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깡통전세 ··· 부동산 싱크홀에 빠진 대한민국 〈1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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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깡통전세 ··· 부동산 싱크홀에 빠진 대한민국 〈1116호〉
  • 정회훈 사회문화부장
  • 승인 2023.05.1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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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배려 없는 피해지원과 근본적이지 못한 대책에 몸살

 

'사회적 재난'이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서울 화곡동 '빌라왕' 등 굵직한 사건으로 축약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모든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세사기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1일, 전세사기 피해자가 숨진 채로 발견돼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는 넷으로 늘었다. 정부와 여야가 이렇다 할 해결책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서 몸서리치고 있다. 도리어 정부와 여당은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며 사회적 재난이라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고 고집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특별법안은 피해자에 대한 배려도,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도 아님을 비판하며 오늘도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선다.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은 2030 청년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본지는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전세사기 사건의 전말과 그 뿌리를 톺아보고자 했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전세사기'는 임대인이 전세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임차인을 속이고,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 경우를 통칭한다. '깡통전세'는 주택의 전세금보다 매매가격이 낮아져 임차인이 전세금을 온전하게 돌려받지 못하게 된 주택 또는 그러한 위험성이 드러난 주택을 지칭한다. 임대인의 채무 불이행으로 주택이 경매에 부쳐졌으나, 낙찰가격이 전세금보다 낮은 경우도 깡통전세로 지칭하고 있다. 즉, 전세사기 사건이 벌어진 경우 해당 주택은 ‘깡통전세’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깡통전세이거나 위험군에 속한 주택에 임차인이 거주한다고 해서 반드시 전세사기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다. 임대인은 깡통전세 여부와 관계없이 새로운 임차인을 들이거나 차입 등을 통해 기존의 임차인에게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주는게 정상이며, 실제로 대부분의 임대인이 이와 같이 행동한다.

인천시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벌어진 ‘건축왕’ 사건의 경우,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선순위 저당권이 있는 주택을 전세로 두고, 보증금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임차인을 속인 기망 행위가 문제가 됐고, 서울시 화곡동 ‘빌라왕’ 사건은 건축주, 컨설팅업체, 감정평가사 등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매매가 시세보다도 높은 전세금을 받아냈다. 이때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미끼삼아 임차인들을 끌어들였다.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자 수와 규모

현재 전세사기 문제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어 전체 피해자 수와 피해 규모를 추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각 지역과 기관의 통계를 개별적으로 점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천시가 지난 9일 발표한 전세사기 피해 규모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축왕' 등 대규모 전세사기 일당이 소유한 인천시 전체 주택은 2,969호, 보증금 합계액은 약 2,309억원에 달한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 월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의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8,294건으로 지난해 1,886건보다 339.8% 급증했다. 또한,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 전국 전세보증 사고는 1,385건, 사고금액은 3,199억원에 이른다.

더욱 큰 문제는 현재까지 노출된 사건만이 아니라, 향후 전세사기에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청년층이 피해를 입어도 이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이 공개한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정보에 따르면, 청년 대상 전월세자금보증의 이용 규모는 30만명 이상, 보증액은 17조 8,000억 원에 달하지만, 법적 근거가 미비해 피해자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구조다. 하루가 다르게 적발되고 있는 전세사기 문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발생할지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제도적 미비함이 불러온 전세사기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시행한 임대차3법(계약 갱신청구권제 · 전월세상한제 · 전월세신고제)이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우리 대학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는 "전 정부가 임대사업자를 장려했는데 임대 사업자를 낸 사람들이 월세를 받으려고 한 게 아니라 전부 갭투자를 해서 전세를 내놨다"라면서 "월세보단 매각 차익을 노리고 들어온 사람이 사실상 전부"라고 지적 했다. 대한주택임대인협회 성창엽 회장(이하 성 회장)은 "임대차 3법의 무리한 도입으로 주택가격뿐만이 아닌 임대가격의 폭등,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양적완화 이후의 고금리 등 내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전세가격이 하락하고 역전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전세제도 자체의 문제점도 작지 않다. 전세사기와 깡통전세 문제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 세종대학교 부동산학과 임재만 교수(이하 임 교수)는 "가장 근본적으로 주택가격과 전세가격의 순환변동에 따라 전세보증금반환 위험이 상존하는 전세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 무자본 또는 소자본으로도 갭투기가 가능한 법과 제도, 그리고 임대주택등록제도의 허술한 관리, 부동산 불패신화에 따른 아파트 선호와 전세 선호 현상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답했다. 임 교수는 구체적으로 △소자본 갭투기를 가능케 하는 전세대출과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임대기간 동안 전세 임 대를 대규모로 할 수 있는 제도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이 거절되는 임대인이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임대주택등록제도의 맹점을 꼽았다.

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

▲그래프는 부동산R114에서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아파트의 매매 거래량 및 매매 · 전세 가격의 연간 추이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 부동산R114)
▲그래프는 부동산R114에서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아파트의 매매 거래량 및 매매 · 전세 가격의 연간 추이를 정리한 것이다. (출처/ 부동산R114)

'빌라왕', '건축왕' 등 명백하게 범죄의 의도를 지닌 전세사기 사건들로 인하여 전세제도의 단점이 크게 비판받고 세간의 이목이 집중돼, '역전세'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보증금 미반환 사례들에도 모두 전세사기라는 편견이 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역전세'란 전세가가 역행되는 현상으로 전세 시세가 최초 계약 당시보다 하락한 상태를 지칭한다.

성 회장은 "명백한 기망의 의도를 가진 전세사기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역전세 문제로 인해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한 사례들이 모두 전세사기로 여겨지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라면서 "현재 정부의 정책과 입법들은 이미 벌어진 전세사기 피해의 구제에만 매몰되어 있어,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의 보증금 미반환 우려를 살피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 1일부터 적용된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요건의 강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보증금 보증 제도를 악용해 전세사기에 활용됐다며 이전 공동주택(아파트, 다 세대주택, 연립주택 등)의 경우 공시가격의 150%, 전세 가율을 100%로 한 가입의 기준을 각각 140%, 90%로 축소하여 공시가격의 126% 이내의 보증금액만 보증가입이 가능하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성 회장은 "공시가격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전세사기를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보증가입 요건 강화로 인해 과도한 이중 규제가 발생한다. 오히려 보증가입이 불가한 주택의 증가로 임차인들의 주거 불안정은 커지고, 보증금 미반환 사고의 위험 또한 증가할 수 있다"라며 "임차보증금 반환을 목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과 주택임대사업자 대출에도 DSR*, RTI** 한도를 적용하여 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역전세 상황으로 인해 보증금 반환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출을 받아서라도 보증금은 반환하고자 해도 대출을 실행하기 힘들다"라고 문제점을 호소 했다.

*DSR :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ebt Service Ratio)의 약자로, 개인이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모든 종류의 부채 원리금을 연 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RTI : 임대업이자상환비율(Rent To Interest ratio)의 약자로, 연간 부동산 임대소득을 임대업 대출의 연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가의 역할

지난달 27일, 정부가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겨가면 피해자에게 우선매수 권한을 주고, 낙찰금액은 4억 원 한도에서 저리로 대출해주는 내용이 담긴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안'(이하 특별법)을 발표했지만, 피해자들은 '피해자 배제법'이라며 반발했다. 이 특별법안의 적용대상인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려면 △확정일자를 받고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 △임차 주택의 경 · 공매 진행 △서민 임차주택 요건에 해당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을 것 △피해자 다수 발생할 우려 존재 △보증금 상당액을 못 받을 우려 존재 등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비판을 수용해 기존 요건을 조정하여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피해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제시된 수정안 역시 제각기 다른 전세사기의 유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고, 피해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보증금 반환 등은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후 지난 10일, 여야가 합의점 도출을 위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특별법 수정안을 논의했지만, 협의안을 내는데는 실패했다. 기존의 특별법에 최우선변제금 제도를 활용해 보증금을 일부 보존하는 방안을 야당이 제시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국민 혈세 투입'은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중요 쟁점인 보증금 채권 매입안에 대한 질의에 임 교수는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기업구조조정용 채권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매입한 다음, 경매나 공매 등의 방법으로 시장에서 매각하여 회수하고 있다. 공정한 평가가 어려울 경우에는 사후정산방식으로 채권을 매입한다. 즉, 채권을 액면가의 10%정도로 매입한 다음, 시장에서 매각한 대금을 사후적으로 정산하는 방식이다”라면서 "사후정산방식 채권양도는 선 구제시 자금이 크게 들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채권가격의 10%가 아닌 무상으로 채권을 양도받고 사후에 정산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그러니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이 국 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일부 야당안에는 지역의 최우선변제 대상 보증금의 2배 이내 보증금으로 계약한 임차인에게 보증금의 최소 50%는 돌려주자는 안이 포함돼, 해당 안은 국민 세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방식에서도 나중에 양도받은 채권을 시장에 매각하여 얻은 시세차익이 발생할 수 있다. 보증금 미반환, 전세대출 미상환, 강제퇴거 등 최악의 주거위기에 처한 주거취약계층에게 국민 세금을 쓰자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주장을 국민 혈세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라고 덧붙였다.

 

전세사기 사례가 급증하면서 드러난 중요한 문제점 중 하나는 피해자 대부분이 신혼부부 · 사회초년생 등 2030 청년층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는 전세보증금이 전재산이나 다름없기에 전세사기 직후 큰 상실감과 경제적 어려움에 정면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심화되는 역전세에 선량한 임대인들 역시 시름을 앓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제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정부가 마주하고 있는 전세사기 문제는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로 판단될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의 뿌리와 이해당사자들의 고충을 면밀히 살펴야만 하는 ‘뿌리깊은 문제’인데도 정부는 여전히 묵묵부답인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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