북동에 자리한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묘역에 불이 났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그 화재 소식에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는 정조대왕이 채제공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나 소개한다.
이 정조어찰은 채제공이 좌의정으로서 화성축성을 완료한 다음해인 정조21년(1797) 겨울에 보낸 것이다. 이 편지는 가로 68㎝, 세로 34㎝ 크기의 장방형 한지에 초서로 빠르게 쓴 것이다. 편지봉투에는 ‘번촌집사(樊村執事)’라 쓰여 있고, 글의 내용으로 보아 번암(樊巖) 채제공에게 보낸 글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봉투는 편지본문과 함께 배접되어 액자로 꾸며져 있다.
“봄날이 거의 가까워지는 때에 체후(體候)는 더욱 좋으십니까? 그리운 마음 지금 더욱 간절합니다. 지난번 드린 《팔가수권(八家手圈)》을 돌려보내 달라고 한 것은 정(精)한 것으로 조(粗)한 것과 바꾸려 한 것이었는데, 글씨를 쓰고 비점(批點)을 가한 것을 보고서는 금을 얻는 것보다도 어려운 것처럼 여겼습니다. …(중략)… 이만 줄이며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즈음에 길사가 많으시기를 빕니다.
정사년 섣달 3일전(1797.12.27) 드림.
땔나무 백 개를 보냅니다.”
내용은 간략하지만 스승에 대한 안부를 묻고 챙기는 간절한 마음이 묻어나있으며, 또한 여러 서책에 대한 주를 달아달라고 하는 부분에서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조의 본래 이름은 '?'이며, 이는 '산(算)'의 옛 글자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산'이 아닌 '셩' 또는 '성'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안대회 교수는 《비연외초(斐然外抄》의 기록을 근거로 정조의 이름이 본래 '산'이었다가 '성'으로 바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로 본다면 정조를 주인공으로 한 TV드라마의 제목은 '이산'이 아니라 '이성'이 되었어야 맞을 것이다. 나라가 번창하기를 바라며 자기 이름의 발음까지 바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정조의 노력이 안타깝다.
이 편지를 받은 채제공은 영조ㆍ사도세자 ? 정조 3대에 걸쳐 벼슬한 조선후기 문신으로, 호는 번암 또는 번옹(樊翁),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그는 남인출신이었지만 그 능력을 인정한 영조의 발탁으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도승지로 있을 때 사도세자 폐위 비망기를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한 그를 후일 영조는 “진실로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고, 너의 충신이다.”라고 정조에게 말했다 한다. 1772년 세손이었던 정조의 스승으로 인연을 맺은 뒤 재상으로써 정조의 치세를 보필했다. 채제공은 노론이 우세하던 당시 남인의 큰 인물로써 정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조력자 역할을 한 셈이다.
그는 1799년 1월 별세하였는데, 그 부음을 들은 정조는 매우 슬퍼하며 직접 뇌문(?文-추도하는 글)을 지어 내렸다. 이 뇌문을 새긴 어제뇌문비는 현재 용인 역북동에 채제공의 묘와 함께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다.
한편 정조와 대립하였다고 알려져 왔던 노론의 영수 심환지(沈煥之, 1730~1802)에게 보낸 다량의 편지가 지난 2009년 공개되었다. 이 편지들의 공개로 정조의 노련한 막후정치가 밝혀졌고, 한국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기록물이라 하여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 심환지의 무덤도 용인시 유방동에 위치하고 있으니 정조를 보필했던 두 재상이 모두 용인에서 영면을 취하고 있음도 특별한 인연이라 하겠다.


필자: 명지대학교 박물관 학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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