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대학의 보고서, 제발 개요를 쓰세요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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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대학의 보고서, 제발 개요를 쓰세요 〈1115호〉
  • 서반석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23.05.08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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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반석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서반석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학기의 중반을 지나며, 이제 슬슬 학기 말 보고서의 압박이 느껴지기 시작할 시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학생들에게 ‘대학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 꼭 개요를 쓰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주지의 사실과 같이 ‘개요’는 글을 작성하기 위한 지도나 설계도에 해당됩니다. 개요에 대 해서도 참 많은 이야기가 가능하겠습니다만, 저는 이 짧은 글에서 ‘왜 개요를 써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학생 여러분은 두 가지 이유로 보고서를 작성할 때 개요를 써야 합니다. 첫째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여러분의 상황 때문이고, 둘째는 그 보고서를 읽는 교수님들의 상황 때문입니다.

첫째, 보고서를 작성하는 여러분의 상황 때 문입니다. 여러분이 학부생이라면, 지금 거의 평생에서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좀 슬퍼져요. 왜냐하면 이제부터는 대체로 내리막이니까요) 기억 력이나 반응 능력, 열정과 열의 등등 모든 면에서 아주 탁월하고, 심지어 체력도 가장 좋은 시기라서 쉽게 지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쪽짜리 보고서 정도는, 제대로 집중을 하게 되면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는 마무리할 정도로 대단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따로 계획이나 개요 같은 걸 굳이 수립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글을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본격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시는 상황이 ‘그런 능력을 집중적으로 발 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보통 과제물들의 제출 기한은 학기 말 정도인데, 여러분이 듣는 모든 과목의 기말 과제들이 그때로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때에는 여러 과목을 동시에 신경 써야 하고, 동시에 진행해야 합니다. 저도 학부 때나 대학원 시절을 돌이켜보면, 기말 기간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안경 낀 채로 세수를 하거나 치약을 면도기에 바르거나, 기숙사 냉장고에서 샴푸가 발견되는 등등, 거의 제정신이 아닌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우리는 기말 보고서, 기말 과제를 써야만 하는 겁니다. 개요 없이, 계획 없이 정상적인 글을 쓸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개요와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는 그 보고서를 읽는 교수님의 상황 때 문입니다.

여러분이 기말고사와 보고서를 털어버리고 어떤 식으로든 후련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교수님들은 이제 전투 개시입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보고서와 기말 시험지, 그리고 그동안 처리를 미뤄뒀던 각종 성적 관련 자료들. 다 정리해서 결과를 도출하고 나면, 때에 따라서는 그 결과 때문에 학생들과 충돌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쓴 보고서를 읽는 교수님들도 ‘그다지 제정신인 상황은 아닙니다.’ 카페인에 전두엽이 절여져서 정신은 몽롱하고, 수면 부족으로 손가락이 여섯 개로 보이는 상황에서, 여러분이 계획 없이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기간에 여러분의 과제물, 보고서를 모니터에 띄워두고서 두뇌가 거의 정지된 채로 척수반사에 의지하여 마우스 휠을 돌리고 있는 교수님들은, 여러분이 정말 잘 계획해서 그 내용을 아기 먹이듯이 떠먹여 줘야만 이해를 할 수 있을 만큼 지능이 퇴보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해력은 그 모양이지만 호전성은 상당히 높아진 상태이기에, 비유컨대 ‘좀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다정하시던 교수님들도 무계획적인 보고서를 보다 보면 굶주린 좀비처럼 격분하게 됩니다. 곧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가혹하게 평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인 셈입니다.

결국 정리하자면,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제정신이 아닌, 광란의 도가니에서 탄생하는 것이 기말 보고서이기 때문에 개요를 통해 잘 계획된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한다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여러분의 머리를 믿지 마시고 교수님들의 머리도 믿지 마시고, 꼭 개요를 쓰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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