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모작의 양과 질 모두 예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진 느낌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심사였다. 무엇보다도 소재의 다양함과 소설에 대한 재기발랄한 접근이 돋보이기도 했다. 최근 기성 문단은 정통 리얼리즘 소설보다 환상적 판타지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작품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형편인데, 응모작 가운데 <메리, 고 라운드>와 <돌이킬 수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수중도시> 등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들은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기술적 세련미에 비해 구체적인 서사적 맥락, 즉 서사적 완결성이 약했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이 필요하다. <아마존>, <건식 사우나>, <외출> 등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소위 여성적 섹슈얼리티를 부각시키고 있는 이들 작품들 역시 디테일 상의 숙련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담는 데는 실패한 느낌을 주었다. 기시감이 너무 강하다는 의미다.
가작 <빈사의 백조>는 발레계의 뮤즈 안나 파블로바의 일대기와 뒤늦은 나이에 몰두할 대상으로서 발레를 발견한 ‘명자씨’의 삶을 대비시키며 이 두 겹의 서사가 빚어내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플롯이 안정되어 있고 문장이 단단하다. 다만 안나의 서사에 비해 ‘명자씨’의 이야기가 다소 작위적이라는 점이 걸리긴 했다. 당선작 <벽>은 제목에서 환기되는 소통부재의 현실을 ‘벽’과 ‘못’이라는 모티프를 사용하여 깔끔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작의를 두드러지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포착해내는 구성력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 흔한 테마를 이 정도로 풀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