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알량한 M과 불안한 Z 〈1117호(종강호)〉
상태바
[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알량한 M과 불안한 Z 〈1117호(종강호)〉
  •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 승인 2023.05.29 00: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일반적으로 세대를 나눌 때 시대에 대한 공통감각을 소유하고 있는 특정 군을 한 세대로 묶어 내는 방식을 적용한다. '4 · 19세대'와 '민청학련 세대', '386세대' 등이 바로 이러한 기준을 통해 등장해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대표 한 세대들이었다. 이들은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며 한국 사회의 변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다원화된 시민사회 정착에도 기여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대 구분의 역사는 '대학'의 '학번'이라는 구심점이 강하게 작동하여 구성된 일종의 엘리트 집단 형성사에 가깝다. 전체를 포괄하지 못하는 부분의 한계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강력한 행동을 통해 정치적 균열을 이끌어낸 소수의 집단은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구성했지만, 민중과 유리된 정서는 끝내 극복해내지 못했다. 호명된 세대들은 그 자체로 이미 권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세대론을 꺼내려는 시도는 새삼스러울 뿐만 아니라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과거와 같이 명확하게 세대를 구분하는 정치적 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은 이제 구심점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 위상이 심각하게 약화됐다. 또 단순하게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세대를 나눌 경우 한국사회의 복잡다단한 구조의 결을 오히려 놓치게 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러나 지금 새로운 세대론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여전히 국가와 자본이 주도권을 쥔 복잡하고 혼란한 세대 분할의 구도 속에서 소여된 삶을 누차하게 견디는 웅크린 20대들 이 '지금', '여기'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느 사이엔가 자의와는 상관없이 두루뭉술하게 MZ라는 광범위한 세대군으로 묶여버렸다. 하지만 Z는 잘 알고 있다. 결국 자신들의 정체성이 M과 결코 같지 않다는 점을 말이다. Z세대는 자신들이 M세대보다 가난하고 더 많이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Z세대들이 이전 세대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무능력하거나 정치의식이 빈곤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Z세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문화자본의 세례를 입기도 했고, 그 콘텐츠를 더 발전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역이기도 하다.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국제적인 경험도 풍부하며, 실물 경제 관념도 누구보다 빠르게 습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Z세대들은 그저 불안하다. 2000년대생들이 불안한 이유가 단순히 젊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분석일 뿐이다. 오히려 '젊음'이라는 키워드로 호명되는 세대의 범주가 광범위해지면서 나타나게 되는 '빼앗긴 청춘'을 불안의 이유라고 말하는 편이 더 타당할지도 모른다.

'청춘'은 이제 20대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아니다. 어느 때보다 조숙한 십대들과 "언제나 청춘"을 외치는 M세대들이 버티고 있는 한, 현재 20대인 Z세대가 '청춘'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열패감이 나 '자리 없음'에 대한 의식이 바로 불안의 이유라고 말하는 편이 적확하다. M세대들은 Z세대들이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하거나 실천하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원룸과 고시원에 유폐돼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훔쳐보면서 언제까지 최저임금을 받고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하찮은 노동을 팔거냐고 시비를 걸기도 한다.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니,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 거냐고 조롱하기도 한다.

가난을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태도도 문제지만, 자신의 궁박한 처지를 무조건 사회 탓만 하는 것도 잘못이라는 지적도 곁들인다. 사회와 맞서고 스스로 강해지라는 조언이다.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대개 같은 세대 중 상위 20% 안에 들어 온전한 정규직의 혜택을 입고 사는 알량한 치들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00년생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라는 물음"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응답하 고 그 삶을 실천하는 세대이기도 하다. '공정'과 '평등'에 대한 감각 역시 가장 예민하게 발달해 있다. 이전 세대들처럼 겉으로만 그런 척 하며 내로남불하지 않고, 내면화된 규준을 엄격하게 지키며 살거나, 겉과 속이 다르지 않 게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쪽이다. Z세대 가 출몰하는 '편의점'과 '고시원'이 더 이상 잠 재된 혁명의 공간이 아닐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곳은 음모와 부조리가 도사리는 음험한 공간은 아니다. 견뎌내도 남아 있는 불안을 겪고 있는 청춘들을 위로하진 못할망정, 모든 원인을 Z세대 탓으로만 돌린다면 우리 사회가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