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학기를 마치며, 거북골의 유래 〈1117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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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학기를 마치며, 거북골의 유래 〈1117호(종강호)〉
  • 명대신문
  • 승인 2023.05.29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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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5월 카네이션을 통해 상호존중과 감사의 의미를 새겼다. 이번 호에서는 인문캠퍼스가 자리한 거북골의 의미를 살피며 봄학기를 마치고자 한다.

우리 대학 인문캠퍼스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이다. 2009년 발간한 서울역사박물관의 『가재 울뉴타운민속지』에 따르면, 거북골이란 마을은 북가좌동에 있는 화산군(花 山君) 이연(李 , 1647~1702)의 신도비 (神道碑)에서 비롯되었다. 신도비는 훌륭한 사람의 업적을 기록하여 묘소에 세우는 비석인데, 『한국민족문화대 백과사전』에 의하면, "일명 '거북비'로 통하는 이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 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받침돌의 거북은 머리가 거의 용의 머리에 가까우며 입에 여의주를 물고 앞으로 고개를 한껏 내밀고 있다. 다섯 발가락이 표현된 두 앞발은 아랫돌을 꼭 누르고 있는 모습인데, 전체적으로 강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정교하게 조각된 지붕돌은 네 처마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들려있다.”라고 한다. 이 비는 1747년(영조 23)에 세워졌고 1980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1호가 되 었다. 화산군의 묘는 경기도로 이장하여 지금은 신도비와 문인석만 남았다.

이 비의 주인인 화산군 이연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선조의 일곱째 아들인 인성군(仁城君)의 손자로 효행이 뛰어 났으며 오위도총부(오늘날 통합군사령부) 부총관까지 지낸 사람으로 현종 2 년(1661)에 화산군으로 봉해졌다. 사후 영조대왕에게 좌의정 송인명(宋寅明) 이 그의 효행을 아뢰자 효간(孝簡)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아들인 낙창군이 신도비를 세울 때는 영의정이 된 송인명이 비문을 짓고, 조카 서평군이 글씨를 썼다 한다.

또한, 인문캠퍼스 학생회관 뒤편에는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1호인 양호거사비(楊鎬去思碑)가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을 막았던 명나라 장수 양호(楊鎬) 의 공적을 기린 공덕비다. 원래 서소문동 120번지 선무사(宣武祠) 터에 있다가 명지대학교가 1974년 10월 남가좌동으로 이전할 때 함께 옮겨진 것이라 한다. 연꽃이 조각된 사각받침 위에 비석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렸다.

오늘은 어제의 미래요, 내일의 과거라고 한다. "여의주를 문 거북, 효행"으로 이름난 거북골에서 주후 1956년 명지학원은 세워졌다. "하나님을 믿고 부모님께 효성하며 사람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자연을 애호개발하는 기독교의 깊은 진리로 학생들을 교육하여 민족 문화와 국민경제발전에 공헌케 하며 나아가 세계평화와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성실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학교법인 명지학원의 설립목적이며 설립정신이다."라는 명지학원의 초심을 이어가자. 성장의 여름과 결실의 가을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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